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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볼펜 할머니

제1장 몽땅이 스토리

by TongTung



이곳은 루카와 니코의 놀이방입니다.

큰 창 앞에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스케치북과 어수선하게 놓인 크레파스, 색연필들이 있습니다. 탁자 앞에 앉은 루카는 한참 동안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의 여동생 리코가 손에 기린 인형 ‘루민’을 쥐고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 방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합니다.


“루민이 날아간다!”


리코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을 메우고, 쿵쾅대는 발소리에 탁자 한쪽에 있던 연필꽂이 통이 흔들리고, 그 속에 있던 해바라기 볼펜 할머니, 선플라워가 언제나처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선플라워의 알람인 리코.


기지개를 켜고 난 선플라워의 안경너머로, 한쪽 구석에 힘없이 쪼그려 앉은, 기운 잃은 작은 색연필이 보였습니다.

“꼬마야~ 난 선플라워란다. 내가 너무 깊이 잠들어서 네가 온 줄도 몰랐구나.”

그녀의 온화한 목소리는 작은 색연필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선플라워는 색연필을 살핀 후 물었습니다.

“무척 슬퍼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니?”

입을 다문 채 아무 말 없었던 작은 블루 색연필도, 선플라워의 자상한 말에는 마음이 열리는 듯합니다.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이야기해 줄래?”


선플라워도 이미 작은 색연필의 소동을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듯 말을 걸었습니다.


선플라워의 눈길이 느껴진 작은 색연필은 고개를 들어 선플라워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헤어져서 이곳에 왔어요.”

선플라워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그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였습니다.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어요… 잡아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계속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요… 마치 굳어버린 나무조각처럼요.”


선플라워는 블루 색연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블루 색연필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 색연필 친구들은 저를 모른 척했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 정말 무서웠어요.”


그 말을 들은 선플라워는 작은 색연필의 마음속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연필꽂이 통 속 다른 친구들도 이 작은 색연필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정말 서운했겠구나.... 그리고 이 낯선 곳에서 혼자였으니, 더 슬펐겠지.”


선플라워는 한참 동안 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이 일부러 모른 척한 건 아니란다."


그녀는 잠시 고요하게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갑니다.

" 네 친구들은 지금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깨우기가 무척 힘든 상태지. 너도 그걸 느꼈다며? 마치 나무조각 같다고..."

"네..."

" 그 느낌이 맞단다.”


작은 블루 색연필은 동그란 눈으로 선플라워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럼… 저는 왜 깨어있는 거죠?”

"그러게 말이다. 너도 깊은 잠을 자고 있어야 하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작은 블루 색연필은 자신이 어떻게 깨어났는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그 기억은 마치 희미한 안개 같았습니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자, 색연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괴로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선플라워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생각해 보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모일테니...”

작은 블루 색연필은 머뭇거리며 중얼거렸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날까요?”


작은 블루 색연필은 선플라워의 말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또한, 색연필 친구들이 자신을 모른 척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음을 알게 되어, 작은 위로와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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