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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Jul 28.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6화-임예진)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I will start boarding Korean Air flight KE012 from LA to Incheon.(해석: LA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12편 비행 탑승 시작하겠습니다.)


  4년 만의 귀국이었다. 두 달 동안 한국에서 보낼 짐을 챙기느라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보다 설렘이 컸다.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기쁨이야 당연한 것이고, 변화구처럼 자신의 인생에 찾아온 행운을 만날 생각에 잠을 설쳤다. 어제도 잠을 못 자 몸이 천근만근인데 비행기 출발이 두 시간 지연되는 바람에 더욱 피곤해졌다.

  “비행기 뜨면 곧바로 잠들 것 같아. 푹 자고 일어났을 때 한국이면 좋겠다.”

  바람과 달리 예진은, 비행기가 이륙해 LA의 고층 빌딩이 레고 장난감처럼 작아지다가 존재를 밝히던 빛마저 보이지 않는 상공에 다다르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보건직 공무원으로 일할 때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 중인 남편을 만났다. 경민이 군 복무를 하는 중에 결혼을 하고 첫째 우빈이가 태어났다. 예진은, 육아가 힘들긴 해도 직장 일에서 열 발자국쯤 물러나 있는 삶이 좋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가거나,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책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취학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예진의 인생에 처음으로 요일을 떠올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날들이 찾아왔다. 우빈이의 첫 돌이 다가올 무렵, 경민의 군 복무가 끝났다.

  “우리 미국 가서 살까?”

  “어떻게?”

  “어떻게 살지는 부딪치며 찾아가지 뭐. 그래도 내가 의사인데, 먹고살 수는 있을 거야. 너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 적 있잖아.”

  나중에 시부모님을 통해 듣게 된 말이지만, 경민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면 미국에 있는 멋진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 본 영화 속 뉴요커들에게 반해 엘리트 출신 억대 연봉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으리라.

  예진은 자신이 하던 일에 미련이 없었다. 제 안에 언제부터 숨어 있었는지 모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자신의 손길이 지금만큼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오면 대학 때 전공을 살려 미국에서 간호사로 취직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예진은 경민의 손을 잡고 미지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미국에서 정착한 시간을 떠올리면 예진은 지금도 눈물이 맺힌다. 경민은 미국 의사 고시를 통과했지만 달달 외운 인터뷰 내용 외에는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예진은 경민의 영어 실력이 자신보다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떠나자고 제안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이었다. 형편없는 영어 실력으로 경민이 취업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낯선 땅에서 어린 아들까지 있는데 졸지에 백수 가정이 되었다. 경민과 예진의 입이 바싹 말라갈 무렵 경민은 한 시립 병원에 취업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제공한 기숙사에 입주했다.

  물가 높은 동네에, 거주비를 아끼게 된 건 행운이었지만 낡은 기숙사는 충격적이었다. 한국 1인용 오피스텔만큼 작은 규모인 건 둘째 치고, 욕실 타일이 떨어져 벽체에 묻어둔 상수도관이 보였다. 주방 싱크대 벽 쪽에는 윗집에서 흘러내린 물 때문에 곰팡이가 말도 못 하게 펴 있었고, 가끔 바닥에 물이 고이기도 했다. 창문은 또 어떻고. 투명한 창이 분명한 데도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매일 병원 기숙사 담당자를 찾아갔다. 한 달간 투쟁 끝에 방 두 개, 물이 세지 않고 타일이 안전하게 붙어 있는 기숙사 키를 받았다. 그 집에서 우빈이가 여섯 살이 되고, 해나가 태어나 두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고생을 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서른여섯 시간 근무를 하고 돌아와 씻지도 않고 쓰러지는 경민을 보며 예진은 자신이 지혜롭고 현명해야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다. 예진은 아이들을 돌보며 가족들의 건강한 먹거리, 편안하게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을 챙기는 데 온 마음을 쏟았다. 마음속에 외로움과 그리움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은 물 준 콩나물처럼 쑥쑥 자랐고, 인고의 시간을 잘 버텨낸 경민은 미국에서 의사로 자리를 잡았다.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 병원 기숙사에서 조금 더 넓은 기숙사로, 월세 주택으로, 이삼 년에 한 번씩 조금 더 좋은 공간으로 이사를 하다가 마침내 경민과 예진의 이름으로 집을 산 날 두 사람은 와인 잔을 기울였다.

  “내 꿈을 좇아 낯선 곳에 와서 고생 많이 했지? 당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얘기해. 내가 적극 도울게.”

  단지 남편의 그 말 때문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예진의 마음속에 목마름이 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갈증이었다. 우성이와 해나 친구 엄마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쇼핑하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것이었다. 운동을 해도 그때뿐, 좀체 사라지지 않는 불덩어리가 가슴속에 있는 것 같았다.


  -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


  책에서 본 한 문장이 예진의 심장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우성이를 낳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예진은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미국 생활에 정착하는 힘든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책 덕분이었다. 수많은 활자를 읽어 내리면서 활자를 만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문장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두가 학교로, 병원으로 나가고 집안이 조용해지면 예진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소설을 쓰고 싶었다. 예진이 지금껏 읽은 소설이 족히 천 권은 될 것 같았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천 권을 읽었으면 한 편의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고국의 촘촘한 방역 성과가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져 ‘K-방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보건소가 떠올랐다. 역대급 역병으로 밤낮없이 일하는 보건소 직원들의 고생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도 웬만큼 상상할 수 있었다. K방역의 중심인 보건소에 십팔 년 전 자신을 놓았다. 그 옆에 신출내기 공중 보건의였던 경민이 있었다.


  경험에 허구를 더한 소설을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20’도 나오지 않았지만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추운 겨울 길에서 따뜻한 어묵 국물을 마실 때처럼 마음이 데워졌다. 누가 읽든 그렇지 않든 예진은 쓰는 게 즐거웠다. 즐거운 일을 꾸준히 했더니 어느 날 자신의 소설이 다음앱 메인에 뜨며 조회수 20만 회를 기록했다. 갑자기 구독자가 몇 천 명이 되었다. 예진은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 소설 『나의 보건 일지』가 출간되며 예진은 골수 팬층을 가진 작가가 되었다. 골수팬들은 브런치뿐만 아니라 예진의 사적인 SNS 계정에도 찾아와 과히 똥 손의 작품인 게 분명한 요리 사진-예진은 이십 년 가까운 베테랑 전업 주부 경력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요리를 잘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을 보고도 ‘요리책을 내면 꼭 사겠다’라고 말해 예진의 정신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당신 책, 인기가 많긴 많나 봐.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당신 소식 물으며 연락을 해온다니까. SNS에 팬들이 쓴 댓글 보니까 백 명쯤은 당신이 무슨 콘텐츠를 팔아도 살 기세던데? 시험 삼아 음반 한 번 내 볼까?”        


  예진은 자신의 인기를 숫자로만 표시된 가상화폐 계좌를 바라보듯 했다. 예진의 인기를 시험해보자며 던지는 경민의 ‘아무 말’도 꿈결처럼 느꼈다. 한국에 가서 팬들의 실체를 보지 않고서야 언제든 연기처럼 사라질 허상이라 생각했다.







  예진은 SNS에 한국 방문 예정을 알렸다. 전국 곳곳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북 토크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북 토크에서 예전부터 블로그 이웃이었던 유인혜를 만났다. 리빙 인플루언서인 그녀의 글을 보며 집 정리와 요리를 했다. 유인혜가 보건직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블로그에 그날그날 학습 진행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을 때, 예진은 자신의 전직을 밝혔다. 선배 보건 공무원으로서 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소스를 댓글로 남기며 인혜를 응원했다. 인혜는 예진이 쓴 소설의 1호 독자였다. SNS로 시작한 만남이지만 꾸준히 서로의 글을 읽어온 두 사람은 누구보다 내밀하게 상대를 알고 있었다. 실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서로를 덥석 끌어안았다. 북 토크 참석자들의 질문 시간이었다.


  “가슴속에 이런 글을 품고 계신 분이, 어떻게 이십 년 가까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사셨어요? 힘들고 외롭지 않았어요?”

  “인생은 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미국에 갈 때만 해도 일하는 게 지긋지긋하게 싫었어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부딪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누구나 그런 때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다 던지고 떠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그게 현실이 된 거예요. 그땐 ‘옳다구나’ 싶었어요.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지난날이 그리운 거예요.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아요.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 과거가 되니 그리워지고, 그럼 지금도 언젠가는 그리운 과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어렸고, 남편은 바빠서 잠잘 시간도 없는 사람이라 육아나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제가 그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시겠죠? 그냥 현재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는 게 행복이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그리운 과거가 될 것이라고. 덕분에 남편이 자리를 잘 잡았고, 아이들은 착하고 건강하게 자랐어요. 후회 안 해요.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해요.”






  예진은 북 토크를 위해 전국을 도는 동안 가족들을 만났다. 예진의 고향인 부여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는 언니 임은진 집에 초대를 받았다. 사십 대 중반에 결혼해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든 언니 부부는 여전히 신혼 같았다. 몇 년 사이 형부의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어 있었다.

  “언니, 결혼해서 사니까 뭐가 제일 좋아?”

  “세상 모두가 내게 등을 돌려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거기서 오는 든든함. 따뜻함.”

  “언니,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 안 들어봤어?”

  “그러니까 말이야. 콩깍지가 씌었을 땐 무조건 내 말이 맞다던 사람이, 콩깍지가 벗겨지니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건 옳고 이건 그르고’ 하는 식으로 따지니까 ‘남의 편’이 되는 거야. 부부 사이에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상대를 ‘수용’하는 넉넉한 마음이 우선이야. 난 늦게 결혼해서 그런지, 늦게라도 내 옆에 나타나 내 편이 되어 준 이 사람이 소중하고 감사해.”

  “형부 생각은 어때요?”

  “나는 죽을 때까지 은진 씨 편이에요.”

  “아휴. 닭살 돋아. 이 부부 얘기 너무 간지러워서 못 듣고 있겠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경민이 말했다.

  “우리 미국 생활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올까? 팬들 만날 때마다 한국 오는 것도 힘들 테고, 온라인 강의나 모임 때 시차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잖아. 우빈이는 내년이면 대학 갈 거니까 혼자 지낼 수 있고, 해나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나 국제학교에 입학하면.. 어때?”

  “당신은?”

  “나야 들어온다고 하면 반길 곳 많을 걸? 이제 내가 당신 내조할 차례인 것 같아. 나도 평생 임예진 편이야.”

  예진은 경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어쩌면 자신의 다음번 한국행은 여행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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