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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Jul 26.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5화-박정우)

당신의 결혼 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윤하야, 오늘 조금 일찍 나가서 내 머리 다듬고 염색해줄래?”

  “염색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흰머리가 한 가닥씩 보이는 게 영 거슬려서.”

  “응, 알겠어.”

  정우는 아내 윤하와 같은 직장으로 출근한다. 20대 때 프랜차이즈 헤어숍에서 만났다. 각자 독립해 정우는 남성 전문 바버숍을, 윤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머리를 맡길 수 있는 헤어숍을 운영하다가 작년에 숍을 합쳤다. 정우가 대표로 되어 있는 헤어숍에는 정우와 윤하, 정우와 윤하를 번갈아가며 눈치껏 보조하는 디자이너, 왁싱 디자이너 이렇게 네 명이 함께 일한다. 오늘은 정우가 윤하에게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맡길 테지만, 윤하도 종종 정우에게 머리를 맡긴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의 모발 상태와 헤어스타일 취향을 잘 알고 있다. 윤하는 다른 고객에게 그러하듯 정우를 샴푸실 침대에 눕히고 뒷목부터 시원하게 마사지해 주었다. 쿨링감이 가득한 제품으로 두피 스케일링까지 받으니 정우는 여기가 천국인 듯싶었다.

  “마누라, 손님 받기도 전에 에너지 너무 많이 빼는 거 아냐? 시원하고 너무 좋네.”

  “다음에 나도 이렇게 해 줘.”

  “알겠어.”

  샴푸실을 나와 드라이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을 때, 보조 디자이너가 출근했다. 정우와 윤하의 연륜이 묻어나는 꽁냥꽁냥 한 시간이 끝났다.

  “오늘 예약 풀인 거 알죠? 에너지 끌어 모아서 하루 잘 보내 봅시다. 오늘 잘 버티면 내일, 모레는 쉬는 날이니까. 아자!”

  “아자!”

  대표의 마지막 구령을 다 같이 힘차게 외치고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게 이곳의 루틴이다.







  직업의 특성상 남들이 다 쉬는 휴일에 더 바빴다. 프랜차이즈 헤어숍에서 일할 때에는 고정 휴일이 없었다. 순번대로 쉬기 때문에 휴일이 들쑥날쑥했다. 윤하와 각자 헤어숍을 운영할 때부터 월, 화요일 이틀을 휴일로 정했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숍의 문을 닫는 결정이 쉽지 않았다. 문을 여는 횟수는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정우도, 윤하도 2년제 미용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으니 거의 20년간 미용업을 해왔다. 오래 서있는 일에 따라오는 직업병-허리 디스크나 하지정맥류 등-의 전조 증상이 나타났다. 윤하는 손목 통증 때문에 자주 아대를 끼고 한의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정우는 식사 때를 따로 정해두지 않고 손님이 없을 때 급히 먹다 보니 만성 위염이 생겼다. 손목도 안 좋았다. 급기야 정우는 손목 건초염으로 수술 후 한 달간 깁스를 하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정우는 과감한 결심을 했다. 주 2일은 쉬리라.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삶의 질을 높이리라.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모두 일하고 싶은 숍을 만들리라.


  가위질을 하는 정우의 손이 가벼웠다. 직장인들이 금요일 오후를 손꼽아 기다리듯 정우는 일요일 저녁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설렜다. 남들이 출근하는 월, 화요일에 쉬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는 게 어려웠다. 정우도, 윤하도 쉬는 날 함께 놀 사람이 서로 뿐이었다. 각자 따로 노는 날도 있지만 함께 노는 게 더 즐거웠다.

  쉬는 날이면 두 사람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반려묘인 레오, 유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허기만 채운 다음 멋지게 단장하고 맛집을 향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면 누구든 시선을 보낸다. 잘생기고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두 사람 다 키가 크고 스타일이 좋다. 함께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군살이 없고 근육이 적당히 붙어 탄력이 있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혀를 녹이는 음식과 함께 지난 한 주의 피로를 날린다.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방전된 에너지가 100% 충전되는 기분이다.

  “우리 이제 뭐 할까?”

  습관적으로 물어보지만 두 사람이 이어서 하는 일은 대게 정해져 있다. 핫플을 구경하며 SNS에 올릴 사진을 찍거나 쇼핑을 하는 것이다. 결정은 윤하가 하는 편이다.

  “쇼핑 갈까? 나 사고 싶은 스타일 모자가 있는데, 커플로 쓰고 싶어.”

  모자로 시작한 쇼핑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신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정우는 가끔 윤하의 씀씀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이제 막 마흔인 보통의 남자들 보다는 외모를 꾸미는 데 돈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브랜드를 따지지는 않는다. 비싼 브랜드 상품이 아니라도 정우가 툭 하고 대충 걸치면 사람들이 명품인 줄 착각할 때도 많았다. 자신이 걸친 제품보다 자기 자신이 명품이 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며 운동을 해왔다. 윤하도 충분히 어떤 상품이든 명품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옷걸이인데, 브랜드에 집착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윤하의 과소비는 옷에서 끝나지 않는다. 월 2회 피부 관리숍에 가고, 매월 한 번씩 타이 마사지숍, 네일숍에 간다. 속눈썹 연장 숍에도 한 달 주기로 가는 듯하다. 초보 딱지를 떼자마자 외제차를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정우는 국산 그랜저를 타지만, 윤하는 BMW5 시리즈를 탄다. 두 사람이 한 달에 천오백만 원 정도 번다고 하면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을 보내지만 타들어 가는 정우 속은 아무도 모른다. 상가 월세를 내고, 자동차 리스비, 고정 지출, 양가 부모님 용돈, 두 사람 외모 관리 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다. 속 빈 강정은 정우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정우는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앞에 예약 손님이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저도 모르게 그랬던 것이다.

  “사장님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네? 아. 죄송합니다. 오셨군요.”

  “괜찮아요. 한숨을 크게 쉬기에. 무슨 일 있나 해서요.”

  “아니에요. 오늘도 따님과 같이 오셨네요. 회원권은 온 가족이 함께 쓸 수 있으니 다음에는 사모님도 함께 오세요.”

  정우는 윤하에게 머리를 맡긴 김태식 고객의 딸을 보며 말했다.

  “하하. 네... 같이 쓸 와이프가 없네요.”

  “앗, 죄송합니다. 큰 결례를.....”

  정우는 붉어진 얼굴과 당황한 손길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정말 괜찮습니다. 하하.”

  정우는 단골 고객인 김태식에게 이런저런 서비스를 더해 주었다. 말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옆머리 다운펌, 두피 스케일링을 해주었다. 태식 딸의 헤어컷을 마치고 카운터에 앉아 있던 윤하가 계산을 했다. 정우가 다운펌, 두피 스케일링 시술을 하는 걸 곁눈질로 본 윤하는 기본 헤어컷 가격에 서비스 시술비용을 더해 적립금을 차감하려고 했다.

  “아니, 그거 아니야. 내가 서비스로 해드린 거야. 기본 헤어컷 비용만 차감하면 돼.”

  정우는 팍팍하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윤하가 못마땅했다. 자신에게 그토록 관대하게 쓰는 사람이 단골에게 한 번쯤 해줘도 손해가 아닌 서비스에는 인색했다.

  ‘저렇게 인색하니까 단골이 자꾸 떨어진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

  정우는 속으로 윤하를 흘겨보았다. 윤하도 마찬가지로 정우를 흘겨보고 있을 것이었다.


  “저기 사장님, 잠깐 저쪽에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아 네네. 들어가시죠.”

  무슨 일일까? 당황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정우는 태식을 안쪽 직원 휴게공간으로 모셨다. 태식은 어려운 말을 꺼내려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예상외의 부탁이었다. 사실은 아내가 둘째를 낳을 때 세상을 떠났는데, 딸이 사춘기가 된 것 같다고, 신체가 변하는 게 보이는 데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자신에게 여동생이나 누나가 없고,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도움을 줄 수 없는데, 딸아이가 윤하 디자이너를 참 좋아한다는 뜻밖의 말을 전했다. 윤하 언니처럼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며. 아내에게 부탁해 딸과 한 번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다리를 놔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때 속옷도 골라주고, 위생용품 사용 방법이라든지, 사춘기의 신체·심리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 같은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이모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사장님 두 분 바쁘신 줄 알지만.. 제가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아내 분께 말 좀 잘해주세요.”

  안 그래도 정우는 아까 태식에게 실수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계산적인 윤하가 흔쾌히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태식의 사정이 딱해 꼭 도와주고 싶었다.







  김태식 고객의 사정과 부탁 내용을 전해 들은 윤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한 주 뒤 토요일, 윤하는 평소보다 일을 일찍 끝내고 김태식 고객의 딸을 만나러 나갔다.

  “내가 그 아이 대모가 되어줄까?”

  태식의 딸과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온 윤하가 말했다.

  “대모? 대모가 뭐야?”

  “소설책 읽다가 본 건데, 가톨릭교에서 영적 부모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어.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도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면 엄마 대신이라는 뜻이니까. 가끔 뒤에서 후견인처럼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 사춘기 여자아이에게 자기보다 세상을 오래 산 여자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니까.”  







  두 사람이 딩크족의 삶을 선택한 데에는 정우의 영향이 컸다. 중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했다. 정우는 아빠와 함께 사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엄마는 재혼을 했고, 지금도 재혼한 남편의 자식들과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자신은 여리고 작은 존재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윤하는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아도 좋고,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서만 행복한 삶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지 말고 반려묘를 키우며 우리의 삶, 각자의 삶을 즐기자는 정우의 제안에 윤하도 동의한 것이다. 친구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집중한 삼십 대 때, 정우와 윤하는 사랑을 듬뿍 담아 반려묘 레오와 유키를 키웠다. 그들에게 레오와 유키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 윤하였는데, 대모가 되어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는 말에 정우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잘 안다고 생각한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다.






  유키가 방에서 나와 집에 돌아온 윤하를 반겼다.

  “예쁜이, 잘 놀고 있었어? 레오는 어디 갔어?”

  레오가 보이지 않았다.

  “레오야! 레오야!”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정우야, 레오 어딨어?”

  “그러게. 나도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못 봤는데, 얘가 어딨지?”

  화장실 안, 우리가 사용하는 변기 옆의, 레오와 유키의 화장실에 잠들어있는 레오 모습은 한눈에 봐도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우가 먼저 레오에게 다가갔다. 레오 몸이 굳어 있었다. 정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우와 윤하는 레오를 들어 안고 밤새 울었다. 레오는 왜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을까? 레오는 그렇게 아프다는 신호도 없이 갑자기 정우와 윤하 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른 후 한동안 슬픔이 두 사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우는 헛헛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생각했다. 용기를 내 아이를 낳아볼까? 요즘은 사십 대에 늦둥이를 낳는 사람도 많던데. 윤하가 태식의 딸을 만나고 와서 그 아이의 대모가 되어줄까 하던 말도 떠올랐다. 윤하도 실은 아이를 갖고 싶은 게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정우는 자신이 없었다. 태식의 아내가 둘째를 낳다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도 가시처럼 정우 마음에 박혔다. 어릴 때 자신의 엄마가 떠났다, 사랑하는 레오가 떠났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제 곁을 하나, 둘 떠나지만 떠나는 게 두렵다. 정우는 마흔이 되도록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정우는 머리를 하러 숍에 온 오랜 절친 장현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지만 그는 정우가 한 말의 맥락에서 벗어난 조언을 해주었다.

  “너 보면 말이야. 촛불집회로 탄핵된 전 대통령이 떠올라.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말을 말자.”

  정우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장현은 영문도 모른 채 정우를 따라 함께 웃었다.

  ‘그래. 처음 마음먹은 대로 윤하와 둘이서 백 살까지 오손도손 살자. 지금 내 옆에 건강하게 살아있는 아내에게 감사하며. 레오 닮은 아이 한 마리만 데려오자. 유키도 외로울 테니. 지금 이대로 모든 게 좋다. All is well.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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