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게 전달받은 가위를 든 승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 둘, 셋을 센 다음 탯줄을 잘랐다. 이미 모체와 분리되어 형식적으로 남은 탯줄을 잘라낼 기회를 아빠에게 준 것이라 하지만 갓 태어난 생명체의 일부를 잘라낸다는 미안함, 엄마 뱃속에서 꿈틀대던 녀석을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경외감이 더해져 승준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작고 귀한 생명에게 불온한 자신이 가위질을 해도 되는지, 과연 자신이 그런 자격이 있는 경건한 사람인지까지 생각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볼 정도였다.
마흔다섯인 승준은 팔 년 전 아내 박진아와 결혼했다. 승준의 고향 마을에 현수막이 붙었다.
- 편창현 씨 여덟째, 아들 편승준 장가갑니다. 참석해서 축하해 주세요. -일시: 2015. 4. ××. ×시. 장소: 세종시 ××웨딩홀-
승준의 위로 누나가 다섯 명, 형이 두 명이었다. 모두 다 결혼해 자식을 낳았고, 첫째 누나의 자식이 자식을 낳았다. 승준의 직계가족과 직계가족의 자식을 합치면(큰 누나 자식의 자식을 포함) 스물여덟 명이었다. 결혼식 날 사진 촬영사는 요즘 이렇게 많은 직계가족 수는 처음 본다며 흥미로워했다.
“우리 막내까지 장가보냈으니 내가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어.”
노모는 주름진 거친 손으로 승준의 손과 얼굴을 아기의 그것처럼 어루만졌다.
“엄마 무슨 소리야? 승준이가 자식 낳아서 잘 크는 것도 봐야지.”
둘째 누나 말에 승준의 엄마는 ‘그래 그래야지’라고 말하며 저고리 고름을 말아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승준은 직장이 있는 경기도 A시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총각시절에 일억 원 정도 모아둔 돈이 있었는데, 누나들과 공동투자로 지방의 작은 다가구주택을 매수하는 데 썼다. 신혼집 마련을 위해 목돈이 필요했을 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중에는 몇 천만 원뿐이었다. 그 돈에 각종 대출을 풀로 끌어당겨 전세 자금을 마련했다. 예비 신부는 무주택 기간을 늘려 새 아파트 청약 당첨을 기대해 보자고 말했다. 청약 당첨 전까지는 같은 보증금이라면 아파트든 빌라든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더 넓고 신축에 가까운 집에 살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A시 20평대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너희는 애 안 낳니?”
일 년에 한두 번, 세종에 내려갈 때마다 승준의 장인어른은 자동응답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체 요즘 애들은 왜 아기를 안 낳으려는지 모르겠다니까. 정우는 레오랑 유키를 제 자식처럼 키울 거라나 뭐라나. 아기 낳으라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이제 안 올 거라나. 협박도 아니고 참 나. 그러니 너희라도 얼른 낳아. 진아 조금 있으면 마흔이야. 마흔 되기 전에 낳아야지.”
세종에서 집으로 올라올 때면 승준과 진아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적막을 깨고 승준이 물었다.
“진아 네 생각은 어때? 아기 말이야. 네 생각이 중요해.”
“나? 나는 낳아 키워도 좋고. 안 낳아도 좋아. 다만 아이를 낳는다면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 청약 당첨돼 새 아파트 이사 가면 그때? 오빠 생각은 어때?”
승준은 조카가 많다. 조카의 자식까지 열한 명이다. 조카가 생기면 어김없이 부부의 생활이 팍팍해졌다. 부드럽던 누나와 형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알콩달콩 속삭이던 신혼부부의 모습은 온 데 간데 사라진 채 억센 아주머니와 배 나온 아저씨가 남아 있었다. 몰캉 쫀득한 아이 살과 닿을 때의 감촉, 혀 짧은 말투의 귀여움, 마음을 녹이는 웃음까지 아기가 주는 큰 기쁨도 어느덧 식상해졌다. 승준은 마치 자신이 아기를 열명쯤 키워보았다는 착각에 빠졌다.
“나도 네 생각과 같아.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승준은 속마음을 숨기고 모든 결정과 책임을 진아에게 전가했다. 진아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가씨 때와 변함없이 주말마다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갔고(승준보다 진아의 친구와 함께 가는 횟수가 더 많았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떠났다.(신혼여행 후 승준과 함께 간 해외여행은 없었다) 필라테스인지 플라잉 요가인지 아무튼 다양한 운동을 배우는 것 같았다. 진아는 늘 다이어트 중이었고, 한 번은 마흔 기념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을 것이라며 혹독한 다이어트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따로 얘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승준은 진아의 행보를 보며 ‘진아는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무슨 통화야? 처남이야?”
“응. 아빠가 볼 때마다 애 안 가질 거냐고 닦달을 해서 아빠 집에 가기 싫대. 나보고 좀 노력해 보라는데? 자기네는 반려묘만 키우면서 둘이 평생 알콩달콩 살기로 합의 봤대. 누난 집 사기 전엔 애 안 가질 거라고 말했어.”
승준의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손가락질받은 기분이었다. 승준이 볼 때 진아의 행동은 집을 사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의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여태껏 진아가 국내외를 여행하며 쓴 돈만 해도 족히 몇 천만 원은 될 것이다. 주기적으로 가방과 값비싼 브랜드의 옷을 구입하는 등 진아는 씀씀이가 적지 않은 사람이다. 승준은 대거리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누나들과 공동 투자한 건물을 팔아야 투자금을 회수할 텐데.. 그게 아니고는 목돈을 쥘 방법이 없어. 요즘 비트코인 얘기가 많이 돌던데, 비트코인에 돈을 넣어 볼까?’
삼천만 원으로 시작한 가상화폐가 오천만 원으로 오르더니 마지막 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머리는 이쯤에서 그만 돈을 빼라 하고 있었고, 마음은 직감을 믿고 좀 더 베팅해보라고 말했다.
떡상이었다. 가상화폐 계좌에 일억 오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찍혔을 때 승준은 멈추었다. 일억 오천만 원으로 주식을 샀다. 말로만 듣던 스노우볼 효과를 체감할 수 있었다. 삼천만 원에서 일억 오천만 원으로 불어난 종잣돈이 더 빠른 속도로 눈덩이를 불렸다. 주식 계좌의 돈이 삼억 원을 돌파했을 때 승준은 과감하게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수도권과 서울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영영 세입자로 살게 될 것 같았다.
승준은 진아에게 그동안 비트코인과 주식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는지 이야기했다. 진아의 눈은 결혼식 날보다 더 빛났다.
“돈 전부 내 통장으로 넘겨줘. 오빠가 가지고 있다가 욕심나서 다시 주식에 넣으면 어떡해.”
“그래 알았어.”
진아는 삼억 원을 넘겨받은 날 승준과 함께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집 담보 대출을 받아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을 선택했다. 준공일로부터 십오 년이 지난 서른네 평 아파트였다. 삼천만 원을 들여 집 전체를 새것처럼 수리했다.
이사 후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내일 휴가 낼 수 있어?”
“응? 무슨 일 있어?”
“같이 병원에 좀 갔으면 해서.”
진아에게 큰일이 생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승준은 두렵고 걱정이 되어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진아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산부인과였다. 진아는 의사에게 다짜고짜 인공수정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승준과 진아는 결혼 후 지금까지 피임을 했기 때문에 자연 임신 시도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의사는 무슨 말을 내뱉으려 하다가 다시 삼키고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모니터에는 승준과 진아의 만 나이가 기재되어 있었다.
“박진아 님이 마흔둘이고, 편승준 님이 마흔 넷이니 자연 임신을 시도했을 때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박진아 님 생각이 그렇다면 곧바로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자연임신을 시도하며 시간이 계속 흐르면 산모 님 나이가 더 많아지니...”
운이 좋게 인공수정 한 번만에 아기 천사가 찾아왔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승준은 작명 앱을 이용해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편재하.
“재하야, 까꿍.”
열 명의 조카를 보며 승준은 자신이 아기를 열 명쯤 키웠다고 착각했는데, 그건 정말 착각이었다. 제 자식이 주는 행복은 조카가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기쁨과 사랑스러움과 행복이 가슴에 흘러넘쳤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가져와도 자신이 느끼는 충만함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감정이었다. 딩크족으로 반려묘만 키우며 살겠다는 처남 부부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이를 낳으라고 적극 권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래서 어르신들이 입을 모아 자식을 낳으라고 말하는 거구나.’
퇴근 후 아직 한창 몸조리를 해야 하는 진아에게 생일 상을 선물 받았다.
“힘들게 왜 이런 걸 준비했어? 내가 네 밥상 차려줘도 모자란데.. 고마워.”
“별로 한 거 없어. 미역국은 이모님이 계속 끓여 주시니 늘 집에 있고, 반찬은 다 샀어. 고기만 사서 좀 볶았고. 나가서 과일이랑 케이크 사 온 것뿐이라 미안한걸.”
케이크에는 커다란 숫자 초가 꽂혀 있었다. 선명한 숫자. 45였다.
“오빠 생일 케이크에 숫자 꽂으며 생각해 보니 재하 초등학교 입학할 때 내 나이가 오십이야. 쉰이라고 쉰! 맙소사.”
깔깔대며 웃는 진아 눈가에 눈물이 설핏 보였다.
“오해하지 마.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가끔씩 이러는 거야. 우리 나이에 현타 와서 눈물 나는 거 아니라고.”
아들과 진아와 함께 맞는 승준의 첫 생일이다. 마흔다섯. 승준이 환갑이 되면 재하는 겨우 중학교 3학년이다. 오래도록 돈을 벌어야 한다. 승준은 노후에 편히 쉬겠다는 꿈을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승준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행복하면서도 두려웠다. 작고 여린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잘 키워야 할 텐데. 이 아이가 커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할 텐데. 진아도 그래야 할 텐데. 승준은 이제야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공자는 마흔이 되었을 때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어졌다는데, 자신은 여전히 세상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이제 생일 케이크에 꽂는 초는 나이와 상관없는 수로 꽂자. 난 홀수가 좋으니까 큰 초로 세 개만 꽂아줘. 진아 넌?”
“그럼 내 생일엔 하트 모양 초 하나만 꽂아줘.”
“알았어. 촛불 끌게.”
승준은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단 하나의 소원을 빌었다. 가족 모두의 건강. 그거면 족하다. 그게 전부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