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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의봄 Aug 11. 2022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10화-김태식)

당신의 결혼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아빠, 꽃은 안 사도 돼. 내가 온라인으로 검색해서 샀어. 이거 봐. 예쁘지?”

  “정말 예쁘네. 그동안 아빠 센스가 못마땅했던 거지?”

  태식은 제 엄마를 쏙 빼닮은 태리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꽃을 든 태리를 보니 부케를 들고 활짝 웃던 아내가 떠올랐다.  







  ‘내가 둘째 낳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태리 하나만 잘 키우자던 혜진이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내를 잃은 절망감 때문에 둘째 도윤이 아장아장 걷고 말하고 아빠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 태식은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태식은 도윤이가 돌이 될 때까지 도윤과 제대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둘째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원망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혜진은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수술 전 태식은 병원 측에 혜진이 혈액응고장애가 있다고 말했지만 병원은 수술 후 재검사 과정을 생략하고 혜진을 일반 병실로 옮겼다.

  “나 배가 너무 아파. 이상해.”

  태식은 간호사를 불렀다. 혜진의 혈압과 맥박을 잰 간호사는 급히 의사를 불러왔다.

  “대학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 여기서 진료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태식은 아파하는 혜진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배를 찢은 아픔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복통에 혈압과 맥박이 떨어진 혜진은 만신창이였다.

  “급성 출혈로 인한 혈복강입니다. 뱃속에 피가 고여 있어요.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생살을 찢는 고통을 겪은 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혜진은 다시 차가운 수술실에 누웠다.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아이를 낳고 온몸의 골수가 다 빠져나간 몸으로 또 한 차례의 수술을 견뎠을 혜진의 몸이 되어 고통의 깊이를 가늠해본 것은 혜진이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수술 후 한 달이 지나도록 혜진은 퇴원하지 못했고 도윤에게 젖을 물리지도 못했다. 혜진은 수술부위 감염, 패혈증 등으로 꽃 같은 나이에 토끼 같은 자식 둘과 남편을 남겨두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아내가 떠나고 한동안 태식의 부모님이 태식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았다. 도윤은 할머니가 다 키웠다. 태식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들 수가 없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아 오기도 했다. 진작 기저귀를 떼고 밤잠을 잘 때도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던 태리는 어린이 집에서 옷에 쉬를 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 권유로 태리도 상담을 받았다. 어린아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어미를 잃은 새끼가 어떻게 평소와 변함없이 살 수 있겠는가. 태식은 태리를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엄마 없이 자랄 태리가 안타까웠다. 왜 하필 내 가정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생명과 바꾼 아이를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혜진이 불쌍했다.

  ‘병원에서 수술 직후 검사만 했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더라면... 혜진이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럼 혜진이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일까?’







  혜진이 떠난 지 삼 년쯤 되었을 때였다. 태리가 일곱 살, 도윤이 네 살이었다.  

  “아빠! 나 엄마 만났어.”

  “응? 뭐라고?”

  “엄마 잘 있어. 엄마가 태리 안아주고 뽀뽀해줬어. 그리고 아빠 술 좀 그만 마시래.”

  태리가 정말 꿈에서 엄마를 만난 것일까? 술 마시는 아빠가 보기 싫어 지어낸 말일까? 어찌 되었든 그때 태식은 혜진이 먼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살면 나중에 만나서 자기 볼 면목이 없을 거라며 혼내는 것 같았다. 도윤이한테도 그러지 말라고. 그 아이가 무슨 죄냐며. 살아있을 때처럼 자신의 등짝을 세게 한 대 때리는 것 같은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혜진이 떠난 후 멈춘 것 같은 시간이 흘러 태리가 열세 살이 되었다. 혜진이 기일 전 날이면 태식은 항상 헤어숍에 간다.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고 전문가의 손길로 면도까지 매끈하게 마무리한다. 혜진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다. 그래야 하늘에 있는 혜진도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태리가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태식이 가는 헤어숍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태식은 남성 전문 헤어 디자이너 박정우에게 머리를 맡기는데, 언제부터인가 태식이 헤어숍에 갈 때면 태리가 함께했다. 태리는 여성 전문 헤어디자이너인 정윤하에게 헤어컷을 한다. 저번에는 난생처음 S컬 펌을 했다. 오늘은 앞머리를 자르겠다며 태식을 따라왔다.

  “오늘도 따님과 같이 오셨네요. 회원권은 온 가족이 함께 쓸 수 있으니 다음에는 사모님도 함께 오세요.”

  박정우는 정윤하에게 머리를 맡긴 태식의 딸 태리를 보며 말했다.

  “하하. 네... 같이 쓸 와이프가 없네요.”

  박정우 헤어디자이너는 손님에게 큰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해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태식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서비스로 다운펌과 두피 스케일링을 해주었다. 빈말이 아니라 태식은 이제 정말로 괜찮았다.







  태식이 퇴근할 때까지 태리와 도윤은 하교 후 학원에 갔다가 집에 잠시 들러 주말에 태식이 사둔 간식을 챙겨 먹는다. 태리가 엄마처럼 도윤을 챙겨 아파트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숙제를 한다. 태식이 회사에서 출발할 무렵이면 태리와 도윤이 집에 돌아와 씻는다. 태식이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가 만들어두고 가신 찌개 냄비와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태식의 어머니는 매일 낮에 아들 집에 들러 청소와 저녁 먹거리를 준비해두고 가신다. 저녁 식사 후에는 셋이 손을 잡고 아파트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간다. 요즘 도윤이는 스케이트 보드에 빠졌고, 태리는 자전거를 즐겨 탄다. 걷는 것으로는 아이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태식은 저절로 뛰게 된다. 아이들 덕분에 생각지 못한 운동을 하고 있다.


  주말에는 태리가 한 주 동안 검색 후 점찍어 둔 곳으로 나들이를 간다. 신상 맛집부터 인☆ 핫플까지, 당일 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태리 나이면 이제 부모님과 노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해 주말이면 얼굴 보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태리가 주도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즐길 거리를 준비해주니 태식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도윤이는 어릴 때부터 제 누나를 엄마처럼 잘 따르니 누나가 가자고 하는 곳은 어디든 오케이다. 도윤이가 공룡 박물관이나 곤충 박물관처럼 태리 관심사 밖의 장소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는데, 가끔이기 때문에 태리가 흔쾌히 허락하는 편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정도 놓치지 않는다.  


  태리가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에는 혜진의 영향이 크다. 살아있을 때 혜진은 태식과 연애시절부터 도윤이 태어나기 전까지 함께 한 시간을 사진으로 꼼꼼히 남겼고, ‘언제 어디서 담은 추억’인지를 또박또박 손글씨로 남긴 포토북을 만들어 두었다. 제 엄마가 떠난 후 태리는 그 포토북을 보물처럼 여기며 모서리가 닳도록 넘겨 보았다. 지금은 태리가 혜진처럼 사진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일 년치 사진이 모이면 날짜별, 월별로 정리해 태식에게 인화를 부탁한다. 태식이 사진을 인화해 포토북과 함께 태리에게 넘기면 태리는 혜진이 그러했듯 시간 순으로 사진을 붙이고 그 아래에 코멘트를 남긴다. 어쩌면 태식은 착하게 잘 자라는 태리와 도윤에게 매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혜진에게 받은 사랑의 기억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태식의 벌이가 괜찮아 외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다. 자신의 가정과 반대로 아빠를 잃고 엄마와 살아가는 가정을 떠올려 보았다. 전문직이 아니라면 혼자 벌어 아이를 키우는 게 자신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슬픔에서 벗어나 생의 기쁨을 다시금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태식은 아빠 없이 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후원 단체를 통해 가끔 편지를 받을 때가 있다. 혜진이 떠난 후 자신의 삶은 영원히 반쪽자리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울컥하고 따뜻하게 채워지는 걸 느꼈다.








  태식 가족은 태리가 미리 주문해 둔 조화 꽃다발을 들고 혜진을 만나러 갔다.

  “태리는 엄마 얼굴 기억 나?”

  “잘 모르겠어. 사진을 봐서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엄마 실제 얼굴을 기억하는 것인지 모르겠어.”

  태식은 이제 한창 동성인 엄마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해지는 사춘기 소녀와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혜진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도윤은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엄마의 부재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엄마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는 일은 없었다. 도윤은 오늘도 납골당의 엄마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혜진아, 잘 지내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지금도 가끔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옆에 있다면.. 있기만 한다면.. 매일 너한테 잔소리 듣고 욕을 먹어도 웃음이 날 것 같은데...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나 오늘 왜 이러지? 애들 앞에서 눈물 보이고 싶지 않은데. 태리가 많이 컸어. 곧 아가씨가 될 것 같아. 그래서 네 생각이 부쩍 나는 것 같아. 너한테 부끄럽지 않게 태리, 도윤이 잘 키울게. 하늘에서 우리 잘 지켜봐 줘. 사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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