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소처럼 늦은 아침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눈을 떠 환한 빛에 적응하려고 몇 번을 깜박였고 두꺼운 안경을 꼈다. 버릇처럼 휴대전화를 켜고 글자를 읽으려고 하던 중 무언가 잘못된 걸 느꼈다. 멀쩡히 읽혀야 할 글자가 휘어 보였다. 처음엔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읽어도 보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애써 상황을 부인했다.
시간이 지나도 눈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시내에 있는 안과로 향했다. 낮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대기실에 앉아 안과에서 홍보하는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보았다. 영상은 황변 변성이라는 병에 주사 한 방이면 된다며 보여주는데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내일이 아닌 줄 알았다. 눈알에 직접 주사라니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진단한 병명은 황반변성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시력을 잃을 수 있다며 빨리 주사를 맞아야 한단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마음에 최대한 빨리 예약을 하고 싶어 간호사를 붙들고 물어봤더니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 달이면 내 시력은 이미 떨어질 때로 떨어져 심각해질 것만 같았다. 그 긴 시간을 집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어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
예전에 눈이 불편한 분들이 텔레비전에 나왔을 땐 무심코 넘겼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방송에 나왔을 때 더 관심을 가졌다. 노란 조끼를 입은 안내견이 익숙하게 길 안내를 하고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참아가며 꿋꿋하게 할 일을 마친 걸 보았을 때 우리 집 강아지같이 느껴져 대견해 보였다.
시각장애인 혹은 안내견이 왜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거라고 관심 두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최대한 빨리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곳을 인터넷으로 알아보았다. 인터넷의 답변은 서울이었다. 서울에 유명한 병원이 두 군데 있는데 그곳에 가면 하루 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답변은 나에게 동아줄이었고 그 길로 최대한 빨리 예약해서 서울로 갔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땐 뾰족한 바늘을 눈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고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실명을 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에 기꺼이 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서울로 향했고 이전 병원과 다른 검사들이 이어졌다. 몸에 형광물질을 넣고 사진 찍고, 안약을 넣는 그 모든 과정이 두렵기만 했다. 일 분이 한 시간 같은 긴 기다림에 지쳤고 앉아 있자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검사 예약을 하면서 알아보니 황반변성은 ‘노인성 질병’이고, ‘고도 근시’를 가진 환자들이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라 암 진단을 선고받은 충격과 맞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딱 내 이야기였다. 고도 근시 때문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어서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긴 기다림 끝에 진료실로 들어갔고 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불안하기만 했다. 마음은 콩닥콩닥 뛰고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했다.
“혹시 어디서 맞으셨어요? 이건 황반변성이 아니라 외부 충격 때문에 내부에서 출혈이 생긴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맞은 기억은 없는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은 있었다. 강아지와 장난치다가 눈 쪽을 잘못 맞았는데 그거밖에는 없었다. 뭐든 괜찮았다. 그저 황반변성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했고 안도의 마음과 함께 처음 갔던 병원에 대한 원망이 저절로 들었다.
만약 예약이 바로 되어 주사를 맞았으면 엉뚱한 약을 눈에 집어넣고 돈을 날리는 거였다. 돈과 몸 상태도 그렇지만 정신건강도 심각했을 거였다. 결국, 꽉 찬 예약이 나를 살려준 셈이다.
새삼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가 몇 년 뒤 부러워하는 하루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눈이 안 좋아지고 나서 많은 정보를 접하기 위해 ‘황반변성 카페’에도 가입했다. 수많은 환자의 투병일지와 극복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애써 위로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알았고 신께 감사했다.
비록 두꺼운 안경을 썼지만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책을 읽게 해 주고,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