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도대체 왜 간 것일까
나는 눈물이 없는 편이다.
아무리 마음이 슬프고 서러워도 실제로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런 나를 울린 유일한 도시가 바로 카이로였다.
여기 사람들은 좀 미친 것 같았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입국에서부터 막혔다. 딱히 이유도 없이 여권을 들고 사라지더니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열댓 명의 사람들은 멍청하게 공항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두어 시간 후 여권을 그냥 돌려준 것을 보면 정말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어찌어찌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한 명씩 다가와 택시를 권했다. 나는 픽업을 예약해 뒀기 때문에 기사를 찾아 숙소까지 잘 찾아들어오긴 했는데 역시나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물 한 병을 사려고 나선 길에서는 이유도 없이 말을 거는 사람들을 하나씩 헤쳐나가야 했고 겨우 찾아들어간 매점 같은 작은 곳에서는 가격을 물어볼 때마다 물 한 병의 가격이 달라졌다.
3일 정도? 그래도 제정신인척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카이로를 떠나 룩소르로 떠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던 택시 안에서 드디어 모든 것이 터졌다.
바로 건너편에 기차역에 보여서 유턴 후 곧 내려주겠지 생각했는데 택시 기사는 길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택시 비용을 더 받기 위해선지 모르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골목 어디론가 들어갔다가 다시 큰길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냥 나 여기 내려주세요
떠듬떠듬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택시 기사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인지 혼자 이런저런 말을 하더니 다시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이 모든 것이 영어를 제대로 못한 나 때문인가 싶은 생각에 미치자 울음이 터졌다. 평생에 그렇게 운 일이 손에 꼽는 것 같다. 그냥 애처럼 와앙- 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택시 기사는 많이 당황스러워했다. 곧 길 한편에 택시를 세웠고 뒤돌아서 나를 보고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그의 말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소리 내어 울면서 지갑을 열고 애초에 흥정했던 돈을 그에게 건넸다.
돈을 받고서도 그는 돌아 앉은 상태로 나를 보고 뭐라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배낭을 주섬주섬 메고 택시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내가 내리자 같이 따라 내렸는데, 내려서 보니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긴 했다. 기사는 계속해서 옆에 붙어 따라 들어왔다.
룩소르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야 했다.
분명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 카페나 블로그에서 표 사는 법 그런 걸 보고 달달 외웠던 것 같은데 미친 듯이 울어댄 이후라 그런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 옆에서 어쩌고 저쩌고 한참 말을 걸던 택시기사는 기차역으로 들어선 후 저쪽 어디론가 가더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 보았던 매표소 앞 풍경은 잊히지가 않는다. 분명 줄을 서있는 거 같은데 창구마다 사람들이 왕창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매표소 쪽에 선 택시 기사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그가 물었다.
룩소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그는 매표소로 돌진했다. 인파를 뚫고 나도 그를 쫓아갔다. 몇 명의 사람들을 헤치고 마침내 그가 창구에 이르자 매표원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는 나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페르스트? 페르스트?
기차 좌석 등급을 묻는 것 같았다.
노노.. 칩... 칩...
3등석이 영어로 기억나지 않아 대충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가 다시 매표원과 몇 마디를 나누었고 매표원이 계산기로 찍어준 금액을 보고 돈을 건넸다. 그렇게 하나의 미션처럼 생각했던 기차표 사기가 얼렁뚱땅 끝났다. 기차표를 손에 쥐고 약간 멍해져 있는데 그가 손가락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말했다.
굿럭
티켓을 구입해 준 것에 대한 대가를 줘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데 그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집트... 여행 내내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이러니 나는 이집트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택시 흥정, 기념품 흥정, 모든 것을 흥정해야 했던 2006년 카이로는 입국과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러니 첫 3일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서 오는 긴장감과 난생처음 겪어보는 낯선 문화권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지쳐서 여행이고 뭐고 다 관두고 좀 더 여행이 쉬운 곳으로 가버릴까? 고민할라치면 갑자기 또 천사처럼 누군가 나타나 상황을 해결해 주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집트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사람은 달라붙는 호객꾼 들을 한 번에 물리칠 수 있는 아랍어 한마디도 가르쳐주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난생처음 보는 이슬람 사원도 인상적이었다.
그 화려함이나 규모보다도 예배가 없는 시간이라면 누구든 들어가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쉬다 보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의 사람들이 다가와 한마디를 걸기도 하고 그러다 사탕이나 젤리 같은 군것질 거리를 나누기도 했다.
카이로는 혼돈스럽지만 그 혼돈스러운 와중에도 자기들만의 질서가 있는 것 같았다. 거기 내가 섞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이방인이었으니까. 사람들은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친절했다. 가진 것이라곤 호텔에서 받은 지도 한 장뿐이었지만 뚫어지게 지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지도를 펴고 어딘지 가늠할라치면 반드시 누군가가 다가와 길을 알려주거나(근데 틀린 길을 알려주는 경우도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그런 성격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여행지에서와는 달리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2006년 여행 때는 1개월, 2007년 여행 때는 총 2개월을 머물렀는데 그때 사귀었던 현지 친구들이 가끔 생각난다.
잘 살고 있을지, 건강한지... 언젠가 다시 이집트를 방문하면 그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