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남은 그리스
두 번째 그리스 여행을 가던 시기에는 필름 카메라에 빠져있었다.
펜탁스 필름 카메라를 샀고, 지금은 단종된 후지필름의 리얼라 ASA100 필름을 열두 통쯤? 챙겼던 것 같다. 36방짜리 12통. 디지털카메라도 챙겼기 때문에 이때는 여행하면서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왼쪽 크로스로 디카, 오른쪽 크로스로 필카. 지금은... 다시 하래도 못할 것 같다.
두 번째 가는 산토리니에서만큼은 퀄리티 높은 필름 사진을 남기고 싶기도 했고, 슬라이드 필름을 갖고 싶어서 전용 필름을 사서 열심히 찍었는데 그때 당시 현상을 해주던 현상소에서 잘못 현상하는 바람에 완전히 날아가버려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필름 스캔본도 정말 오랜만에 찾아보게 되었는데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스캔이 깔끔하게 안된 것 간다. 왼쪽 모서리에 저렇게 까만 선이 하나씩 들어가 있다.
두 번째 그리스 여행에서는 산토리니에서 2박, 미코노스에서도 2박을 했고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에 낙소스인가 하는 섬을 거쳐갔다. 잠깐 스쳐가는 낙소스가 생각보다 너무 예뻤어서 다음 그리스 여행에서는 그리스의 다른 섬들도 꼭 둘러봐야지!라고 결심했었는데 아직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산토리니에 비해 미코노스는 평지가 더 많았고, 여름 성수기의 미코노스는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상이 산토리니에 비해서는 굉장히 도시 같은 분위기로 남아있다.
굉장히 세련된 도시 느낌답게 물가도 꽤 비쌌던 기억이 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행을 간다고 해도 한식을 챙겨가진 않았기 때문에 매 끼니는 현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코노스에서는 물가가 비싸서 주로 마트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다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때 당시에는 디카나 필카 모두 셔터를 신중하게 눌러야 했다.
필카야 당연히 필름의 양이란 것이 한정되어 있어서지만 디카도 사정이 많이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클라우드라는 아주 훌륭한 시스템이 있지만 이때는 디카의 메모리 카드도 한정된 용량이 있다 보니 찍어놓고 쓸모없거나 잘못 찍은 사진들은 지우면서 계속 정리를 하면서 다녔다. 여행이 길 때는 메모리 카드도 서너 개를 준비해서 다녔다. 메모리 카드마다 연도와 나라, 도시명을 써서 보관함에 넣고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때문에 이쯤 인기 있는 한인민박의 서비스 중 하나는 사진 데이터를 CD로 굽는 서비스가 있는 곳이 있던 것이 기억난다.
두 번째 배낭여행부터는 한인민박을 많이 이용하지 않았다.
첫 번째 유럽 배낭을 하면서는 거의 한인민박을 이용했는데, 그때 느꼈던 것이 나는 한인민박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민박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뭔가 계속해서 숙박자들하고 어울리고 식사나 술자리를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두 번째 배낭여행부터는 주로 호스텔을 이용했다. 호스텔에서도 많은 한국 여행자를 만나서 하루, 이틀 정도 잠깐의 일행이 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는데 한인민박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없었기 때문에 그 편이 나와 잘 맞았다.
이제는 가진 필카도 없지만, 오랜만에 필름 사진을 보니 그 아련하고 설레는 느낌이 그리워진다.
열심히 찍은 필름을 하나씩 통에 넣고, 도시 이름을 써서 라벨도 붙이고, 서울로 돌아와 현상이 끝날 때까지 두근두근하는 그 느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것만의 설렘이 있다.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정리하면서 다시 필름카메라를 사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글쎄.., 다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