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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수 김 Oct 14. 2023

나만의 글로

적어봅니다.


1. 노래 하나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슬픈 것이 있다면 그중에 하나가 치매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기억도 못합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만약에 죽어도 모를 것입니다.

나 자신조차 나이가 들어도 모르고 아파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즐겨 부르는 짧은 노래를 하나 정했습니다.

가끔씩 딸아이에게 그 노래를 엄마한테 불러주세요. 하면 20초 밖에 안되지만 웃으면서 불러 줍니다.

이제 이 노래는 나와 나의 딸아이의 암호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의 딸아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이 불러주는 노래인 것을 알기에 기억하고 불러 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몸이 기억한다는 반응으로 무의식적으로 딸아이의 노래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2. 들어주는 존중

나는 말이 없습니다.

나는 조용합니다.

나는 무겁게 보인다고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몬테소리를 딸아이가 다닐 때

몇 명의 엄마들이 나에게 시간이 되냐고 물어봅니다.

같이 만나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조용히 듣기 시작합니다.

같이 만난 엄마가 “이게 다야. “ ”이렇게 됐어. “

이야기에 끝맺음을 할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으면 나는 제삼자 입장에서 답을 해주었습니다.

같이 만난 엄마는 시간을 내어 들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나를 믿고 하는 이야기들 나는 그 엄마들을 존중합니다.

한 엄마는 제일 마음 편히•걱정 없이 말할 수 있는 엄마사람이 본인 주위에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합니다.

나는 운전도 못하고 말도 없고 조용히 혼자 다니고 낯도 많이 가립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성격으로 그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다니 그것 만으로도 내가 삶을 제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3. 엄마이어서 강하다

과연 여자로서 아니 엄마 보다 더 강한 인간이 있을까?

엄마의 모성애를 바탕으로…

내가 그동안 겪은 수많은 고통과 아픔에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나 자신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나 자신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작용 이 정신적인기본잣대를 이겨내고 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신적인 기본 잣대는

특별한 상황이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평온을 그대로 지속하려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의 상태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엄마이기에 나에게는 나의 딸을 지키려는•함께하려는•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겪고 견뎌내서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입니다. 강하고 힘센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딸을 위해서 견디고 겪으면서 살아남았기에 살아남은 엄마가 강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4. 조끼

아는 이의 일로 FBI (미연방정보국) 사람을 마주하게 된 일이있었습니다.

매 임무마다 그리고 착용하는 복장 정장 또는 사복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이날 내가 마주 한 사람들은 사복에 베이지색 주머니가 많은 •달린 낚시 조끼 같이 보이는 것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 쪽에 긴 열린 부분이 있습니다.  임무수행 할 때는 그 안에 FBI 가 적힌 있는 부분을 꺼냅니다. 그리고 임수 수행이 끝나면 다시 그 부분을 다시 넣습니다. 간단한 사항입니다.  가끔씩 이런 비슷한 조끼를 입은 사람을 보면 저절로 등 쪽으로 시선이 가기도 합니다.


5. 택배 운송 차량

갑자기 상황이 생겼을 때 작전을 위해서 다양한 차량을 요원들이 사용을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의심 없이 사용되는 차가 택배 운송차량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큰 운송회사의 로고가 보이는 차량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운전하는 요원도 영화해서 보는 그런 체격의 사람이 아닌 보통 볼 수 있는 평범한 진짜 택배 운송 운전사 같이 보이는 그런 타입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지나치다 택배운송 차량을 보게 되면 한 번쯤은  피식 미소를 짓고 다시 볼 때도 있습니다.


6. 처음 만난 유튜버 한국 엄마 사람

사격 클럽 모임을 통해 직접 알게 된 엄마 사람.

멤버들 사이에서도 재력 있는 엄마 사람. 아이도 있고 남편도 경제적으로 대단하다고 모임 안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엄마 사람과 몇 번 정도의 대화도 하고 클럽 모임이 끝나고 와인 라운지에서 처음 2번 정도 자리를 같이 했었습니다. 대부분이 혼자 모임에  나오기에 나와 남편과 같이 부부가 함께 오는 부부 들은 적었습니다.


이날도 모임이 끝나고 간단히 자리를 같이했습니다.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나의 자리 바로 앞 건너편에 그 엄마사람과 모임의 회원 중인 남자사람이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지난 후에 그 엄마사람이 그 남자 회원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입니다.

다른 회원들은 보고 그냥 지나칩니다.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의아했지만 잘못 보았나!

친한 사이인가?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회원이고 유부남 유부녀 입장인데...

술은 많이 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둘이 함께 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등을 쓰다듬어 주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은 오해할 수 있는 모습 행동이었습니다. 나는 남편한테 집에 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먼저 자리를 떠난다고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다음회 모임에서는 남자 회원들 사이에 그 엄마사람 혼자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 엄마 사람은 나에게 다가와 서 잠시 대화를 청했습니다.

그 엄마 사람은 전 모임 때 내가 본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말하기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 모임 안에서 한국 사람이 적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그 엄마 사람은 본 인 자신은 집안의 결정에 의해 결혼을 했고. 모든 결혼 생활에 대한 것은 남편과 혼전 합의서에 작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합의서 조약에 맞게 살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나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가 쳐다본 것이 실례를 한 것 같다 고.. 그 엄마 사람은 "아니! 괜찮아요! 누구라도 쳐다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그리고 모임 안에서 서로 안 지는 2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처음으로 가까이 이야기를 하게 됐네 요!"

그 엄마는 그리고 다시 남자 회원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와인잔을 들고 나를 쳐다보며 건배를 하는 제스처를 했습니다. 나 역시도 와인 잔을 들고 건배로 답변 을 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그 엄마 사람을 모임에서 만나고 보게 됐을 때 그 엄마 사람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엄마 사람의 인생사를 아는 주위의 멤버들이 그 엄마 사람의 행동들을 개의치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엄마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리스트들 중에 한 목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사격 클럽 모임에 나가는 것도 끝난 후에 가는 맥주펍이나 와인바 라운지에서 하는 만남은 횟수가 줄어들고 더 이상 사격 클럽 모임에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엄마 사람은 유투버가 된 것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렸습니다. 나에게 친구 신청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나는 그렇구나! 바쁘게 사는구나! 축하 메시지와 함께 친구가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엄마 사람은 유명해지고 조회수가 삼십만이 넘치는 유튜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 리뷰들

같은 엄마들의 부러움의 대상

내조 잘하는 부인

육아도 잘하는 엄마

경제력과 모든 것을 다 가진 여자

그 엄마 사람을 칭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나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꾸준히 만들어지는 유튜버.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 내용들.

그리고 그 유튜브를 찾고 보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처음으로 직접 알게 된 유튜버• 유명세로 입지를 굳히며 자리매김으로 확실히 굴림하고 있는 그 엄마 사람.

나에게 전해준 본인의 당당한 인생사. 당당하게 본인이 승낙을 한 리스트의 삶을 계속 즐기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처음 엄마가 되어서 처음 만난 한국 엄마 사람들 세명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시작은 같은 엄마로부터 이지만 다다른 각 개인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순간에 다르게 시간들을 보냈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낯을 너무나 가리는 말이 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함께하는 의미를 되새겨준 엄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딸아이 학교 모임의 참석으로 인해서 만나는 엄마들은 학교 학부형들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 외에 친분적인 만남은 하지 않았습니다. 없습니다.

현재까지 딸아이와 같은 클럽 활동으로 만나서 알게 된 엄마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이제 그 엄마 사람을 안지도 강산이 한번 바뀌어 가는 11년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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