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언니, 우리집에서 '중경삼림' 같이봤던 게 벌써 재작년인가봐. 그치? 야심한 새벽, 우리가 숨죽여 울고 웃었던 시간이 그 이후로도 종종 떠올랐어. 언니랑함께했던 시간 중 기억에 남지 않는 시간이 있겠느냐마는 그 날은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걸 은연중에 인정했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 그 날 이후로 각자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하게 됐잖아.
언니: 맞아. 난 그 날 처음으로 가족 얘기 털어놓고 펑펑 울고 덕분에 속이 시원해 졌어.뭔가 해결된 건 아니었는데 해결에 가까운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 이후로거의 십 년 간 나를 짓눌러오던 문제들이 마법같이 하나 둘 해결되기 시작됐어. 미래가 보이지 않았는데이제 꿈이란 걸 꿀 수 있게 됐고. 장래희망 같은 꿈 말고 현실적인 꿈 있지. 내 집 마련이라든지 결혼이라든지…
나: 이제언니 하고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난 언니가 언니답지 못하게 살았던 시간이 많이 안타까워. 사장님 비서는 언니가 원해서 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 업무를 수행한 3년간의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언니가 화를 낼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쓸데없이 화를 낼 필요야 없지만내가 대신 분개해줘야 할 정도로 화 내는 법을 잊어버린 언니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달까.
언니: 이젠화도 잘 내고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하는 편이야. 그 당시에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관찰할수 없었는데 조금 지나고 돌아보니 내가봐도 참 딱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인지 나는 연애할때 상대방이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래야만 내가 딱하지 않다고느껴질 것 같아.
나: 그래서그런 사람은 만나 봤고?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언니: 응쉽지 않네. 아직 못 만났어.
나: 그… 호주 남자는 어떻게 됐어? 이제 완전히 정리된 거야?
언니: 그사람은 나를 많이 좋아해 주는데, 좋아해주는 감정이 다른 친구들을 대하는 감정이랑 비슷한 것 같아. 늘 애매해.
나: 아… 그럼 언니가 바라는 남친상이랑은 완전히 상반된 느낌이네. 난 언니가너무 힘들어할 때 차라리 그 남자랑 결혼해서 호주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랬어. 언니랑 멀리 떨어지는건 싫지만 그래야만 언니의 숨통이 트인다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호주 산불이 난 뒤엔 좀 식겁했지만… 언니가 호주로 이민 안 간 게 천만 다행이다 싶었지. 그 전에는그런 일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었으니까.
언니: 나를그렇게나 생각해줬어? 감동이야…
나: 응, 입사초부터 언니랑 나랑 닮았다는 소리 정말 많이 들었잖아. 그게 참 많은 의미를 가진 것 같아. 아이폰이 일단 언니랑 나를 헷갈려 해. 사진첩에서 언니랑 나랑 같은사람이냐고 맨날 물어봐. 하하하 이목구비는 정말 다르게 생긴 것 같은데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한가봐. 주변에서 자꾸 닮았다니까 서로 알고 싶어지는 마음도 처음엔 있었겠지. 그게시작이었을 거야. 근데 알아가다 보니까 서로 너무 다른거야. 취향부터성향까지 정말 우린 다르구나. 근데 그 다름 속에서 발견하는 연결고리들… 감동하는 능력 배려하는 마음 이해하려는 노력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점점 더 닮고 싶어지게 하는 것 같아. 그래서일까. 언니와 나를 동일시하는 순간이 가끔 있는 것 같아. 같이 나이 들어 가면서 이런 순간이 더 잦아지려나 싶기도 하고. 뭐그렇다고… 복잡하게 말했지만 언니가 넘 좋다는 뜻이야 히히 쑥스럽네~
언니: 흠나도 말로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긴 한데 그게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아. 사람들이 자꾸 나랑 똑같이생긴 애가 있다고 해서 정말 궁금했거든. 근데 그 애가 곤경에 처해 있잖아. 여자애들이 그 애를 질투해서 없는 말 지어내고 그 말을 자꾸자꾸 퍼트리는데 내가 전에 당했던 일이 떠올라서정말 화가 나더라고. 나는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가는 편은 아닌데 너에게는 먼저 다가가야겠다 싶었어. 그러길 정말 잘했지…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줄이야~ 갑자기 생각나네… 너가 호빈이 가졌을 때 같이 딸기뷔페 갔던 거. 딸기에 둘러 쌓여 있었던 것도 좋았는데 같이 딸기 물리게 먹었던 그 날이 나는 그냥 눈물 나게 그리워. 사진을 보면 우리 다 웃고 있고 넘 좋아 보이는데 과연 저 때 우리가 정말 좋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 그러니까 같이 있으니 너무 반가웠고 즐거웠고 행복했는데, 돌아서면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셈이잖아. 그 때 돌아서며 들었던 기분은 기억나지 않아.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하지만 함께 있을 때처럼 유쾌하지는않았을 거야 확실히.
나: 언니랑 딸기뷔페또 가고 싶다…
언니: 내년에같이 가자. 너네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우리 둘이 가자!
나: 딸기 먹고 돌아서면서 울지 않기로!!
언니: 히히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