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나는 대체로 '공회전' 중이다. '기계따위가 헛도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공회전. 나는 기계가아니므로 다행히 헛돌기만 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쉼 없이 치열한 내 행동을 꽤나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형태가 '공회전'이지않을까 싶다.
자동차가 가만히 서서 공회전을 하는 동안에도 기름을 먹듯이, 공회전을 하는 동안 나의 연료도계속 타 들어간다. 마음과 정신의 연료가 대체로 완전하게 때때로 불완전하게 연소되며 만족스럽기도 그렇지않기도 한 다채로운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 소모적이지만 창조적이고, 단조로워보이지만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자동차의 공회전은 낭비이자 오염이지만 나의 공회전은 나를 살리는 시간으로의 순기능을 가진다. 휴식은아니지만 휴식 이전에 진정한 휴식을 꿈꾸며 벌이는 머릿속의 굿판 같은 행위로 소란스럽게 흩뿌려진 생각들을 허용하고 통제해가는 동안 나는 유와 무사이를 넘나든다. 자유로운 편이지만 실상은 규칙과 원칙, 논리가지배한다. 그래야만 다음이 있고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혼자 누리는 이 시간이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제한적이 되었다. 억척스럽게 붙들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시간, 우리집 고양이들마저 쌍꺼풀이 짙어지는 깊은 밤부터 아득한 새벽까지 가만히 잠을 견디며 공회전 모드에 돌입한다. 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적당한 자세로 앉아 근래 동시에 읽고 있는 두 세 권의 책도 한 켠에 쌓아 놓는다.
요리조리 생각을 하다 보면 꼭 막히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쌓아 둔책을 펼쳐 든다. 마음과 정신의 연료를 충천하는 시간이다. 좋아하는느낌의 글은 자연스레 천천히 아껴 읽게 된다. 단숨에 독파하지 않고 환상적인 맛의 코스요리를 대하듯조금씩 음미한다. 이따금 책을 읽으려 집었는데 몹시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밀도있게 생각할 게 분명 있었는데 그 생각을 미뤄두고 빈둥거리는 느낌이다. 그럴땐 가차없이 책을 덮어 놓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가듯 생각의 형태를 잡아간다. 보통 이러한패턴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요즘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크기 때문에 글감에 대해 자주 떠올린다. 어렸을 때의 기억과느낌 갖가지 경험들을 한참 떠올리고 선명하게 구성하고 그걸 재구성하고 가공하다 다시 원래의 느낌으로 돌아가길 여러 번 반복한다. 생각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면 조금은 슬프고 많이 먹먹하며 깊은 공감이 가는 시인의 시나 산문을 펼쳐 든다. 그들이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바라보고 느끼다 조금씩 영감을 얻는다. 생각의흐름을 이어 가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자 과정이다.
갇혀 있던 생각이 방대해지고 잊고 지내온 무수한 시간들이 확장되어 나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공회전의 시간은 늘 소중하다.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