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많은 나무의 최후

by Nemo

아빠는 아들만 여섯 있는 집의 다섯째 아들이다. 아들 여섯 중 첫째는할아버지가 데리고 온 아들, 둘째는 할머니가 데리고 온 아들, 셋째는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재혼 후 낳은 그들 사이의 첫째 아들이다. 아빠 밑으로 동생이 둘 있었다. 남동생은 소아마비이고 여동생은 고등학생때 병을 앓다가 죽었다.


할아버지는 개봉동 토박이로 그 부근 꽤 넓은 전답을 물려 받으셨다. 술과사람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부동산업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해장국 한 그릇을 얻어먹고 전답을 헐값에 팔아 넘기셨다고 한다. 개봉동의 개발이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라고 한다. 내 기억속의 할아버지는늘 술에 취해 계셨다. 남을 해하는 주사는 없었다. 그저알아듣기 힘든 웅얼거림으로 자기 한탄 정도만 늘어 놓으셨고 그런 할아버지께 할머니는 늘 앵앵거리는 고음으로 나가서 돈이나 벌어 오라며 갖은 원망을늘어 놓으셨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는 아빠의 부모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주정뱅이 아버지와 심술쟁이 엄마 중 누구에게 더 많이 의지를 하며 살아 왔을까. 내가 아빠의 입장이었으면 모든 게 다 싫었을 법한데 아빠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나: 아빠는 할머니가 애틋하고 보고싶고 그래?


아빠: 결혼하고나서, 결혼하기전에도 형수들하고 트러블 있는 걸 보니까… 우리 엄마가 본인은 자존심이 센 인천 안씨 양반집 안씨 가문이라고그러는데, 그게 내가 볼 때는 너무 배움이 약해서… 배움이없어 가지고 포용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그게 너무 약했던 것 같아. 그니까 할머니는 며느리가 그렇게많은데도, 우리 엄마에 대해 호의적인 며느리가 한 명도 없다는 건 할머니에게 문제가 많다는 거야


나: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래?


아빠: 중간에도 많이 느꼈지 우리 어머니 죽기 전에. 그게 내가 볼 때는, 할머니가 평생을 없이 사니까… 하고싶은 마음은 많은데 할 수 없는 게 많잖아. 그런 것들 때문에돈 좀 있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그쪽 방향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그래서 아빠 월급 타고 엄마가 생활비 하루라도 늦게 드리면 막 전화했다고 그랬다는데… 그것도할머니가 잘못된 게 만만하게 본거야. 아빠는 옛날부터 그냥 "에이, 다른 형제들은 못해도 나는 사람 된 도리만 잘 하고 살면 되지." 그런생각을 갖고 부모를 모시고 니네 엄마랑 살았는데, 그게 지금 니네 엄마한테 큰 상처가 된 거야.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 나도 뭔가 좀 문제가 있을 때는 형제들한테대들고 엄마한테 막 잘못되었다고 큰 소리도 치고 그랬어야 했는데, '사람이 내 할 도리만 하고 살면되는 거지.' 하고 넘어가고 그랬던 게 살면서 굉장히 후회가 돼. 그래서지금도 니네 엄마가 뭐라고 하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는 거지 뭐 변명도 안 하고


나: 그래도 내가 느낀건… 뭐당연하긴 한데… 아빠는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빠의 엄마니까 그립고 애틋한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아빠: 엄마보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서는 측은한 게 있어


나: 아, 이제 나이가드니까?


아빠: 난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가장 좋은 마음을 가졌던 게… 아니, 훈련 끝나고 인제에 있는 자대에 배치되었거든. 한 달 정도 됐는데 누가 면회를 왔다는 거야.


나: 할아버지가?


아빠: 그냥 누가 면회 왔다는 거야."아니 나한테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예요?" 그러고 나갔더니 우리아버지야. 토요일 점심때 왔더라고. 그래가지고 아버지하고나가서 점심을 먹고 그렇게 하다가 아버지가 저녁에 버스 타고 가셔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가시긴 어딜 가세요~ 아버지가 하룻밤 주무셔야 나도 밖에서하룻밤 자죠." 부모와 같이 여관 들어가서 자는 건 괜찮은데 부모 보내고 혼자서 자고 그러면인제의 헌병대, 정보대, 보안대 이런 애들이 쫙 깔려 있거든. 그래서 아버지하고 하룻밤 자고 이제 아버지 낮에 보내고… 그때 아주그냥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어. 아버지가 그때 오신 거… 왜냐면큰 형은 군대가서 뱀에 물려서 상병으로 제대하고, 둘째 박씨는 일병인가 상병 때 폐결핵에 걸려서 의가사제대하고, 셋째는 훈련소만 세 번 갔다 왔다가 군대 면제되고, 넷째는 저 중학교밖에못 나온 데다 그것도 정종(징병검사 신체등급 6급에 해당)인가 받고 면제 됐어. 예비군도 면제가 됐어. 막내는 소아마비지… 그럼 정상적으로 군대 갔다온 사람이 누구냐. 나 밖에 없지. 그러니 아버지가 애틋한 거야. 자식들은 많았어도 제대로 군대 나온 사람은 없고, 나 혼자 인제에있는 탱크부대 갔다고 하니까 측은해 보였나 보지… 아버지도 땅 날리고 그런 것도 자식들이 많으니 잘해 보려고…(헛웃음) 본인의 지식 안에서 잘 해보려고 한행동이었지. 남에게 자선을 베푼 건 아니니까. 근데 농사만짓던 사람이니까 사회생활은 못 해가지고 남의 말에 휘둘리고 그런 게 문제지. 결코 본인이 집안을 망하게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것 땜에 평생을 자식들에게 대우를 못 받으셨지…


나: 내가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해 봤는데, 만약 그 땅이 있었으면 아빠 형제들 분명 법원까지 갔을 거야. 지금도사이 안 좋은데 물려줄 재산이 논 한 마지기라도 있었으면 난리 났을 듯...


아빠: 맞아. 내가 보기에아마 큰 형이 칼 좀 썼을 거야. 어렸을 때 자기 사업한다고 돈 좀 달라고 그랬을 때, 할아버지가 취해서 인사불성 된 날 집에서 엄마 넘어뜨리고 엄마 낫으로 찌른다고 하고…


나: 할어버지가 데려 온 아들?


아빠: 거 있잖아. 자식많은 그 철수(가명) 아버지. 철수 아버지가 거 옛날에 집에서 엄청 깽판 쳤어. 왜냐면 친구들이굉장히 많았거든. 전부 많이 나와 봤자 중학교 나왔어. 근데사람들이 취업은 못 하고 사업한다고… 옛날에 사람들이 사업한다고 선반기계 하나 놓고 깎고 하는 거 많이했거든. 친구들이 자꾸만 쑤시는 거야 "야 너 다른배에서 나온 동생들 엄청 많은데, 나중에 걔네들 크면 너한테 돌아오는 거 얼마나 되겠냐. 지금이라도 사업해." 그렇게 막 찔러 대는 거야 그니까이 사람이 그렇게 해가지고 아버지가 땅 좀 팔아가지고 전세주면 전세 돈 빼고 사글세로 가가지고 그 돈 가지고 사업하고 그러다가 날려 먹고 날려먹고나서 또 돈이 없으면 아버지한테 달라고 하고. 그 짓만 하다가 자식 낳고 애들이 크다 보니까 그렇게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니까 안 했는데… 그 사람도 하여튼 나랑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큰형 큰형그랬지 실질적으로 우리 집안을 그렇게 만든 원흉이나 다름없어. 그 형도 하여튼 못 배워서 그래. 배우고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배움이 약해서… 배움이 약하면문제가 뭐냐면, 못 배운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거야. 주변에그런 놈들이 없어야 하는데 다 똑 같은 놈들이야. 어울려 다니면서 맨날 지들끼리 하는 얘기가 그거야. "야 너 니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 좀 받아 가지고…"순 그런 얘기야 전부. 지들끼리 대화내용이 그런 거야…


아, 이놈의 콩가루 집안 이야기는 이미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분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은 그만. 더 들으면 친척이라는이름으로 묶인 모든 이들이 미워질 것 같았다. 10분의 짧은 대화를 통해 아빠에 대해 더 많이 알고싶다고, 아빠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빠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전쟁 전후가 아닌 이 시대 사람들이었다면 조금 다른 가치관과 성품과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왠지 그들의 뭇 행동들을 시대적 배경으로라도 돌리고 싶은 아린 마음이 가슴 한 켠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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