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다치고 얻은 교훈
Day33 / Chiang Mai, Thailand / 9.22
도구의 인간
1.
어제 바지 벗다가 엄지 손가락 뒤로 꺾였다. 움직일 수도 없게 손이 아프고 붓길래 개 유난을 떨며 약이랑 붕대를 샀다. 여행오기전에 들었던 여행자 보험도 다시읽고, 치앙마이 정형외과도 찾아보고, ‘접질렸을 때’ ‘삐엇을 때’ 이런것도 엄청 검색했다. 얼음 찜질에 파스에 붕대에 하루 죙일 나댄 끝에 지금은 벌써 괜찮아졌다.
어제 처음 오른손을 다치고 든 생각은 ‘아씨 글 어떻게 쓰지’. 계속 안썼으면서. + ‘우쿨렐레 어떻게 하지’. 그렇게 열심히 안했으면서. ‘이왕 이렇게 된거 열심히 책이나 읽자!’, 트위터만 함.
2.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오른손을 다치자마자 나는 어떻게 타자를 쳐야 하는지 탐색했다. 노트북 스페이스바를 왼손 엄지로 치는게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고, 핸드폰 타자를 칠때도 검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또 물건을 들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연습했다. 붕대를 감고 엄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니 좀더 자유롭게 손을 사용할 수 있었다.
3.
만화가 천계영의 트위터 소개란에는 <도구의 인간>이란 말이 적혀있다. 손가락의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작가는 재활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며 현재 원고를 준비 중이다. 한 손으로도 병뚜껑을 딸 수 있게 도와주는 고무판, 손가락이 너무 아파 잠을 잘 수 없을때 손을 올려두면 좋은 꼬북이 인형, 가방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쓰게 해주는 관절용 환자용 장갑, 연필이나 숫가락 등 손잡이를 두껍게 만들어 손가락이 덜 아프게 만들어주는 스티로폼 등… 작가는 본인에게 없어선 안될 각종 도구를 소개하며 본인을 ‘도구의 인간’이라 소개한다.
관절용 환자의 장갑을 끼면 가방도 들 수 있고, 가방을 들면 어디론가 갈 수도 있죠. 이게 준 용기가 정말 컸어요.
4.
많은 도구에 의존하는 삶은 거추장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미니멀리스트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나. 최대한 부피를 줄이고 극소수의 도구만 챙길 것. 하지만 도구는 천계영 작가의 관절염 환자 장갑처럼 “어디론가 갈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적절한 도구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날개다.
5.
내 모든 기준은 정상으로 규정된 몸에서 시작된 시각이겠지. 두손 두발, 이 한몸 모두 성할 때만 미니멀리스트가 가능하다. 살아가며 ‘성한 몸’은 매우 편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비정상은 아니다. 성하지 않은 몸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