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지인 Jan 23. 2024

눈물나는 생일 반차 휴가

    얼마 전에는 나의 생일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20대를 맞이하는 생일이라 조금은 더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맘이 컸고, 작년 말부터 혼자서 생일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호텔에서 1박을 묵으며 흔히들 말하는 호캉스를 즐겨보거나, 그게 아니라면 나 홀로 해외여행을 떠나보고 싶기도 했다. 버킷리스트이자 올해 꼭 이뤄보고 싶은 바람인데, 생일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내 안에 용기가 솟구쳤다.


    하지만, 회사에 이직하고 1개월..2개월 회사 생활에 적응해갈수록 나의 생일 계획은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분명 입사할 때 생일 반차가 복지 중 하나라고 적혀있는 걸 봤는데 회사 업무 루틴을 보아하니 생일이라고 반차를 쓰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재량이었다. 내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면 그날 반차를 써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그리고, 슬프게도 나의 생일은 목요일이었다. 하필 주간 회의도 목요일인지라 생일이 되기 몇 주 전부터 나는 생일이라는 설렘보다는 이유 모를 우울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분명 생일은 그 자체로 설레고 행복한 날인데,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감정에도 불구하고, 생일 당일까지 생일 반차 제도를 꼭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팀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일 업무 일지에 내 생일이라는 것을 살짝 적어두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간 회의에서 적지 않은 부분에 대한 수정 요청 사항을 받았고, 그렇게 나의 생일 반차 휴가는 먼지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분명히 생일 2주 내에 반차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생일은 오늘 하루뿐인 걸 알고 있는지라 속상한 마음은 감출 겨를이 없었다.


    20대 초반도 아닌데, 고작 생일 하나에 우울해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더 속상했던 것 같다. 이럴 땐 자취한다는 사실이 괜스레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같은 날엔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엄마가 끓여준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이면 마음이 사르르 풀릴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따끈한 국물 대신 야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직하고, 3번도 채 되지 않았던 야근 횟수를 나의 생일날 채우게 될 줄이야. 그렇게 나는 야근을 끝내고 다음 날 있을 재택근무를 위해 노트북을 챙겨 다른 팀 동료와 퇴근길을 함께 했다. 이직해서 친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나를 위해 점심시간에 케이크를 사온 고마운 동료다.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그녀와 퇴근길을 함께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내 속상한 마음을 아는지 나를 작게나마 위로해 주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지하철역 앞에서 동료와 헤어지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추운 바람을 맞으며 회사 근처를 좀 걸어다녔다. 고작 15분 남짓했던 시간인데, 그 동안 어찌나 생각이 많던지.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때때론 나의 일보다 회사가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겠구나."


    그렇게 현실을 마주하면서, 퇴근길엔 나를 위한 선물 하나를 사고 먹고 샆었던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헛헛한 마음 한구석을 달랬다. 분명 많은 이들이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해주었건만 그럼에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가오는 설날엔, 떡국도 떡국이지만 꼭 엄마에게 소고기 넣은 미역국을 끓여 달라고 해야겠다. 그럼 지난날의 헛헛한 마음이 왠지 따뜻하게 채워질 것만 같으니까

이전 13화 절대 사업하면 안되는 직장인들의 특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