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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Sep 19. 2023

팀장님의 권고사직 (1)

현재 회사에 입사할 때 나는 팀장님에게 면접을 봤다. 1년도 지났지만 아직도 그 날이 너무 생생하다. 면접을 보러 온 나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음료수를 챙겨주던 분.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하라던 얼굴과 목소리.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믿었다. 사실 면접을 보면서 싸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입사가 확정된 팀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던지 (사업을 했는데 빚이 생겼다는 것), 개인 SNS 계정 운영에 대한 kpi를 묻는다던지, 자리에 있던 팀원들을 불러오더니 팀원 중 한 명이라도 나와 fit이 맞을 것 같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일하는 것이 다소 어렵다는 말과 함께 내 이력서와 포폴을 큰 화면에 띄워놓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까지


아마 내가 어느정도 경력이 충분한 상태로 면접을 봤다면 '이 사람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마케터로서의 첫 회사였기에 난 잘하고 싶고 또 잘보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면접의 말미까지도 나를 미친듯이 어필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면접에 합격하게 되었다. 평소에 눈 여겨 본 회사였기에 기대감도 컸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내가 회사에 입사하자 말도 안되는 일들이 하나씩 벌어졌다. 먼저 면접에서 봤던 다른 마케터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면접을 볼 당시 친절했던 팀장님의 모습은 일주일 정도 밖에 가지 않았다.


팀장님은 가히 내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기본이 안되어 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분이었다. 자신의 말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재기하면 상대방을 노려보고 큰 소리로 모욕감을 주곤했다. 지난 날에 겪었던 수모들을 다 나열하자니 그 때의 아찔했던 기억들이 나를 다시 아프게 하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덤덤하게 말해보려 한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기획한 콘텐츠가 처음 올라가던 날, 그 콘텐츠를 가지고 매일 같이 화면에 띄워놓곤 좋아요 수가 이것밖에 안 나오냐느니, 힘들게 팀원을 데리고 사진을 왜 찍었냐느니, 본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업무에 시간을 쏟았는지 아냐느니


단 1개의 콘텐츠가 이제 드디어 올라갔을 뿐인데, 난 마치 단두대에 올라간 느낌이었다. 심지어 사진 촬영은 단 10분 밖에 하지 않았고, 그 시간을 회의 시간에서 언급했지만 돌아 오는 대답은 그래도 00님이 팀원 시간을 쓴게 맞지 않냐는 고함 뿐이었다. 하지만, 더 서글펐던 건 팀장님은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같이 식사를 하던 30대 중후반의 팀원에게는 꼬투리를 단 하나도 잡지 않고 나에게만 무자비하게 굴었던 그였다.


참고: 핀터레스트

매일 같이 이어지는 오전 회의에도 내가 말을 덧붙이려 하거나 질문을 하면 그냥 단칼처럼 잘라내는 것도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팀장님 밑에서 1년 이상을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왜 그렇게 미련했는지 모르겠다. 직장인에겐 버티는게 약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장점들을 참 많이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트라우마 같은게 생겼는지 팀장님과 유사한 느낌이 풍기는 사람이나 팀장님의 이름을 우연히 보게되면 숨이 턱 막히게 되었다. 점점 팀장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나에게도 힘겨워지면서 나는 어느순간부터 팀장님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고 절대 쉬운 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또 마케터로서 성장하기 위한 나의 루트를 내 스스로 설계하면서 단단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노려보면서 대화하는 팀장님을 견디기가 어려워 모니터를 보고 말한다던지, 꼬투리 잡히는 게 싫어서 말을 걸지 않는다던지 슬프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는 나만의 살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팀장님이 이런 나의 태도를 모를 이가 없었고 어느 날은 회의 시간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막말을 했다.





'00님이 나를 무시해도 좋은데, 상대방을 무시를 했으면 무시 당할 각오를 해야지'




난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들은 말이 정말 맞나..?

저런 말을 팀원에게 할 수 있나?

그는 정말 악마인가?


나는 왜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버티는가


하지만, 이런 불쌍한 나에게도 희망이란 불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팀장님이 팀원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https://brunch.co.kr/@appo/60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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