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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을 일삼던 팀장님은 결국 팀원 평가를 받게 되었다. 전 후 배경을 설명하자면, 스타트업인 우리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대표님은 컨설턴트 한 분을 우리 회사에 데려오기로 결정하셨다. 그 과정에서 우리 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HR을 개선하기위해 팀원 별로 1on1미팅을 진행하였고, 미팅 후에 팀장님의 문제점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팀원 평가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연차나 반차도 잘 사용하지 않던 팀장님이었는데 팀원 평가를 하게 된 시기에 마침 2주 가까이 유럽 여행을 떠나셨다. 그래도 같은 팀인지라 옆에 바로 앉아있는데 평가를 한다는게 나에게는 꽤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편한 마음으로 평가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평가는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객관적 평가와 주관적 평가. 객관적 평가의 경우, (1)팀워크, (2)리더쉽, (3)업무 수행 능력 3가지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 항목별로 0~10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팀장님에 대한 미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작성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50점 미만의 저조한 점수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진행한 주관적 평가의 경우 점수를 매기는것은 아니었고, 내부 업무 협력 부분이나 리더쉽,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해서 객관적인 사실을 기입하는 것이었다. 내가 '업무 협력' 부분에 있어서 실제로 적었던 말은
'업무 진행에 있어 높은 자율도를 주시지만, 함께 협력해서 진행하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메일에 참조가 되어 있으시지만 팀장님은 확인하지 않고, 오전 회의 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내가 당장 해줘야 할게 있는지/없는지에만 초점을 맞춰서 커뮤니케이션을 하신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유일무이한 장점인 '높은 업무적 자율도'로 인해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부분에 어느 정도 좋은 점도 있었기에 그 부분 역시도 사실대로 작성을 했다.
이 과정에서 팀장님은 팀원 평가 뿐만 아니라 리더의 자질을 평가하는 여러 과제도 받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더이상 팀에 존속하기에 어렵다는 결과가 주어져 권고사직이 어느정도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를 뽑아준 팀장님이 이직이나 퇴사가 아닌 권고사직을 당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느 순간 내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나는 그저 해탈한 상태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1년 내내 윽박지르던 팀장님과의 오전 회의는 사라지게 되었고, 팀장님과 나는 더이상 대화를 할 일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각자 맡은 업무만 하면서 이 상황을 유지해왔던터라 대화를 하지 않아도 업무엔 큰 지장이 없었다. 다만, 내가 그토록 바랐던 팀워크라는 걸 이 팀 내에서 만들어보지 못했다는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권고사직이 어느정도 기정 사실화 되었음에도 팀장님이 바로 잘리지는 못했다. 회사의 내부 사정을
100% 알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권고사직이라는게 회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회사는 최선의 방책을 찾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1개월, 2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팀장님은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퇴사하는 날 마지막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해주는 동료도 없이 마치 퇴사가 아닌 퇴근하는 모양새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팀장님은 회사를 떠나는 그 날까지도 가장 오래 함께 일한 팀원인 나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인수인계를 한다는 명분으로 빈 회의실에 나를 데리고 가서 30분 정도 간단하게 설명을 하다가 '내가 이번주까지라 00님이 이거 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라는 말이 전부였다.
어쩜 마지막까지도 참 팀장님스럽게 끝을 낸다고 생각했다. 팀장님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늘 불안해했다. 언제 어떻게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본인 스스로도 많이 하고 있는 듯했고, 그 불안감을 고스란히 팀원인 나에게 던지곤 했다. 그래서, 내가 낸 실적을 마치 팀원 관리를 잘하고 자신이 밀어줘서 된 것인냥 회사 대표님께 어필을 하면서 회사 생활의 수명을 늘려가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 팀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고, 팀장님이 자리를 떠난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상은 정리가 되었다. 1년 이상의 기간동안 팀장님으로 인해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했고, 몰래 숨어서 울고 화를 삭혔던 수 없이 많은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결론적으로는 그 모든것이 이제는 완전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더 쿨한 마음으로 그의 새출발을 응원하고 싶다.
어쩌면 10여 년 뒤에 나 역시도 팀장이라는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야 할지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