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씨앗과 씨앗 제거하기
오랜만에 혼자서 기차를 타러 갈 일이 있었다. 기차역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날따라 가는 길에 공사가 많아 시간이 자꾸만 지체됐다. 역에 도착해 화장실도 가고 싶고, 점심을 대신할 간단한 요기거리도 사고 싶었다. 몸이 무거워 빨리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만 자꾸 급해졌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종종걸음으로 화장실부터 갔다가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고 바로 탑승구로 올라왔다. 요즘은 조금만 걸어도 금세 숨이 찬다. 숨이 차고 심장이 요동쳐 그런지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이쪽 게이트가 맞나, 중간에 열차가 분리된다는데 잘못 타는 건 아닐까, 몇 번이고 승차권과 게이트 정보를 확인하는데도 안절부절이었다. 무사히 열차에 타고난 후에도 불안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음식을 먹다가 체하기라도 하면 어쩌지?
새콤한 주스를 살걸 괜히 우유를 샀네.
자다가 못 내리는 건 아니겠지?(이미 진동으로 알람도 맞췄다)
알람 울리는 걸 못 느끼는 건 아니겠지?
사실 불안해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불안을 동력으로 많은 걸 이루며 살아왔다. 성인이 된 후부터 조금씩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가장 큰 부작용은 마음 편히 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3년 전 부원장 생활을 청산하고 개원하기 전까지 쉬면서(사실 완전히 쉬지도 않았지만) 내가 쉴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불안을 태워가며 사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움직일 수 없는 계절이 온다. 바로 우울의 계절이다. 내가 가장 불편해하고 감당해 내기 힘들어하는 감정인데, 그런 계절에는 무기력하고 영영 아무것도 못 할 것만 같고, 아무 쓸모도 없어 당장 사라져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진다. 당장이고 없애버리고 싶은 감정이자 내 안에 심긴 가장 무서운 씨앗이다.
그런 마음들과 함께한 지는 어언 10여 년. 그동안 깨달은 건 이런 마음은 없애려 할수록 더 커진다는 점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르는 용수철처럼. 불안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우울에 깊이 빠지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좌절하고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나름대로 불안과 우울을 다룬다. 나만의 방법은 깨끗이 없앨 수 없다는 걸 알고, 어쩌면 나와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아이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너 또 왔구나. 거기 있어도 괜찮아. 있을만하니 있는 거잖아.
불안해 미치겠을 때는 불안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적어본다. 대체 뭐 때문에 불안한 건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주 심오한 것까지 모두 다. 전에는 이런 솔직한 마음을 나만 보는 일기장에 쓰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냥 쓴다. 쓰고 나면 보이지 않던 불안의 실체가 두 눈으로 직접 보여서 그런지 동동거리며 미쳐버릴 것 같던 느낌이 잠잠해진다.
우울감은 만날 때마다 항상 무서운 감정이지만 이제는 이 마음마저도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는 걸 조금은 안다. 우울이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쉰다. 쉴 수밖에 없다. 너무 괴롭고 힘들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나를 멈추고 쉬게 하는 것 같다. 내 우울은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무서운 씨앗들은 매번 낯설고 서툴긴 매한가지이지만, 그간의 시간이 흐르며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고, 공부도 하면서 1년 전, 5년 전,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잡초가 자란다고 매번 풀 죽어 있을 순 없다. 바빠서 돌보지 못했던 마음 정원의 잡초를 뽑고 내가 키우고 싶었던 작물과 꽃나무들을 예쁘게 관리해 주는 수밖에. 계절이 바뀌듯 마음도 계속 변한다. 잡초가 돋으면 또 뽑아주고, 꽃이 피면 잠시 멈춰 바라보며 즐기면 그만이다. 그렇게 천천히, 나만의 정원을 가꿔나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