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이야기
기쁨이가 생긴 후로 입맛이 많이 바뀌었다. 임신 전에는 단 음식을 싫어해서 간식도 먹지 않았었고, 과일도 누가 깎아주면 억지로 먹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임신한 후로는 새콤달콤한 과일이 너무 맛있어서 바쁜 아침에도 스스로 깎아먹기 시작했고, 달달한 후식들도 자꾸 당겨서 빵이며 과자 같은 것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임신 25주 차에 임신성 당뇨 진단을 위한 선별검사를 하는데 재검사가 뜨고 말았다. 수치가 140mg/dl 밑으로 나와야 하는데 무려 162mg/dl로 말이다.
나보다 임신 주수가 11~12주 정도 앞서 있었던 동서 언니가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고 매일 하루 네 번씩 혈당검사를 하며 식단 조절하는 걸 봐왔던 터라 절대 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1주일 뒤 확진을 위한 재검사를 앞두고 식이 조절에 돌입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맛있게 먹던 달달구리들을 다 끊는 일이었다. 분명 원래는 먹지도 않던 것들이었는데, 막상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꾹 참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결국 저당 쿠키를 하나 사두고 너무 참기 힘들 때 하나씩 꺼내 먹었다. 밥은 모두 100% 현미와 잡곡으로 바꾸고 식단에 꼭 채소를 잔뜩 추가했다. 식후에는 단 10분이라도 걷거나 움직이려 노력했다.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은 어떤 분들은 '차라리 잘 됐다. 이참에 건강도 챙기고 체중 조절도 하자.'라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내가 당뇨라고?' 하는 생각으로 억울하기도 했고,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롭고 답답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임신성 당뇨는 식습관 때문이 아니라 태반에서 나오는 호르몬 때문에 걸리는 거라 식이 조절하고 말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 많아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단 1주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해보고 재검사를 받아야 후회가 남지 않겠는 것을. 초조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진단된 이후의 일은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며 다독였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했던 한 주가 흐르고 재검사날이 다가왔다. 검사 전 8시간 공복이 필요해서 대부분은 아침에 검사를 하는데, 나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오후 2시가 가장 빠른 시간이었다. 결국 전날 자정 무렵을 마지막으로 금식에 들어갔고, 물도 마시지 말라했었지만 아침에 물 한 모금이 너무 소중해서 오전 8시쯤 물 한 모금을 끝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1차로 공복혈당 확인을 위해 채혈을 하고, 100g 포도당 용액을 마신다. 그리고 1시간 뒤, 2시간 뒤, 3시간 뒤 각각 채혈을 해서 혈당이 떨어지는 추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용액이 맛없어서 힘들다는 말이 많았는데, 너무 배가 고팠던 탓인지 그럭저럭 먹을만했고, 다만 고농도의 당분이 들어오니 속이 조금 메스껍기는 했다. 오후 2시까지 어떻게 버티고 왔냐며 매번 채혈할 때마다 격려해 주시는 검사실 선생님 덕분에 길고 긴 검사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가장 먹고 싶었던 건 탄수화물 폭탄인 음식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좋아하는 수제비집에 다녀왔는데, 식단 제한을 할 때는 그렇게 먹고 싶더니 막상 눈앞에 놓이니 생각한 것만큼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문자로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공복혈당과 1시간 후, 3시간 후 혈당은 정상치였고, 2시간 후 혈당이 기준치에서 1 정도 벗어난 수치로 아슬아슬하게 통과!
일단은 매일같이 손가락에 피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 검사에서만 해방되면 먹고 싶은걸 마음대로 와구와구 먹을 거라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검사가 다 끝나고 나니 전과 다르게 입맛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마치 임신하기 전처럼 끼니때가 되어도 배가 별로 고프지 않고, 과일도 굳이..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종종 생각나긴 했지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다.
반나절의 금식이 내 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걸까. '먹으면 안 돼!' 하는 생각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조절되기 시작한 걸까. 식단 조절을 하면서부터 온갖 식품들의 성분표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건 건강한 음식, 저건 안 좋은 음식'하는 편견이 생겨버려서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1주일간의 엄격한 관리 때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잡곡밥을 먹으며, 쌈채소나 샐러드 채소를 챙겨 먹고, 식후에는 산책이나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재검사가 잡혔을 때까지만 해도 너무 야속하고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식습관과 생활 습관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일인가 싶다.
임신 과정 내내 이렇게 많은 검사와 이벤트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바쁘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는 임신하고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더 적어졌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기쁨이와 만나게 될지 점점 더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남은 시간도 건강하게, 그리고 무사히 지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