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S로 전해진 품목
1년 반.
처음으로 외국에서 살아 본 기간이다. 당시 주변 친구들은 가족으로부터 국제 소포(EMS)를 받으면서 짐을 늘이다가 줄이기를 반복했지만, 삐사감은 한 번도 보내지도, 받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짧아진 체류 기간이라 뭘 보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단지, 들고 나고 할 때마다 커다란 이민 가방을 가득 채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지퍼를 열면 세로 3단까지 부피가 늘어나는 가방에 분에 넘치는 물건들을 채우다 보니 가방은 허리춤에 닿을 만큼 거대해졌다. 이른 비행기로 귀국하는 날, 육교 계단 앞에서 끙끙대는 것을 발견한 지나가던 사람은 친절하게도 계단 끝까지 들어 올려주었다. 갈 때보다 훨씬 짐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한 사람의 살림살이 전체를 가방 하나에 담겠다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4년 정도 중국에서 살 때는 가족이 함께 나간 거라 훨씬 안정된 살림살이였다. 하지만 국제 이사까지 했는데도 부족한 물건은 생겼고 주변 한국인의 집에서는 EMS 박스가 자주 목격되었다. 딱히 한국에서 받을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웃한 한국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면 쉽게 눈에 들어오던 커다란 우체국 박스는 내심 부러웠다.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를 몇 번 반복해야 했으니, 그건 무척 부러운 일이었다는 증거였던 것 같다.
이웃들은 시가나 친가로부터 끊임없이 한국 물건을 공수받는 듯했다. 김치나 장류와 같이 배송이 까다로운 음식물부터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육아용품을, 무게의 압박이 심한 책마저도 국제우편으로 받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표 김치, 시엄마표 청국장 등의 한국 음식은 현지에서도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어 ’뭘 굳이‘라는 마음이 한쪽에 있었다. 특히 한국으로 수출되던 김치는 풍부한 양념과 시원한 맛,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문배달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뭐든지 가짜나 불량품을 잘 만들어내는 중국에서 살아남으려니 국제소포가 배달되는 횟수는 더욱 잦아 보였다. 어린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분유나 기저귀, 의약품 하나까지도 허투루 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EMS 품목 중에 가장 부러운 것은 책이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이북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한국 책을 구해서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품목보다도 월등한 무게를 자랑하는 책을 국제 소포로 받는 일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고상해 보였는지. 책을 좋아하지도 자주 곁에 두지도 않는 탓에 한국에서 이사하면서 같이 딸려 온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다. 그나마 책장에 꽂힌 책들은 이 지역의 습기를 만나서 책머리와 책배가 가무스름하게 변색하였다. 아예 읽지도 않았는데 흥미가 떨어져 버렸거나 도중에 하차한 책들은 더 이상 눈길을 끌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새하얀 속지와 주름 하나 없이 빤빤하고 세련된 겉표지의 신간을 보면 저절로 책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읽지 않아도 소장하고 싶은 욕구, 필요 없어도 가지고 싶은 괜한 물욕이 발동했다.
두 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단 한 번의 EMS를 받아보았다. 주변인들이 생각지도 못한 품목까지 한국에서 받아 소비하고 심지어 이웃한 사람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는데 우리 집에는 출국한 지 2년 여가 지나 최초의 EMS가 도착했다. 너무 오래된 탓인지 감격스러운 첫 국제 소포의 품목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포장이 까다롭거나 통관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들은 제외하고 무난한 품목이었을 것이다. 의약 식품이나 병원 처방이 필요한 약품을 받았다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삐사감도 몇 년 전 처음으로 EMS를 보냈다. 미국에 나가 있는 아이에게 보낼 EMS 박스에 채울 품목을 놓고 페이스타임과 카카오톡이 여러 번 오갔다. 몇 벌의 옷과 패딩 부츠, 기모스타킹, 의약품, 인스턴트 라면 등 시골에 위치한 학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추운 동부의 겨울을 대비할 수 있는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방구석에 예비 후보군을 쌓아두고 우체국을 비롯한 여러 운송 기관의 가격을 비교했다.
꼭 필요한 것과 애매한 것들 사이에서 물건을 넣고 빼고 반복하다가 크지 않은 박스에 테트리스 블록을 끼우듯이 빈틈없이 물건을 채워 넣었다. 박스는 크기에 따라 운송단가가 훌쩍 비싸지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꽤 비싼 운송 요금을 내고 영수증을 받아 들고 우체국을 나오려는데 우체국 코너에 쌓여있는 커다란 국제 소포용 박스가 눈길을 끌었다. '요금 까짓 거 좀 더 내고 더 큰 상자에 넉넉하게 넣을 걸 그랬나?!'
아이에게 보낸 물건 중에 패딩 부츠는 현지에 버려졌다. (현지인에게 나눔) 사실 패딩 부츠는 부피가 커서 소포 박스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오랫동안 옥신각신하던 아이템이었다. 솔직히 소포 박스에서도 돌아오는 캐리어에서도 천덕꾸러기였다. 추울 땐 방한이 최고라는 엄마의 강박이 기어코 소포 박스에 실어 보냈지만, 엄동설한에도 운동화를 고집하는 아이에게 패딩 부츠는 그저 짐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현지의 누군가에게 남았다.
그래도 인공진주가 달린 카디건은 조금은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 갈 때 무척 그럴듯한 착장이 되어주었고 한국 음식은 룸메이트와 즐겁게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바퀴가 뻑뻑했던 캐리어도 역시 현지에서 나눔을 하고 새롭게 구입한 360도 회전 바퀴를 가진 캐리어는 반년 정도의 타지 생활을 품고, 한 인간의 살림살이를 간신히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지에서는 병원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약(코로나 시국이어서 의사를 만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다)을 한국에서는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 그런 때 한국에서 날아오는 EMS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보내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멋대로 생각해서 억지강제 넣어 보낸 물건(패딩부츠)은 그저 골칫덩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요 불필요를 떠나서 보내는 사람은 며칠간 귀찮은 과정을 무릅쓰고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고민했다. 그 고민이 상대방에 닿지 않는다 해도 고민의 결과물을 박스에 채우는 시간을 즐겼고 마음을 전해서 다행이라 느꼈다.
아마도 그 많던 EMS 박스는 꼭 유용한 물건을 보내겠다는 마음보다는 너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먼 곳까지 날아오느라 박스가 해지고 찌그러졌어도 그 마음이 읽혀서 남의 집 소포 박스가 그렇게 부러웠나 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냉랭한 말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무뚝뚝한 태도보다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생각하는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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