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무등도서관

한강 작가의 숨결을 느끼다

by 물들래

광주시립무등도서관 외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 관공서 같은 분위기였다. 건물 앞뒤로 위치한 넓은 주차장이 거의 만차상태인 것을 볼 때 이용객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노란 의자 주변으로 화사한 꽃조형물이 해사하게 이용객을 반겼다.


광주시립무등도서관에 한강은 없었다. 대신 한강의 책이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이용객을 환영하듯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 앞에 섰다.


안녕! 작가님, 반가워요. 광주에서 또 뵙네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사전

채식주의자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내 여자의 열매

검은 사슴

작별

내 이름은 태양 꽃

눈물상자


한강 작가의 책 중 저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 일곱 권과 읽은 책들 목록을 한 권씩 떠올려보았다. 종합자료실 검색대에서 한강 작가의 그림동화책을 재독하고 싶어서 검색했다. 찾고 있던 책이 서재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일 년 전 읽었을 때를 반추하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데 눈물 한 방울이 책 표지에 떨어졌다. 작년 읽었을 때는 마음은 이미 울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눈물은 약한 자의 상징이라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졌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흘려야 할 눈물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내면에 비축해 둔 나는 중년 이후 눈물 흘려야 할 장소에서 뿐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울 때가 잦았다.


그럴 때 당황하지 않았다. 꾹꾹 눌러놓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거라 믿으며. 그저 흐르는 눈물 내버려 둔 채, 울어야 될 때인가 보다 생각하며 눈물이 나올 때까지 울었다.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때도 있고, 다 토해내지 못한 수분이 가슴에서 질척될 때는 마음이 더 아프고 답답했다.


눈물상자,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지 않는가. 내 안에 고여있는 여러 빛깔의 눈물들과, 후회 없이 쏟아내고 싶은 빛깔의 눈물은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할 시간을 선물해 준 작가가 고마웠다.


책을 읽다가 아기들을 위해 흘린다는 엄마들의 '조금 진한 연두색 눈물'과 꽤 닮은, '천사의 눈물'이라는 식물을 떠올렸다. 진정한 어머니들이 흘리는 눈물은 천사들의 눈물과 비슷할 수도 있으니까. '천사의 눈물'이란 식물 화분 앞에서 오래도록 발길을 떼지 못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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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주황빛이 도는 이 눈물은 화가 몹시 났을 때 흘리는 눈물…… 회색이 감도는 이 눈물은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 연보랏빛 눈물은 잘못을 후회할 때 흘리는 눈물…… 검붉은 눈물은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할 때 흘리는 눈물…… 분홍빛 눈물은 기쁨에 겨워 흘리는 눈물…… 연한 갈색의 저 눈물은 누군가 가엾다고 느껴질 때 흘리는 눈물이란다. (연한 연두색 눈물은) 아기들의 눈물…… (조금 진한 연두색 눈물은) 엄마들이 아기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야."


"설렘이 반짝이 가루와 웃음 반짝이 가루란다. 가끔, 눈물을 많이 가졌지만 기쁨이나 웃음은 가난하게 가진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거야." [눈물상자] 중에서


한강의 눈물상자에 대한 감상을 짧게나마 기록하기 위해 노트북을 펼쳤다. 키보드를 최대한 조용하게 누른다고 눌렀는데 옆에 앉은 여학생이 독서에 방해된다고 했다. 곧바로 사과한 뒤, 노트북을 덮었다. 방금 마음을 맑게 하는 그림동화를 읽었는데 민폐를 끼칠 순 없지. 노트북 작업을 하려면 3층에 마련된 노트북실로 자리를 이동하면 된다. 그러나 이곳 자료실에 계속 머물고 싶었기에 펜과 노트를 꺼냈다.


배려하는 마음, 선한 마음,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둘 쌓이길 바란다. 그런 선한 마음들이 하나둘 모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그래야 오늘 낮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 만난 어린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작가가 표현한 작품 속 유토피아가 먼 이상향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안에서 작게나마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그래서 작품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뒤태를 바라볼 때 조금이나마 떳떳한 어른이 될 수 있길 바랐다.


오래 앉아있던 탓일까. 약간의 두통이 느껴졌다. 도서관 산책을 나섰다. 도서관 밖 풍경이 궁금했다. 가까운 곳에 가볍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당과 카페들이 제법 위치해 있었고 10분 남짓 걸으니 다이소도 보였다. 연필 몇 자루 사고 싶었다. 문구류 코너에서 오랜만에 필기구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두 자루의 연필을 골랐다.


도서관 자리로 돌아와, 한강의 눈물상자 첫 페이지를 펼쳤다. 정성스럽게 깎은 연필로 사각사각 필사하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소리는 소음이지만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훌륭한 BGM이었다. 옆에 앉은 여학생도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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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립도서관 무등책마루(직접 촬영) 광주무등도서관 외관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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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The Days We Draw, 그리고 하루> 展/ 정성준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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