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 속 치열한 생존, 도토리거위발레

by 볕뉘

집 앞에 산이 있다는 것, 정말 좋은 일입니다.

아침 길을 나서면 도로 하나 건너 숲길이 있습니다.

숲길로 들어서면 번잡한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길이 열리는 듯 합니다.

하늘 향해 길게 뻗은 나무와 갈색 낙엽 사이 이제 막 자라는 작은 나무와 풀이 그저 조용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아침 햇살이 들어오면 그 빛으로 빛나고

비가 오면 싱그러움을 더합니다.

고요한 숲길을 들어섰다가 숲의 소란스러움에 발을 멈춥니다.

마치 한차례 태풍이 휩쓸로 간 것처럼 도토리 잎들이 어지러이 떨어져 있습니다.

간밤에 태풍이 지나간 것도 아닌데,

세찬 바람이 불었던 것도 아닌데,

이 산봉우리에만 바람이 스쳐간 것도 아닌데 도토리 열매가 달린 가지들이 수없이 떨어져있었지요.

상수리나무도, 신갈나무도, 졸참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렇게 떨어져 숲길이 어지럽습니다.

8월, 참나무과 나무에 열매가 매달리면 보이는 흔한 광경입니다.

어여쁘게 매달린 열매가 더 안쓰럽습니다.

도토리잎들이 떨어져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밟히기도 합니다.

바람이 세차게 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수히 떨어져 있을까요?



그것도 가지 끝이 톱질이라도 한 듯 반듯하게 잘려 있습니다.

간 밤에 누군가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낸게지요.

그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입니다.

예전 숲체험 연수에서 들었는데 그 살벌한 현장을 이렇게 보게 됩니다.

“등장하셨구만. 도토리거위벌레들.”

“너무 심하게 떨어졌어. 도토리가 너무 적게 열리는 것 아니야?”

그렇게 숲체험 연수에서의 경험을 나누며 신기함 반, 걱정 반 그렇게 숲길을 지납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아주 긴 주둥이를 가지고 있다네요. 산란을 위해 설익은 도토리를 찾아내어 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요. 그 구멍 안에 알을 낳고 도토리가 달린 참나무 가지를 반듯하게 잘라 떨어뜨려요. 그 작업이 대략 4시간 정도가 된다고 해요. 아주 길고 고단한 작업 과정이겠죠? 열매만이 아니라 입사귀가 함께 떨어지면서 프로펠러 역할을 해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도록 하고 광합성까지 할 수 있어 도토리가 신선하게 잘 유지되니 그 속에서 라나는 애벌레는 과육을 먹고 튼튼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거예요.

너무 많이 참혹하게 떨어져서 걱정이었는데 참나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참나무 열매가 너무 많이 매달리면 도토리들이 빈약해지는데 도토리거위벌레들이 가위로 잘라낸 덕분에 남아있는 열매들이 더 알토란같이 자랄 수 있다네요. 서로 필요한 생존 전략인 샘이죠.

고요하고 평온한 숲 안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그렇게 치열한 생존의 장임을 실감합니다.

순간 숲이 더 소중해집니다.

그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치열한 투쟁을 거쳐 만들어낸 생명들이니 스쳐가는 나무와 잎사귀들을 애정하게 됩니다.


허접하고 부족하지만 소박한 그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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