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밝았으니, 운동을 해야겠단 생각에 단지 내 요가 수업을 신청했다. 코로나 시절부터 홈트로 요가를 해오긴 했으나 혼자서 꾸준히 하는 건 힘들었다. 요가 수업은 정해진 시간에, 요가의 정석을 자세히 알려주는 선생님이 있으니까 1시간이 훅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함께 요가하는 수업의 장점을 손꼽아 보고 있는 찰나! 내 눈에 초등학생 딸과 나란히 요가하는 한 엄마가 눈에 띄었다. 부러웠다. 나도 초5 아이와 요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집에 가자마자 엄마가 없다고 신나게 TV를 보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꾸마야. 엄마랑 같이 요가할래? 말래?”
“...”
“하고 싶다는 거야? 하기 싫다는 거야?”
“꼭 해야 해?”
아이가 꼭 해야 하냐고 물은 건 아마도 자기는 굳이 하기 싫은데 엄마가 시키니까 해야 하는 거냐는 뜻이다. 최근에 나는 아이 의사를 존중해서 양자택일 해보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는데, 아이가 뭘 말해도 결국 엄마가 원하는 방향대로 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나 보다.
"꾸마야, 밥 먹고 씻을 거야? 씻고 밥 먹을 거야?”
“밥 먹고 씻을래.”
"생각해 보니 밥 먹고 씻으면 늘어질 수 있으니까, 씻고, 밥 먹고, 숙제하는 게 낫겠다.”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거야? 엄마, 답장너지?”
아이 말에 몹시 찔렸다. 난 한 가지 방향만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수용적인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새 아이 말마따나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까 너는 대답만 하면 돼)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물어보기 시작한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꾸마는 아기 때부터 초지일관 밥을 잘 먹지 않고 편식이 심했다. 밥그릇을 들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했던 시절, 내 귀에 꽂힌 육아 전문가의 조언이 있었다. 하나만 고집해서 먹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가령 “볶음밥 먹을래? 덮밥 먹을래?”처럼 둘 중의 하나를 고르게 하라고. 그럼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고 먹게 될 거라고.
이 솔루션이 먹힐 때가 있다. “짜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처럼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뭘 선택해도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 괜찮았다. 아이가 고른 게 있는데 구태여 다른 걸 줄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난 아이가 내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으면서부터 아이가 선택하기 어렵고 다양한 질문들을 해댔다.
"꾸마야, 댄스 학원 계속 다닐 거야, 말 거야?”
"나는 계속 다니고 싶어.”
"댄스 학원 다녀오면 피곤해서 숙제도 못하고 안 다니는 게 좋지 않겠어?”
"엄마, 그럴 거면 왜 물어보는 거야?”
돌이켜 보니, 내 물음은 아이의 마음을 존중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거였다는 걸 인정한다. 아이를 생각해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자 했던 순수했던 나의 초심이 변질되었음을 깨닫는다. 아이에게 물어본 이상 짜장을 고르든, 짬뽕을 고르든, 뭘 먹을지는 아이한테 달려있다. 내 뜻을 자꾸 관철하려 할수록 아이에게 답정너의 이미지만 강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고, 다시 대답해야겠다.
“꾸마야. 엄마랑 같이 요가할래? 말래?”
“꼭 해야 해?”
“요가 안 해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