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름

신앙의 단어

by 박상민

예수를 믿음. 그것은 인생과 세계의 변화가 따로는 전인격적 과정이다. 믿지 않았던 삶에 베인 주인들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주님을 따르는 과정이다. 물신주의를 통해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 앞에 언제나 무릎 꿇고 숭배했던 나날들과 헤어지는 과정은 진실로 만만치 않다. 소비의 힘으로 휘두르는 이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 눈으로 바로 보는 요한복음 속 예수는 심상치 않다.


예수의 비참한 종말, 너덜거리고 찢겨 죽임 당하는 황당한 삶의 예수. 그와 같은 예수의 결말을 가감 없이 전하는 요한복음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매력 없어 보인다. 이전의 내 삶의 주인을 통해 주입된 사상. 잘 먹고 잘살고, 잘 놀고, 잘 누리고 싶은데 요한복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의 초대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엄청난 은혜에 수긍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곳곳에 잘 먹고, 잘살고, 잘 놀고, 잘 누리는 삶의 내용들이 가득하다.


예수의 부활. 그리고 베드로를 찾아오심 가운데 나누는 이야기에서도 그분을 통한 삶이야 말로 진정으로 풍성한 삶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예수의 비참한 죽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베드로, 주님은 그에게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는 세 번이나 고백한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더 원한 다고 사랑한다. 그러자 주님은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28)”


예수를 따름. 예수님을 따름은 베드로가 원하고 바라는 시선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의 순교적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예수님의 말씀에 어리둥절한 그는 제자였던 한 사람을 지칭하며 “그는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묻는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란다. 지금 네가 취해야 할 모습은 바로 나를 따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분의 말씀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일생 동안 되뇌었을 것이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인가? 나를 따르라.”


주님의 부르심은 2000년이 넘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분의 부르심에 순응하며 그분이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따르는 삶.


그것이 오늘 지금 여기에 필요한


“나를 향한 부르심” 이자

“오늘을 살아갈 믿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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