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십 대였을 땐, 스무 살만 넘으면 세상이 전부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기회가 쏟아지고,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십 대엔 서른이 되면 무언가 확실히 달라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길이 보이고, 어른이 된 기분으로 웃을 줄 알았다.
서른 엔 마흔이 되었을 때쯤엔 세상에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나만의 자리가 하나쯤은 굳건히 마련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많은 날들을 두려움과 불안, 혼란 속에서 보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걸, 모두 마음속 한구석에 불안을 품고 살아간다는 걸 점점 더 알게 된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안전하고 정해진 삶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것과 같았다. 그 뒤로 두려움과 혼란은 거의 내 마음의 기본값이 되었다. 즐겁고 뿌듯한 날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마치 짙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다가 숨이 턱 막힐 때가 많다.
나는 내 본성을 찾겠다고 온갖 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인터넷을 뒤져본다. 하지만 정작 그 답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조금만 잠잠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그걸 자꾸 잊어버릴 뿐이다.
자신의 본성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결국 우리는 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말하는 꿈은 직업적 목표나 화려한 성취가 아니다.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진짜 꿈. 현실이 아무리 시끄럽고 불안해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엔 언제나 작은 목소리가 있다. ‘이럴 때 네가 가장 너답지 않았니? 이럴 때 네가 가장 살아 있지 않았니?’
그 목소리는 너무 작고 고요해서 자주 놓친다. 그래서 자주 길을 잃는다.
그래서 우린 내 본성대로 사는 일은 결코 혼자서 해 낼 수 없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살려면 서로 의지가 되어줄 손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너, 우리는 모두 공동체가 필요하다.
나는 매일 간절히 바란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혼자 이 길을 너무 오래 걷지 않기를.
마음을 나누고, 나아가 영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큼 삶에서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남을 돕는 것은 곧 나를 돕는 일이기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 그 손은 다시 내 손을 붙잡아 준다.
어려워도 그런 삶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 보고 싶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갯속을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맞잡아지는 손이 있지 않을까.
반갑게 그러쥘 손들이
거기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