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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Jul 11. 2023

초등학교 용병을 아시나요? (3)

4. 초등학교는 왜 무너지는가? -3-3

www.pexels.com/ko-kr/photo/159728


 "우와아아아아!"


 "아자! 이겼다!"


 공을 잡고 포효하는 학생과 승리로 환호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저는 씁쓸하게 웃습니다. 우리가 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속한 팀이 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순간이 평생 제 기억에 남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상황은 추워지는 날씨 속에 앞으로 더 이상 운동장에서는 체육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지막 운동장 체육 수업. 반의 청백전 발야구 게임. 스코어는 8:6. 주자는 만루. 마지막 타자로는 교사인 제가 들어갑니다.


 "선생님! 홈런 치세요!"


 "홈런! 홈런!"


 "야, 뒤로 와! 뒤로!"


 "뒤로 가라고!"


 발야구공을 굴리는 학생과 가장 멀리서 수비하는 학생들이 뒤로 가서 공 잡을 준비 하라고 연신 다른 친구들에게 소리를 질러댑니다. 운동장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저는 앞선 타석에서 연달아 홈런을 날렸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처럼 가급적 저는 경기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이지 즐기려고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직까지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경쟁력이 있기에 육시간 경기에서 제가 어느 팀으로 들어가든 밸런스가 무너집니다. 봐주기에는 학생들도 금방 눈치채지요.


 요새는 반당 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가장 체육 잘하는 남학생 두 명이 한 편이 그 팀이 무조건 이깁니다. 그렇다고 매번 갈라놓으면 그 친구들이 는 평생 떨어져야 하는 운명이라는 둥 재미없다는 둥 입을 삐쭉 내밉니다. 그렇다고 붙이면 반 전체가 난리 나죠. 체육에서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먹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학생들끼리 팀을 알아서 나누고 제가 불리한 팀으로 들어갑니다.(일 년에 한두 번? 두세 번?) 모두의 평화를 위해 잘하는 학생들이 같은 편을 하고 상대편에 용병으로 제가 들어가지요.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자존심이 있지요. 한 번쯤은 박살을 내줘야 교사의 위신도 좀 서고 학생들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기는 제가 속한 팀이 이깁니다. 저는 룰을 아주 잘 알고 이용하는 데다가 갈수록 일반 학생들의 운동 능력 떨어지거든요. 우리나라에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현재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의 체격은 예전보다 좋은데 운동 실력은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수업 종 울리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공을 굴리는 학생과 저를 주시합니다. 공을 든 학생은 긴장이 되는지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공을 굴립니다. 발야구 규칙의 정석대로 공은 반듯하게 아주 잘 굴러옵니다.


 '뻥!'


 찬 순간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습니다. 아마 그 해 제가 찬 공 중에서 가장 제대로 맞은 잘 찬 공일 겁니다. 크고 맑은 소리를 낸 배구공이 포물선이 아니라 직선을 그리며 쭉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발야구 공은 순식간에 운동장 한쪽 끝에서 운동장 한 중간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체육에 가장 목숨 거는 남학생이 떨어지는 공을 열심히 쫓아갔습니다.


 '설마~'


 발야구를 해보면 많은 학생들이 공을 잡는데 익숙지 않아 잡을 수 있는 공도 손에서 떨어뜨립니다. 달려가거나 달려오면서 공을 잡는 경우는 정말 체육을 좋아하거나 열심히 하는 학생들 몇 명만 가능합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높이, 멀리 날아간 공은 정말 잡기 어려워합니다.


https://www.pexels.com/ko-kr/photo/718952/


 "잡았다!"


 사진처럼 남학생이 제가 찬 공을 잡아냅니다. 평소에도 응원하는 야구팀에 대해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 꽃을 피우고 전날 야구 경기 결과에 희로애락을 분출하는 남학생. 그 학생이 넘어지며 공을 잡아냈습니다. 사방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겼다!"


 "우와아아아아!"


 분명히 공을 잡으면서 땅을 굴러 아플 텐데 학생은 전혀 아픈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싱긋 웃고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봅니다. 같은 팀 친구들은 운동장 한쪽에서 그 학생이 있는 운동장 중앙으로 모두 달려갔습니다. 순식간에 운동장 한가운데가 축제 분위기가 됩니다.


 "선생님, 거기로 차시면 어떡해요!"


 "선생님 일부러 쟤한테 찼죠?"


 "선생님이 차고 싶은데로 차면 선수했지. 그리고 그게 봐준 거냐? 쟤 어디서 잡았는데! 저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우리 팀 여학생들이 와서 몇 마디 떠들어댔지만 누가 봐도 봐주거나 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잘 찼고 그 학생이 잘 잡았습니다. 모두들 더 이상 말 안 하고 순순히 물러갑니다.


 "자, 정리하고 들어가자."


 학생들이 들뜬 마음으로 순식간에 정리를 끝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누구 때문에 졌어, 거기서 그렇게 했어야지 등 아무리 하지 말라고 일러줘도 서로를 탓하는 말들이 나오는데 그날은 그런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긴 팀 학생들은 승리에 취해있었고 공을 잡은 학생은 하루 종일 들떠있습니다. 하지만 진 팀 학생들도 특별히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경기에도 다른 경기와 똑같이 잘못한 부분, 서로를 탓할 부분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저도, 학생들도, 모두들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이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순간이구나. 남학생, 여학생 모두 최선을 다해 점수를 냈던 장면들. 매번 선생님이 나와서 자기들(이긴 팀 학생들)의 노력을 뒤엎어 버리고(홈런 2개), 그리고 마지막에도 선생님으로 인해 질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것.


 저는 그 경기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들이 기억하는 그 경기 순간순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제가 그날은 용병으로서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용병을 아시나요? (2) : https://brunch.co.kr/@ar80811517/78

 다음 글 :https://brunch.co.kr/@ar808115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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