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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강인성 Oct 22. 2023

최초의 질문

있다는 건 무엇인가_존재론

저에게는 작은 수첩이 하나 있습니다. 중학생 시절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잡학적인 지식, 사상 등을 나열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는 그를 흉내 내며 떠오르는 뭐라도 적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산 수첩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커다란 양장노트를 원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고심 끝에 골라 주문했더니 수첩이 와버렸지만요. 별수 있나요. 

그 수첩에는 꽤나 흥미로운 짧은 글이 많습니다. 누가 보면 철학 영재인 줄 착각할 만큼요. 이상하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쓸데없는 철학적 질문들이 끌렸어요.  지나고 보니 영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그 수첩에 적혀 있던 글로 이 책을 쓰고 있으니 꽤나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수첩에 적혀있는 다섯 번째 글입니다.


5.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의 관점으로는 사물의 존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지기 전에 책상은 무엇이었나? 나무판자? 그렇다면 나무판자는 나무판자라는 이름이 붙어지기 전에 무엇이나. 물체? 그럼 물체란 이름이 붙기 전엔? 없다. 책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이 생긴다.


정말 쓸데없죠? 중학생 때 이런 걸 수첩에 적고 앉아있으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만무합니다. 지금 제가 봐도 속이 터지는 질문이네요. 만약에 제 아들이 수첩에 뭘 적고 있어서 봤더니 저런 글이면 한숨부터 나올 거예요. 아이고 이 놈 자식 멀쩡히 회사 다니기는 글렀구나.

하지만 놀랍게도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짧은 글에 존재론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이 들어있거든요. 그러니 제 아들이 아니라 친구 아들이었다면 참으로 기뻐했을 겁니다. 여기 철학영재가 있구나! 존재론에 대해서 하루 종일 떠들 수 있겠다! 슬프게도 그런 친구 아들은 없으니 여기에서 떠들도록 하겠습니다. 저 글을 한 번 풀어보죠.


- 책상에 대해

제 앞에 책상이 있습니다. 책상이란 뭘까요. 어떤 사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식은 그냥 아는 대로 말해보거나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는 겁니다. 우선 대충 책상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볼까요?


책상: 무언가를 올려놓고 작업하기 위한 가구


너무 대충인 듯 하지만 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이번엔 사전에서 뭐라고 하는지 찾아볼까요?


책상: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가구

(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만 역시 뭔지는 알 것 같군요. 공통적으로 책상이란 두 가지 특징이 있나 봅니다. 1. 무언가를 올려놓고 2. 무언가를 한다. 이걸로 책상을 다 설명하기엔 모자란 감이 있습니다. 조금 더 깊게 가보도록 하죠.

저는 어제 아이패드로 드라마를 볼 때 바닥에 앉아서 의자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보았습니다. 이 경우 의자는 정확하게 책상의 역할을 한 거죠. 그러면 그 의자는 책상이 된 걸까요? 혹은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생 때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못 가는 날엔 동아리방 책상에서 요가매트를 펴고 잔 적이 있습니다. 이 경우엔 책상이 책상이 아니게 된 건가요?

물론 의자가 잠시 책상이 되었다가 의자가 되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제가 죽을 때까지 그 의자를 책상처럼 쓰면요? 그러면 의자는 책상이 되나요? 만약에 된다고 칩시다. 의자를 책상으로 바꾼 저는 죽었고 그 책상은 중고로 팔려 누군가의 손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걸 책상으로 쓸까요 의자로 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의자로 쓸 것 같습니다. 이렇듯 ‘사물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물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데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누군가는 책상으로 쓰던 의자를 다시 의자로 쓴 걸까요? 그야 간단하죠. 의자처럼 생겼으니까요. 누가 봐도 앉으라고 만들었으니 의자로 쓰는 겁니다 즉 어떤 사물이 무엇인지를 정의 내릴 때 중요한 건 그 사물의 외형입니다. 그러면 책상은 어떻게 생겼나요?

우선 다리가 있어야겠죠. 보통은 네 개의 다리가 있습니다. 혹은 두 개의 다리가 면으로 되어 받치고 있는 경우도 있죠. 혹은 하나의 다리가 가운데에 있어서 균형을 잡고 있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다리가 없이 통으로 만들어진 책상도 있습니다. 상판은 또 어떤가요. 100명이 같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넒 기도 하고, 혼자 이용하기도 버거울 만큼 좁기도 합니다. 평평한 상판이 대다수이지만 각도가 새워진 상판도 있어요. 높이는 또 어떤가요. 서서 이용가능 한 것부터 어떻게 이용하라는 건가 싶게 낮은 책상도 있죠. 심지어는 충격적 이게도, 의자랑 하나인 책상도 있습니다.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군요. 재료를 생각하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나무, 쇠, 돌, 흙, 콘크리트 등등등. 세공가능하면서 충분히 단단하다면 무엇이든 책상이 될 수 있습니다. 외형으로 책상이 무엇인지 정의하기엔 책상은 너무나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책상이고 무엇이 책상이 아닌 걸까요.


-시곗바늘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시곗바늘을 좀 돌려볼게요. 좀 많이 돌려야 합니다. 한 70만 년 전 정도면 적절하겠군요. 돌을 깨부수어 날카롭게 만든 다음 그걸로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하고 간단한 수공예도 한, 이른바 구석기시대입니다. 원시인 A가 날카로운 돌로 사슴 가죽을 자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닥에서 엎드려하자니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나 들러보던 그때, 한 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허리 정도의 높이. 평평하고 매끈한 윗 면. 무엇보다도 아래쪽이 살짝 파여 있어 다리를 집어넣고 앉기 편해 보입니다. 원시인 A는 신이 나서 그 바위 앞에 앉아 가죽을 올려놓습니다. 그러자 허리 통증은 사라지고 가죽을 자르는 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70만 년 전에는 책상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원시인 A에게 “이야. 좋은 책상을 발견했는걸?”이라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누가 봐도 원시인 A는 바위를 책상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책상인가요 아닌가요? 책상으로 이용했으니 책상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책상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바위라고 해야 할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책상이라는 개념을 없애버리고 바위만 남겨보았습니다. 이거 재밌으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바위가 원시인 A 옆에 놓여있던 시기보다도 전이요. 쭉쭉 돌리다 보니 이 바위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바위는 100만 년 전에 있던 지진으로 암벽에서 쪼개져서 이곳까지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즉 이 바위는 100만 년 전에는 바위가 아니라 암벽이었던 거죠. 이건 암벽입니까 바위입니까. 어떻게 암벽이었던 게 쪼개졌다고 바위가 될 수 있죠?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죠. 한 20억 년 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암벽이 어떻게 생긴 건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암벽은 20억 년 전에 있던 지각판의 충돌로 땅이 솟구쳐 올라갔던 겁니다. 즉 이 암벽은 20억 년 전에는 그저 땅의 일부였던 거죠. 그러면 이건 암벽입니까 땅입니까. 어떻게 땅이었던 게  솟구쳐 올라갔다고 암벽이 될 수 있죠?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시곗바늘을 돌리고 또 돌려봅시다. 그러다 보니 글쎄 45억 년 전으로 가버렸네요. 이제 이 땅이 어떻게 생긴 건지 명확히 보입니다. 우주를 떠돌던 먼지와 가스가 태양의 궤도를 돌기 시작했고 그게 단단하게 뭉쳐 땅을 만든 것입니다. 즉 땅은 45억 년 전에는 먼지와 가스였던 거죠. 그럼 이건 땅입니까 먼지와 가스인 겁니까.

더 과거로 가볼까요. 138억 년으로요. 그러자 그 먼지와 가스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보입니다. 하나의 점이 쾅하고 터지며 중성자와 양성자를 만들고 그 둘이 결합하여 원자가 되었죠. 결국 먼지과 가스는 원자의 결합체인 겁니다. 그럼 이건 먼지와 가스입니까 원자입니까.

시곗바늘은 138억 년에서 멈추어 더 돌아가지 않습니다. 결론이 났네요. 책상은 중성자와 양성자의 결합체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도 없죠. 궁극의 결론입니다. 이제 책상에 관한 모든 궁금증이 해소가 되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의자도, 컴퓨터도, 커피도, 그걸 마시는 저도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모두 중성자와 양성자의 결합체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을 구분하고 있는 거죠? 왜 우리는 어떤 중성자와 양성자의 결합체는 책상이라 부르고 어떤 결합체는 의자라고 부른 건가요.

이게 제가 중학생 때 적은 질문의 진짜 의미입니다. 물론 그때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럼풋이나 마 이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정도였죠. 답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긴 저는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는 모순으로 답을 때웠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모순을 해결하는 학문이에요. 그러한 질문에 답을 찾는 학문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질문입니다. 도대체 책상이 있다는 건 뭘까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선 ‘있는 것’들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뭐가 있는 걸까요. 있다는 건 뭔가요. ‘있는 것’ 그리고 ‘있음’. 지금부터 우리가 저글링 해볼 개념입니다. 존재론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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