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이제 3번 문장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3. 갑돌이는 현재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배우는 중이다.
철학적 질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철학이 뭔지는 쉽습니다. 궁극의 철학적 질문은 세 가지였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나와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 즉 철학은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학문입니다.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두고 철학적 질문을 떠올리던 갑돌이가 ceo직을 그만두고 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이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며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합니다. 부푼 마음을 가지고 수강신청을 하려 하는 갑돌이. 강의 목록을 봐볼까요? 과학철학. 정치철학. 언어철학. 심리철학 등등등. 뭔 놈의 철학이 이렇게 많은지 갑돌이는 당황합니다. 뭘 들어야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갑돌이가 철학과 수업을 모두 듣고 졸업하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될까요?
제 대답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입니다. 맞다는 입장부터 봐보죠. 철학에서 다루는 모든 질문은 궁극의 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세 가지 궁극의 질문을 알기 위해서 그 아래 있는 하위 질문을 연구하는 거죠. 그러한 점에서는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궁극의 세 질문은 너무 거대합니다. 아무리 하위질문에 답을 찾아도 결코 궁극의 질문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부분의 합은 언제나 전체보다 작을 수밖에 없어요. 궁극의 세 질문은 결국 아무 질문도 아닙니다. 하위질문을 만들어내는 계기 정도입니다.
철학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철학은 없다. 철학들이 있을 뿐.”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궁극의 세 질문에 답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그 세 질문은 너무 거대하기에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답 없는 질문을 찾아내는 건 학문이 할 일이 아니죠. 우리가 답을 찾을 수 있는 건 궁극의 질문 아래에 있는 질문 들입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들’이 연구됩니다. 갑돌이가 철학과에 들어가 배울 과학철학, 정치철학, 언어철학, 심리철학 등은 그런 철학들 중 하나인 거죠. 결국 철학을 한다는 건 철학들을 공부한다는 뜻입니다. 철학들을 공부한다는 건 현실 너머에 있는 나와 세계,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별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간단 뜻이고요.
그렇다면 개별적인 질문들의 답은 어떻게 찾아갈까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련의 과정 속에 답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의 글을 천천히 밟아나가 볼까요? 우선 철학과를 다니면 듣게 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말해 봤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우스갯소리이니 넘어가고요.(철학관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철학과 철학관과의 상관관계가 아예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 “그거 해서 뭐 먹고사냐?”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거, 즉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세 가지 문장에서 철학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살펴보았죠.
첫 번째는 “김갑돌 ceo의 경영철학은 훌륭하다.”입니다. 이 문장에서의 철학은 다양한 삶의 태도를 담는 개념으로서 의미 있고 유용하지만 사실이 될 수는 없음을 밝혔습니다.
두 번째는 “갑돌이는 문득 자유의지란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떠올렸다.”입니다. 이 문장을 통해 철학적 질문과 철학적이지 않은 질문의 경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현실너머의 나, 세계,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바로 철학적 질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갑돌이는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배운다”입니다. 이 문장에서의 철학은 궁극의 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철학이 아닌, 하위질문들에 답을 찾는 학문으로서의 개별 철학들임을 밝혔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철학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을 던지고, 쪼개고, 굴리며 옆으로도 보고 위로도 보고 아래로도 봤죠. 그 결과 “철학’이라는 단어 안에 무려 세 가지 의미나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철학이라는 단어를 잘 못쓰며 오해하고 있었나를 알 수 있었죠. 궁극의 세 질문 아래에 있는 질문들은 모두 이러한 형태입니다.
“x란 무엇인가?”
사실 여러 형태가 있기는 합니다만, 웬만하면 억지로 끼워 맞춰서 “x란 무엇인가?”형태로 바꿀 수 있으니 일단은 넘어갑시다. 만약 x가 사물이라면 관찰하고 실험해서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커피란 무엇인가?”라면 커피의 맛과 감촉, 색을 관찰하면 되죠. 혹은 그 안의 화학분자구조를 밝혀내던지요. 커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철학이 관심 있는 x는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의식. 영혼. 신. 아름다움. 정의. 올바름. 죽음. 본질. 사실과 거짓 등등등. 또 이런 예도 있습니다. 과학. 예술. 정치. 언어. 수학. 이념. 논리 등등등. 어떤가요. 무언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당연히 그게 뭔지 알 것 같지만 막상 설명하려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분명히 있는데 또 확실하게 있다고 말하기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없다 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분명히 의미는 있지만 형태는 없는. 분명히 사물 안에 들어있지만 사물과 구분되는. 철학은 그러한 x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철학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멋지게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학부생 시절 과학철학 수업에서 교수님께 들은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인하대학교 철학과 고인석 교수님께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을 이렇게 써먹는군요. 아무튼. 교수님은 수업 첫날 저희에게 이 책의 처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철학이란 뭘까? 철학을 한다는 건 뭘까?”
학부생 나부랭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철학과를 다니며 그러한 질문을 무수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기회라고 생각했죠. 교수님의 답을 잘 기억해 두었다 누가 철학이 뭐냐고 물으면 써먹어야겠다고요. 몇 명의 학생들이 진리를 탐구한다, 만학의 아버지다, 과학이 알 수 없는 걸 알려고 하는 학문이다 등 뻔한 답들을 말했고 교수님은 그런 대답들 하나하나에도 열정적으로 반박하며 답을 해주셨습니다. 강의실은 금방 조용해졌고 얼타는 저희를 보며 씩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철학은 개념을 저글링 하는 학문이란다!”
저글링. 저는 저글링이라는 표현에 확 꽂혀버렸습니다. 개념을 저글링 한다는 표현이 너무나 쿨하고 스마트해 보였죠. 철학을 지루하고 딱딱한 학문에서 유쾌하고 즐거운 학문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 당시에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을 놓지 않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저도 개념을 저글링 하고 있더군요. 교수님의 저 표현이 얼마나 적절하고 위트 있는 표현인지 알게 되었죠.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할 철학은 여러분을 잘 살게 만들 철학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각자 알아서 잘 사실 거라 믿습니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나와 세계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답하는 철학도 아닙니다. 물론 철학을 하며 여러분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답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앞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철학은 언제나 그 답을 깨부수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제가 소개할 철학은 개념을 저글링 하는 철학입니다. 도대체 그 저글링이 뭐냐고요? 교수님께서 쓰신 저글링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된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노는 행위 전체가 바로 저글링입니다. 그렇다면 개념을 가지고 노는 게 철학인 셈인데, 도대체 개념을 가지고 어떻게 논다는 걸까요.
놀랍게도 제가 지금까지 한 게 바로 저글링입니다. ‘철학’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렇게나 재밌게 가지고 놀았죠. 철학이 뭔지 알기 위해 철학이라는 개념을 던지고 쪼개고 분해해서 앞으로도 보고 뒤로도 보고 옆으로도 봤습니다. 그러면서 사실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갔죠. 이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저글링이고,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