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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May 04. 2020

면치기 연습 중입니다

나로 살기 위해서..

요즘 아이들과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식사시간도 많아졌어요.

가끔은 아이들끼리 식사하고

저는 거실의 제 책상에서 일을 해요.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찡그려지고 눈을 꾹 감게 돼요.


아이들이 식사하며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신호로 내는

'후루룩~~~'소리에, 순간 온 신경이 정지될 정도로

고통을 느낍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의식 깊은 곳에서 다시 싹을 키우고 있었나 봐요.

싹을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은 잔재들이 있었나 봐요.

저는 음식을 먹을 때 소리 내지 않고 먹으려 애써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제가 내는 모든 소리들이 신경이 쓰이고

눈치를 보며 살았죠.

상담을 받고 저를 이해하며 편해졌지만

20년 넘게 각인되어 미련스럽게 지켜온 습관들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더라고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할머니께서 집에 올라와 며칠 계신 날 저녁.

한 상에 우리 세 자매와 할머니, 부모님까지

6 식구가 옹기종기 붙어 앉아 국수를 먹고 있었어요.

배가 고팠는지 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젓가락이 날아왔어요.

다행히 제 얼굴 옆으로 넘어가 제 뒤에 나뒹굴어졌지만

마음은 그 젓가락에 맞은 거나 다름없었어요.

아빠의 젓가락이었어요.

다른 일로 기분이 안 좋으셨던 게 분명한데

저한테 소리 내며 먹는다고 화풀이를 하셨죠.


아빠의 화는 그렇게 풀렸겠지만

저는 그 날부터

소리 내는 법을 까먹었습니다.

그날부터 15년이 지나

20대 중반에 열심히 연습했어요.

소리도 후루룩 내보고, 쩝쩝쩝도 하고,

일부러 꿀꺽꿀꺽 삼키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무뎌지고,

괜찮다 했는데

다시 잊고 있었나 봐요.

요즘 다시 제대로 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먹방 한참 유행이었잖아요.

ASMR도 있는데 제가 의식적으로 피했어요.

보고, 들으면 힘들었거든요.

그분들이 원하는 대로 시원하게 먹고 내는 소리가

제게는 여전히 고통이었나 봐요.


그 고통이 지나가도록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여전히 아팠었구나.

아직도 두려웠구나.

내 소리를 내도 된다고 확신이 없었구나.

이제 젓가락 날아오지 않아.

어느 누구도 너에게 날릴 수 없어.

넌 너를 보호할 힘이 있어'


마음을 보듬고,

요즘 저는 면치기 연습 중이에요.

방송에서 면치기 하는 분들 눈여겨봐 뒀었거든요.

한 젓가락 크게 집고,

호호 불고,

면발 끝까지 후루룩 흡입.


끝까지 쭉 흡입은 안되지만 기분은 왠지 좋았어요.

시원하더라고요.


저도 면치기가 좋습니다.

맛있게 먹는 제가 좋습니다.


오늘도 저는 면치기 연습 중입니다.

나로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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