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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ul 07. 2020

발레 치마만 일 년 내내

너의 4살 이야기

2. 발레 치마만 일 년 내내   

         

 딸아, 추억의 발레 치마 기억나니? 캉캉 춤출 때 입는 치마처럼 층층이 펼쳐져 있고, 허리부터 너의 무릎 살짝 위까지 오는 알록달록한 옷이야.  그 옷은 너의 4살과 늘 함께 했단다.      


 동네에서 했던 발레 공연을 보고, 언니들처럼 발레 한다며 그 날부터 이 옷을 입었어. 집에서는 내복 위에도 늘 입고, 외출복 입으면 언제나 그 위에다 이 치마를 입었지. 마치 발레리나가 된 것처럼 손을 위로 둥그렇게 모으고, 빙글빙글 돌고, 그랬단다. 문제는 발레리나 놀이할 때뿐만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밥 먹을 때도, 놀 때도, 외출할 때도, 잘 때도 몸에 걸쳐야 한다는 것이었지. 여름에 시작되어 겨울 두꺼운 외투 속에도 늘 입혀 있던 장면이 기억나는구나. 그 옷만 입으면 정말 행복해했어.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해했지.     

 친척들도 너만 보면 “또 그 치마 입었어?”하며 예쁜 옷도 사 주시고, 마음을 바꾸도록 회유 작전도 펴지만, 무참히 실패를 봤단다. 다른 분들 눈에는 주야장천 입어서 낡고 색이 바래가는 치마가 안 예쁘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 옷을 입고 있는 네가 빛이 덜할까 봐 걱정하셨겠지. 그럼에도 너는 당당히 거절했어. 이것만 입겠다고. 아무리 예쁜 옷을 입혀놔도 그 위에 꼭 걸쳐 입었단다.    

 

 심지어, 빨래를 할 때도 말리는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했어. 4살이라 가끔 소변 실수를 할 때가 있었어. 11월 늦은 생일이니 4살이어도 늦은 4살이었거든. 실수를 하면 옷과 스커트가 젖었으니 당연히 빨아야 하잖아. 당장에 입겠다고 난리를 쳐서 얼른 손빨래해서 탈수하고 드라이로 빠른 건조를 했지. 다 마르지 않았는데도 입어야 안정이 됐어. 어떨 때는 한숨도 나왔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너를 보며, 한 가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단다.     


 돌아보면, 엄마는 어렸을 때 뭘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 없어. 애착 인형도 없고, 기억에 남는 물건도 없단다. 어릴 때,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 주고, 믿어주는 대상을 찾지 못했지. 그래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적었을지도 몰라. 엄마는 진짜 나를 사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     


 언제까지 저 옷을 입고 다녀야 하나 마음 한 편에 걱정이 있었지만, 너와 동생을 키우며 깨달은 건 그건 기우라는 것이지. 끝이 없을 것처럼 매달리고 집착하는 모습 동안 엄마의 기다림은 인내심 테스트지만, 곧 끝이 나더라. 네가 할 만큼 다 정성을 쏟고 나면, 다른 것에 눈길이 가고, 자연스레 인사를 하더라. 유치원에 가면서부터 그 옷은 한 번도 찾지 않았어.


 어떤 옷을 입고 있어도 너는 똑같이 빛나. 값 비싸고 유명 메이커 옷을 입으면 사람이 더 화려하고 멋있어 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옷 덕분이지. 우리는 어떤 옷을 입건, 액세서리를 하건 언제나 빛나는 존재란다. 네가 사랑했던 발레 치마는 참 행복했을 거야. 너의 사랑과 애정, 신뢰를 듬뿍 받았으니. 쉬는 시간도 없이 입혀져 있어야 해서 힘들었을 수도 있을까? 헤어지게 되면서 섭섭했겠지만, 너와 스커트는 서로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물했단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 발레를 중 1인 지금까지 한 곳에서 배우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전공도 아니고, 취미로 언제까지 배울 거냐고. 현재 너의 유일한 학원인 발레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 엄마가 새삼 깨닫게 된다. 발레는 너에게 사랑이구나!!! 너에게 빛나는 끈기와 열정, 사랑은 엄마도 인정한다, 인정!!!


 맘껏 너의 삶을 표현하고, 누리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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