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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ul 29. 2020

소고기 뭇국은 짜고, 계란말이는 싱거워

요리꽝인 엄마도 괜찮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8시가 넘었다.

내일 나는, 일을 나가야 하고,

가스레인지 위에 적당한 음식이 없으니

뭔가 하나는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엄마라는 명목으로, 뭐라도 하나 해야 한다.


냉장고에서 국거리용으로 손질해 두었던

소고기를 해동하고,

긴급재난지원으로 정부에서 보내 준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소고기 뭇국을 만들기로 한다.

얼마 전에 만들었으니 기억이 날 만도 한데,

또 까먹었다.

스마트폰 속 요리전문가 분들의 노하우를 빌려

다시 요리를 시작한다.


14년 차 엄마인데도 나는 늘 이렇다.


첫째 딸이 배고프다며 저녁을 먹겠다고 한다.

원래 내가 오기 전에 먹었거나 배고플 때 먹는 편이라서

딸이 저녁을 먹겠다니

마음이 설레고 분주해진다.

뭔가 하나 더 있어야겠는데..

계란을 사 두었으니 계란말이를 하자.

소고기 뭇국은 거의 다 끓여가고,

빨리 당근과 양파를 다져서

치즈 넣고, 계란말이를 하자.

소고기 뭇국은 계속 끓어가고,

나는 얼른 야채를 다지고, 계란을 풀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거의 다 완성이 되어 소고기 뭇국을 끄고,

그릇에 담았다.

밥과 국을 먼저 주고, 딸에게 먹고 있으라 했다.

계란말이도 완성을 향해가고 있으니 기다리라 하고.


딸이 한 입 먹고 말한다.


"엄마, 너무 짜.."

아뿔싸, 계란말이 한다고 너무 끓였나 보다.

아까 간 볼 때 딱 맞았는데,

너무 졸여졌나 보다.


"어떡하니, 못 먹겠어?"

"아니, 밥이랑, 먹으면 될 거 같아."

"그래, 지금은 우선 먹자."


계란말이가 완성될 때쯤

딸이 냄새가 너무 좋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건 성공이다 싶었다.

예쁜 접시에 담아내어 식탁에 떡하니 올려주고,

나는 싱크대 정리를 하러 돌아왔다.

"엄마, 계란말이는 너무 싱거워.

소금 안 넣었지?"

"맞다, 안 넣었다, 소금..

케첩 뿌려줄게"

"국이랑 같이 먹으면 간 딱 맞겠다.

그냥 먹을게."   


아... 14년 차 엄마의 명목이 없다..


그래도, 나는 자책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14년 차건, 40년 차건

내게 요리는 늘 이럴 것이다.

늘 새롭고, 망설여지고, 헷갈리고,

두 개 이상 동시에 하게 되면 정신없고..

난 요리가 체질에 정말 안 맞는다.

설겆이는 진짜 좋아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어려운 것들이 있다.

어려운 것을 애써 엄마라면 당연히 잘해야 한다는

출처 없는 당위성에 맞추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는 나를 비난하고, 자책하고, 주눅 들었다.

이제는 나를 중심에 두고, 판단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나를 재단하지 않으리라.

소고기 뭇국이 짜고, 계란말이는 싱거웠지만

그 요리를 하기 위해

나는 한 시간을 서서 바둥대고,

머리를 굴리고,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 됐다.


오늘도 나의 삶에 미소로 추억할

에피소드가 생겼고,

글로 남기고 싶은 귀여운 충동이 들었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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