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배운 것 6
- 아, 너희는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어서 좋겠다. 엄마, 나는 호야, 꼬야(주1)가 부러워!
아이야.
너는 너 자신을 종종 ‘집순이’라고 표현했어. 가끔 늘 집에만 있는 냥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지. 어떤 때는 친구와 약속이 깨졌는데 ‘아 잘 됐다!’ 하기도 했어. 친구와 약속이 깨졌는데 잘 됐다고? 의아해하며 물었더니 너는 말했어.
- 엄마, 나도 친구 필요하고 친구 좋아해. 만나고 싶으니까 만나려고 약속한 거고. 근데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 오면 기 빨려. 방전돼서 집에 와서 꼭 충전을 해 줘야 돼. 핸드폰이랑 비슷한 거야. 배터리를 썼으니까 충전이 필요한 거지.
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크고 나서야 엄마는 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엄마는 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생각해 왔고 늘 사람들 사이에서 머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어.
고등학교 때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힘들지 않았어.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늘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린 기억들뿐이야.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지. 늘 밤늦게 들어왔는데, 어느 날 저녁 식사쯤 귀가했더니 너의 할머니가 물으셨어.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디가 아픈 건 아니지?” 엄마가 집에 일찍 들어오면 몸이 아픈 게 아닌가 생각하실 정도였지. 가끔은 아빠를 닮아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고 불평도 하셨어.
결혼하고 엄마, 아빠의 신혼집에는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함께 살았어. 신혼집에 다른 사람을 들여 함께 산다고 하면 누군가는 엄마, 아빠가 대단한 배려라도 한 듯 말했지만, 실은 그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함께 사는 게 더 즐거웠기 때문이었어. 너를 낳고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백일이 그런 점에서 보면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 사회적 연결망이 모두 끊어진 그 상태 자체가 엄마에게 큰 상실감을 주더라고. 그 고립감에 조금 괴로워하다가 결국 엄마는 방법을 찾았지. 40일 만에 온라인에서 같이 아이 키우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찾아들어갔지. (그 관계망은 지금도 엄마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들이라 후회는 없어. 그렇지만 엄마도 참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야. 결국 엄마는 공동육아를 택하게 되었어. 많은 아이 키우는 다른 부모들, 많은 아이들 속에서 널 함께 키웠어. 공동육아는 엄마의 결혼생활을 구해낸 '구원자'였어. 늘 바빠서 아빠와 결혼을 한 건지, 널 함께 키우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는데, 다행히도 이웃들과 어울릴 수 있었어. 지금도 아빠에게 웃으면서 얘기할 정도야. "공동육아 안 했으면 이혼했을 걸?" 공동육아는 아빠와의 결혼생활을 지켜 준 고마운 곳이지. 너를 키우며 공동육아를 했던 건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덕분에 엄마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아. 모두 그저 겉으로만 맺은 관계들이 아니고. 그중 성인이 되어 만나 평생 친구가 된 이들도 적지 않고 엄마를 늘 지지해 주는 응원군도 얻었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수는 함께 여행도 다닐 만큼 가까운 관계가 되었어.
그런데 그건 그거고... 얻은 것 뒤에는 잃은 것이 있을 거야.
엄마를 돌아보면, 엄마는 혼자 있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어. 혼자 있으면 재미없고 심심하고 무기력했어. 엄마는 외로움이 두려운 사람이었나 봐. 엄마는 자기 자신에게 머무르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혼자 노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아빠와 너는 혼자서도 참 잘 지내는데 말이야.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폴 틸리히)이라는데 엄마는 고독과 친구 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너를 보면서 다 큰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에야 혼자 있는 법을 서서히 배워 나갔어.
엄마는 오랫동안 낮에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밤에는 돈 벌려고 학원가에서 일했는데, 그렇게 밤낮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몸이 아파 결근한 적은 거의 없었어. 4-5년에 한 번쯤이나 아팠으려나. 그런데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힘들었나 봐. 그 때 처음으로 1년에 한 두번쯤 몸이 아팠어. 결근을 해야 할 정도로 아픈 건 거의 처음이었어. 육아기 전까지는 몸 아파 결근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 강철 체력이었나 봐.(ㅎㅎ) 처음으로 엄마도 쉬거나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알게 된 것 같아. 처음으로 "남편도 모르겠고, 아이도 모르겠고, 나 혼자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거든. 엄마도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그럼에도, 엄마는 곧 엄마의 천성으로 돌아왔어. 다시 공동육아와 깊게 어울렸으니까.
그래서 너에게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주1)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어. 다행히 너는 책을 참 좋아했어. 주말이면 꼭 도서관에 가자고 하더라고. 네 덕분에 엄마도 다시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어. 어쩌면 엄마가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 공부를 했으니 지속하게 된 것도 네 덕분일지 몰라. 당시에는 그저 일터가 익숙해져 이제 좀 심심해졌으니, 지루하다고 홀랑 일을 그만두지 않으려면 새로운 걸 시도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엄마에게도, 엄마의 내면에도 무언가 성장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
혼자 집에 있다가 엄마가 집에 오면 넌 말했지. 엄마가 오면 갑자기 집이 시끄러워진다고. 밤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기는커녕, 너를 옆에 재우는 와중에도 덕질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보며 환호성이나 질렀던 엄마가 오늘따라 부끄럽네.
그런 엄마가 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너는 혼자 집에 있어도 혼자서 즐겁게 네 시간을 즐기더라. 혼자 즐겁게 자신의 시간을 채우며 스스로 여러 경험을 찾아갔떤 네 모습이 떠오른다.
해리포터에 심취해 책 전권을 여러 번 읽었지. 책을 읽고 나서는 영화에 빠져 들었지. 책부터 영화까지 외울 정도로 샅샅이 보더라. 엄마가 집에 오면 책과 영화의 다른 장면을 발견한 것을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양, 신나서 얘기하곤 했어. 우리집 고양이들은 너의 말없는 친구이지. 너는 고양이에 대해서도 계속 알고 싶어했어. 온갖 고양이 책들을 섭렵하더니, 동물권 책까지 점점 관심을 넓히며 깊은 생각을 하던 모습도 보았어. 너는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졌어. 아마도 너 자신을 탐구하기도 하고 '관계'를 탐구하기도 하는 시간이었을 거야. 유행하는 MBTI에서 출발해 ‘에니어그램’ 같은 심리학책에도 심취했어. 너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나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어려움이 있는지 탐구하던 모습도 떠오르네.
아이야. 너도 알고 있을까? 네가 혼자 고요히 머물 줄 아는 아름답고도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야. 엄마는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거든.
외로움은 “영혼이 넓어지는 공간“(도라 도키우)이래. 로마 로랑은 “외롭지 않은 외로움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더 잘 알게 해 주는 시간”이라고 했어.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 자신을 더 잘 알게 해 주는 시간이었을 거야. 그 시간들이 너의 영혼을 키워주었을 거야.
네가 혼자 머물기를 즐기는 사람인 것은 엄마에게도 행운이었어. 엄마는 어리석게도 그저 엄마와 네가 성향이 다른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엄마에게도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 그건 오직 가까이에 있던 너에게서 배운 거야.
네 덕분에 엄마도 코로나가 왔던 시기쯤에는 몸에 집중해 보고 운동을 하게 되었어. 혼자 산책하고 혼자 산에도 다니게 되었어.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날 수 없던 시기가 되어 다행히 뒤늦게 시작한 석사 과정을 마무리하며 논문도 쓸 수 있었어. 그 때쯤 새롭게 글 쓰는 연습도 조금씩 해 보게 되었어. ‘아티스트 웨이’를 접하고 ‘모닝 페이지’와 ‘나와의 데이트’(글 나외의 데이트를 해 보았습니다) 를 하면서 홀로 머무는 시간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느꼈고 혼자여도 꽉 찬 충만감도 경험하게 되었지. 올해 처음으로 네가 자리를 비운 시간 동안,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어.
니체는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고 했는데, 너를 스무 살까지 키운 지금에서야 엄마는 혼자인 시간을 즐겨 보는 중이야. 혼자서 조금씩 나아가 보는 중이야. 그동안 엄마에게 주지 못했던 엄마 자신을 깊이 알아가는 시간, 엄마의 영혼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성장의 시간을 찾아가는 중이야. 엄마도 더 단단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거야. 엄마 같은 사람에겐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어울림의 시간과 혼자 머무는 시간의 균형을 의식적으로 맞추어야 한단 걸 혼자 머물러 볼수록 깨닫게 된다.
네가 너의 길을 하루하루 가는 동안, 엄마도 엄마의 길을 하루하루 걸어볼게. 홀로 머무는 고요한 시간을 새벽마다 쌓아볼게. 우리 만나는 날에 서로의 성장을 부쩍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지내자. 몸도 마음도.
그대들은 이웃들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서로 간의 교제에 대해 좋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그대들 자신에게는 질 나쁜 사랑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에게서 벗어나 이웃에게로 달아나고서는 그것으로 자신의 덕을 만들고 싶어 한다.
‘너’라는 호칭은 ‘나’라는 호칭보다 오래되었다. 너라는 호칭은 신성하게 여겨지지만, 나라는 호칭은 아직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인간은 이웃에게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대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하고 싶으면 증인을 초대한다. 그리고 그를 꾀어내 그대들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해 놓고선 그대들도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 그대들은 교제할 때 자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거짓말하면서 자신과 이웃을 속인다.
그것은 단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질 나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릴 뿐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참지 못하고, 또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도 않는다. 이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한 걸음, 단 한 걸음도 타협하지 말라. (주 2)
주 1> 호야, 꼬야: 아이가 11살 때부터 함께 산 고양이들의 이름.
주 2>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0, 느린걸음.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주 3> 프리드리히 니체,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2024, 포레스트북스.
표지 이미지> Image by Briam Cut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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