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대하여
아이야.
엄마가 가진 것은 진짜 힘이 아니었어.
엄마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도 몰랐어.
진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도 몰랐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몰랐어.
엄마는 진짜 힘을 갖고자 길을 떠나야 했어.
그런데 다음 달이면 출산이었거든.
길을 떠날 수는 없었어.
그렇게 지점장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하고,
곧 너를 낳았지.
지난 가을, 《어스시의 마법사》라는 책을 읽었어.
이 책엔 주인공 더니가 마법사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얻고 진정한 마법사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니가 자신의 나약함을 보고 화를 내는 장면에서 그가 꼭 엄마 같았어.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 화를 냈어. 그는 자신의 힘을 알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어.
더니는 차가운 안개 이슬에 젖은 가느다란 팔을 내려다보고 그 나약함에 화가 났다. 자신의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엔 힘이 있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기만 한다면, (주)
더니는 한 마법사를 만나 스승으로 삼게 돼. 조급한 마음이었던 더니는 나를 언제부터 가르쳐 줄 것인지 묻는데, 스승은 이미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답하지. 아직 아무것도 못 배웠다고 하자 “내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아직 몰라서 그렇지.”라고 답해.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기다리렴. 어른이 된다는 건 참는 것이지. 힘을 다스리는 이가 된다는 건 아홉 배나 더 인내한다는 것이고.” (주)
“모양과 향기와 씨앗으로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그것이 네잎새풀의 뿌리와 잎과 꽃임을 알게 되면 비로소 그 진정한 이름을 배우고 그 존재를 깨닫게 될 게다. 존재라는 건 그 사물이 가진 쓰임새 이상이란다. 결국 넌 뭐에 쓰겠느냐? 또 나는? 곤트 산이나 난 바다에 무슨 쓸모가 있니?”
오지언(*스승의 이름)이 최종적으로 말했다.
"듣기 위해선, 침묵해야 한단다." (주)
엄마는 더니의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았어.
‘아, 재미 없어.’. ‘아, 저 꼰대.’
더니가 요즘 사람이면 아마 그랬을 걸?
주인공 더니가 딱 엄마 같더라고.
더니가 스승과 길을 가는데 궂은 날씨를 만났어. 그런데 스승이 그 흔한 마법, 날씨를 바꾸는 마법을 쓰지 않는 거야. 그는 답답했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축축하고 찝찝한 덤불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현명이 지나쳐 힘을 쓸 수도 없을 정도라면 힘을 갖는 게 무슨 소용일까’(주1) 고민하지. 그 대목을 읽는데 철없이 아무데서나 가진 힘을 쓰려고 했던 엄마가 더니에게 겹쳐 보였어. 갑자기 부끄럽고 계면쩍은 마음이 되어 웃음이 났어.
아이야.
힘을 다스리려면 아홉 배나 더 인내를 해야 한대.
힘을 다스리려면 쓰임을 넘어서는 존재를 깨달아야 한대.
그러려면 들어야 하고 듣기 위해선 침묵해야 한대.
그런데 있잖아.
엄마가 이 과정을 네가 태어났을 때 그래도 조금, 경험을 한 것 같아.
너를 기르는 일은 엄마에게는 인내의 연속이었어.
아무도 엄마에게 아이가 밤에 쭉 잠을 자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어.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미칠 것 같았어.
밤에 너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엄마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었어.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견뎌야 했어.
네가 울 때면 다들 젖을 물리라고 했거든.
산후조리사의 말씀이, 엄마의 엄마의 말씀이 그렇게 듣기가 싫었어.
아이에게 젖을 주는 건데 그런 말을 들으면 왜 그렇게 모멸감이 느껴지던지,
내 몸이 왜 이렇게 짐승이 된 것만 같은지,
내면에서 소리치던 그 모멸감을 견뎌야 했어.
그렇게 시작되었던 육아가, 너와의 만남이 어느 새 20년이 된 거지.
아직 우는 것밖에 표현 방법이 없는 아가한테 화를 낼 순 없잖아.
밤에도 열심히 자라느라고 배고픈 건데 아가를 굶길 순 없잖아.
못 알아듣는 아가한테 화를 낼 순 없잖아.
아직 겨우 기어다니는 아이한테 집 좀 보고 있으라 하고 외출할 순 없잖아.
아직 제 입에 숟가락도 못 넣는 아기한테 밥 좀 해 놓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너에게 엄마의 말을 알아듣게 하려면 먼저 네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야 하잖아.
네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야 하잖아.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거든.
그냥 듣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거든.
그렇게 기다리면서, 그렇게 너에게 귀 기울이면서 듣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배워간 것 같다.
기다리는 것을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엄마도 기다림을 조금 경험한 것 같다.
엄마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말이야.
“어둠이 빛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힘 주위에 얼마나 큰 위험이 에워싸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 마법은 시합이 아니란다. 시합은 재미로 하고 또 남들에게 뻐기려고 하지. 이걸 염두에 둬라. 우리의 기술은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선이 아니면 악에 봉사하는 것이야. 뭔가를 말하거나 행하기 전에 그로써 치러질 대가를 알아야만 한단 말이다!”(주)
힘은 재미로 쓰면 안 되고 남들에게 뻐기려고 쓰면 안 된대.
힘은 선이나 악에 봉사하는 것이라 대가를 알아야만 한대.
엄마에게는 더니가 마법사가 되기 위해 모험하는 이야기가 엄마가 힘을 갖기 위해 모험을 하는 이야기로 들렸어. 계속 책을 읽는데, 이번엔 이런 구절이 나왔어.
“그러나 그건 오로지 겉모습뿐이란다. 환영은 보는 사람의 감각을 속이지. 마치 그것이 변한 것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게 하는 거야. 하지만 환각으로 사물을 바꿀 수는 없다. 이 돌을 보석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 진정한 이름을 변화시켜야 한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건, 얘야. 그게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야. 그렇게 할 수 있지. 물론 가능하단다. 그게 변화사의 재주다. 장차 준비가 되면 배우게 될 게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에 어떠한 선과 악이 뒤따르는지 알기 전엔 단 하나의 사물, 하나의 조약돌, 한 줌의 모래라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세상은 '평형'을 이루고 균형 잡혀 있단다. 변화와 소환에 관한 마법사의 힘은 그 세계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어. 위험한 것이야. 그 힘은 말이다. 아주 파괴적인 힘이지. 거기엔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꼭 필요해서 사용하는 것이라야 해. 촛불 하나를 켜는 건 곧 하나의 그림자를 던지는 거란 말이다......” (주)
힘은 진정한 이름을 변화시켜야만 의미가 있대. 모든 행동에 어떤 선과 악이 뒤따르는지 알기 전에는 한 줌의 모래도 바꾸어서는 안 된대. 힘은 위험하고 파괴적이래. 꼭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래.
이쯤 되면 마법을 쓰라는 거니, 말라는 거니?
이쯤 되면 엄마는 힘을 써야 하는 거니, 쓰지 말아야 하는 거니?
엄마는 가짜 힘을 가지려고 했고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기도 했어.
그런데 이건 결국 그 힘에 따르는 가치를 알기 전에는 힘을 쓰지 말라는 뜻이잖아.
엄마는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 힘을 쓰지 않는 걸 먼저 배워야 했어.
엄마는 그걸 몰랐던 거야.
주>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준영, 이지연 옮김, <어스시의 마법사>, 황금가지, 2006.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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