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는 파독 간호사로 오셨다 정착해 활발하게 이런저런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한인 어르신이 많습니다. 교회, 성당, 절 등 종교 단체에서부터, 외식업, 반전 평화활동, 한글학교, 미술가, 국악단, 한국 무용, 호스피스 봉사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할머니들은 어찌 이리도 정정하고 활동적이신지 감탄하며 말입니다. 물론, 활동적인 분들이 내 눈에 뜨이니 그렇겠습니다. 아프면 외출을 못할 테니 말이죠. 자연스레 내 노후를 내다보며 쌀쌀맞은 독일 의료진과 실랑이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나를 그려봅니다. 한국에 비해 아플 때 SOS 칠 수 있는 내 인맥도 척박하고, 의료 접근성도 떨어지는 독일에서(우선, 병원 예약도 몇 주 대기가 기본) 최대한 오래 독립적으로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영양 상태는 오래 채식 위주로 해오며 신경 써왔으니 특별히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운동 습관을 돌아보고 계획해 보기로 합니다. 내가 시도해서 실패했던 운동,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운동, 어려움 없이 노력 없이 찰떡궁합인 운동이 뭔지 뒤돌아봤습니다.
등산
어릴 적 주말마다 아빠와 등산했습니다. 아침 일찍 나서고 어두워서야 돌아왔으니 꼬마에게 힘든 일정이었을 텐데, 잘도 따라다녔나 봅니다. 어릴 적 사진 배경도 산과 계곡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주말에는 당일치기로 근처 산을 올랐고, 아빠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며칠 걸리는 등산도 꽤 했습니다. 중학생 때 고생하며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단련된 하체는 지금 큰 자산입니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등산의 재미를 일깨운 건 유학 시절 기숙사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폴란드 타트라산을 가보자고 하면서였습니다. 타트라산맥이 자기 손바닥이라던 폴란드 남학생, 병역 의무를 마친 이란 남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크라쿠프 근처에서 야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산과 매우 다른 이국적인 돌산을 오르며 잊고 있던 등산 세포가 깨어났습니다. 처음엔 나에게 속도를 맞춰주겠다고 농하던 남학생들이 힘든 얼굴로 따라오곤 했으니까요. 추운 산장에 도착해 찬물로 샤워하고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등산하던 아침, 기분이 짜릿했습니다. 차가운 콧바람을 맞으며 뻐근한 다리, 불편한 발을 내디디면서 말이죠. 아쉽게도 베를린에서 제대로 등산하려면 남부 알프스나 옆 나라 타트라를 가야 하니 자주 할 수 없는 운동입니다.
달리기
조용한 남서부 달렘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친구들과 밤 조깅을 몇 번 했습니다. 단거리를 가볍게 뛰는 정도였고, 그조차도 함께 뛰자는 친구가 없으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코로나 시절, 조깅 열풍에 올라타 친구들과 운동 앱으로 기록을 공유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2km 남짓한 거리를 달리며 헐떡이던 수준이었죠. 조금씩 길이를 늘여가며 어느새 5km, 10km 이정표를 지났고 하프 마라톤을 뛰기도 했습니다. 소위 대회 '뽕'을 맞으면 평소보다 빠르게, 그리고 잘 달리게 됩니다. 때로는 비를 맞으며, 때로는 빙판길을 엉금엉금 오르며, 이런저런 대회도 참가해 3년 넘게 달리며 갱년기를 지난 것 같습니다. 달리기라는 고마운 취미 덕분에 증상 없이 넘어간 듯한데, 뒤늦게 고약한 갱년기가 올진 모르겠습니다.
스키
스키는 나에게 두 번 흑역사를 남겼습니다. 은빛 산악 풍경을 배경으로 멋진 고글을 쓰고 쌩하게 미끄러지는 이미지가 아니라요. 2박 3일 스키 초보 패키지여행에서 스키를 배우던 날 양손에 쥔 폴, 너무나 길쭉해 어떻게 발을 떼야할지 난감하던 스키, 천근만근 부츠를 신고 마치 우주비행사처럼 굼떴던 기억이 납니다. 우주비행사는 중력 없이 사뿐하기라도 하죠. 리프트에 올라타다 한쪽 폴도 부러뜨리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초보 코스를 마쳤습니다.
두 번째 시도는 스키 강사로 알바했던 친구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였습니다. 그냥 천천히, 내 속도로 즐기면 된다는 친구 말에 살짝 흥분 상태로 트랙에 섰습니다. 작은 규모 스키장엔 초보자 공간이 따로 없었고, 내 왼쪽 오른쪽으로 어른과 어린이들이 슝슝 지나다녔습니다. 알프스 아이들은 걸음마 떼면서 스키를 배웠나 싶습니다. 몇 번 찰지게 넘어진 후 빠르게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친구에게 나는 아름다운 전나무 산책로를 등산화로 걷겠노라고요! 홀가분하게 다시 평상복과 운동화로 갈아 신고 유유자적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스키라는 운동은 넘사벽으로 남았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소질 없는) 운동에 어떤 패턴이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됩니다.
스쿠버 다이빙
공기통을 매고 마스크를 쓰고 해저 15~20미터를 내려가 떠다니면 마치 명상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공기를 아껴두는 게 좋으니, 지상에서보다 느리고 고르게 호흡합니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고른 숨을 내쉬면 아무리 동료 다이버가 옆에 있어도 세상과 차단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눈앞에서 무심하게 일상을 보내는 물고기와 조개를 구경합니다. 1시간 정도 그렇게 떠다니다 휴식을 위해 압력이 점점 낮아지는 수면 위로 오르다 시야가 환해지는 순간이면 무사히 잠수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해저 생태계에 매료되면 다이빙만큼 중독성 있는 스포츠가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여러 해 다이빙을 했어도 18kg 실린더를 메고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만큼은 서늘하게 긴장했습니다. 물론 하강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요.
그러다 스노클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물고기와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우스피스를 잠시 빼고 발차기만으로 좀 더 깊이 내려가면 방금 사라진 물고기를 산호초 사이에서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연습이 좀 필요하지만요. 스노클링을 시작한 후부터는 잠수 장비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납 벨트와 조끼는 무겁고, 홍해의 40도 더위에 꽉 끼는 다이빙 슈트를 입고 벗는 일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딸에게 장비를 물려줄 수 있는 시기가 되자 흔쾌히 다이빙과 작별했습니다. 이제는 가볍게 스노클링, 마스크, 오리발만 끼고 첨벙 뛰어듭니다. 스노클링은 잔류 질소를 빼는 필수 휴식 시간에서도 자유로우니 무작정 들어갔다 내킬 때 나오면 됩니다. 여차하면 산소를 나누어 써야 할 버디도 필요 없죠.
그제야 깨닫습니다. 나는 '장비'와 친하지 않다고요. 운동은 좋아하지만, 무게나 부피, 복잡함으로 나를 압도하는 운동 장비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헬스장은 또 좋아하는 걸 보면, 내가 지거나 이거나 장착하고 몸을 움직여 이동해야 하는 운동은 별로인가 봅니다. 그래서 운동화 하나면 어디든, 언제든 뛸 수 있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등산화와 배낭이면 충분한 산을 좋아합니다. 그 이유가 기계치이자 장비치인 내 성향이란 사실을 오랜 시행착오로 알게 된 겁니다! 좋아 보이거나 신기한 운동을 따라가느라 내 몸 어디가 문제인지 살피고 긴장하던 나날인 거죠. 나는 장비나 기계에 약한 데, 왜 운동은 예외라 여겼을까요? 한국과 독일 운전면허 시험에 다 낙방한 무면허 (무늬만) 신여성입니다. 요리는 최소 도구로 간단하게 하길 좋아하고, 집에 새 가구나 물건이 생기는 걸 싫어합니다.
농담 삼아 우리는 생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몸과 근육을 움직인 후 그 쾌감과 활력으로 일상을 버팁니다. 이렇게 운동 취향으로 나를 좀 더 자세히 알아갑니다. 오래도록 독립적인 일상을 누리고 싶고, 느릿한 독일 의료 시스템에 최대한 늦게 의탁하려면, 아직 50인 지금부터 근육에 공을 들이고 뼈를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