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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ul 05. 2020

읽그 19.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

신소윤, 김지숙 / 다산북스

너는 유독 활발했다.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너는 자리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돌고, 손끝을 낚아채려는 듯 허공에 앞발을 쳐들었다. 네가 있었던 작은 유리 칸 안에는 너와 닮은 외모의 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있었지만, 그 누가 와도 너를 선택할 것 같았다. 너는 참 활발하고, 깜찍하고, 예뻤으니까. 매장 점원이 네가 밥도 참 잘 먹는다며 거들었고, 밥을 잘 먹고 이렇게 잘 뛰어논다면 아파서 마음 아플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너는 우리 가족과 13년을 함께 보냈다.


엄마의 껌딱지였던 너는 가끔 찾아오는 손님 같은 나를 반겨줬다.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을 때는 감히 너를 가까이로 데려올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어느 날 내 무릎 위에 네가 먼저 폴짝 올라와 똬리를 틀었을 때는 조금 놀랐다. 다리에 쥐가 나더라도 자세를 바꿀 수 없었다. 금세 퍼지는 온기가 좋기도 했지만, 그즈음 허리디스크가 심해진 네가 가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전혀 다른 개가 된 것처럼 앙칼지게 반응하곤 했기 때문이다. 꼼짝 않고 내려다보았던 네 등이 생각난다. 툭 불거진 뼈가 몹시 도드라져 보였다.


그전에도 여러 차례 수술을 했지만, 네 마지막 1년은 가장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즈음 나는 취준생이었다. 왜 바쁜지 모르면서 바쁘게 굴었고, 결국 네 마지막을 함께 지켜보지 못했다. 부모님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훌쩍 떠날 줄 몰랐지만, 왠지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느낌도 받았다. 화가 났고 아득했지만, 어쨌든 나는 네가 아파하는 동안 해준 것이 없었고, 많이 아파했던 네가 떠났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글썽거릴 때가 있었다. 그즈음 봤던 어떤 회사의 면접 자리였다. 면접관 앞에서 향후 몇 년 간 증강현실 기술 발전에 대해서 아는 척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네가 홀로그램으로 소파 언저리를 맴도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책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을 읽으면서 당연히 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번식장에서 태어나 경매장을 전전하다가 운이 좋으면 펫숍에 들어와 주인을 만나는 개들의 여정 속에서, 너는 운이 좋았던 ‘선택받은 개’였다. 운이 좋지 못한 강아지들은 사람 가족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어간다. 태어난 지 40~50일 만에 어미에게서 떨어져 경매장으로 가던 길에서, 더 뽀송뽀송한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경매장에서 시키는 생애 첫 목욕 속에서, 입찰을 기다리는 박스 속에서, 배부르게 먹거나 마음껏 걸을 수도 없는 펫숍의 유리 칸막이 속에서. 너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주 이곳저곳 아팠던 너를 생각하면서, 네가 우리를 만나기 전까지 겪었을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운이 좋았던’ 너조차도 참 힘들게 우리를 만나러 왔구나.


이 책을 쓴 용감한 기자들은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660만 마리 가량의 반려견 중 대다수가 이런 길을 걸어왔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들은 잠입 취재를 위해 관청에서 동물 판매업 허가증을 받고, 전국의 강아지 번식장 3곳과 반려동물 경매장 6곳을 찾았으며, 펫숍 2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수고를 감당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반인은 폐쇄적인 반려동물 산업 구조에 접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모견을 착취하는 번식장, 품종에 걸맞은 외모를 갖추었는지를 기준으로 개를 평가하면서 품종 개량을 부추기는 경매장, 그리고 강아지들의 출생과 유통 과정을 은폐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반려동물 산업의 사슬을 완성하는 펫숍. 저자들은 이 ‘번식장, 경매장, 펫숍’이 소위 블랙 트라이앵글이라고 말한다. 개들의 눈에 어린 절망과 체념을 목격하며, 전체 산업 구조의 문제점을 돌아본 그들은 외친다. ‘사지 마, 팔지 마, 버리지 마.’ 2018년 한국에서 새로 등록된 한국의 반려견은 14만 마리였다. 같은 기간 동안 동물보호센터에 등록된 유기견은 9만 마리에 달했다.


그리고 취재 동안 마주친 어려운 상황의 강아지들에게 총 3번 마음이 움직였다는 저자들의 고백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기억해낸다. 너와 같은 유리 칸막이에 있었던 같은 품종, 비슷한 외모의 강아지. 조용하고, 기운도 없어 보이고, 네 기세에 눌리기라도 한 듯 꼼짝 않고 있었던 검은 강아지. 너와 그 아이 중 선택해야 했던 나는 너를 품에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가게를 나서면서, 조금 찜찜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네가 떠난지도 참 오래되었다. 네가 없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던 날들은 뒤로 지나갔지만, 가끔 네 생각을 한다. 너를 만나고 난 뒤로 동물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다 네 이야기가 되니까. 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과 미안함을 앞으로도 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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