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엔 중국집이라며 함께 간 식당에서 짬뽕에 탕수육을 주문했다. 뽀얗게 몽글몽글 튀김옷을 입은 탕수육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나는 소복이 예쁘게 쌓인 탕수육 중에 하나를 끄집어 들었다. 순간 느꼈다.
'또 시작이구나.'
웃음이 나왔다. 저 먼 어린 시절에 내게는 조금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느낀 날이 있었다. ‘굳이’, ‘왜, 어렵게’라고 의문이 들게 하는 어떤 일, 어떤 행동을 할 때였다.
내 앞에 있는 툭 튀어나온 탕수육을 집으면 될 일인데, 굳이 안에 있는 녀석을 끄집어내는 고생을 하고 있었다. 김장을 도와드리던 어떤 날에는 어느샌가 몸을 일으켜서 조금 멀리에 있는 무를 집어와 엄마로부터 ‘힘들게 그렇게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은 정작 하는 동안엔 모른다. 조금은 어려운 길을 돌다가 가까운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했다. 그런 나를 안 다음부터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가치 판단보다는 그냥 다르게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내 앞에 놓인 것들을 먼저 보려고 의식적으로 나를 움직였다.
또, 무심코 어렵게 무엇을 찾아내는 내 행동만큼이나 내가 무심결에 갖고 있던 생각이 자유롭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다양한 것들을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고 그것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줄이고 자유로운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나는 음악이든 책이든 일이든 그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에 경계를 두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어느 정도 지날 때쯤이었다. 내가 듣는 여러 음악 중에는 인디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디음악을 듣는 내 취향이 언뜻 마이너 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살짝 어렵게 돌아오는 길이 내 취향이어서인지 마이너 하다는 느낌이 나도 모르게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찾아본 인디라는 장르는 어쩐지 낭만적인 느낌이었다. 창작자의 의도가 중시되는 비상업적인 음악이나 영화라는 것이었다. 전보다는 거의 모든 것이 풍부해진 요즘에 인디는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의 음악이 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마이너하고 인디스럽지만 자유롭고 아름다운 무엇이 되고 싶은 나.
어쩌면 우리는 각자 인디스러운 걸음을 걷고 인디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인디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린 모두 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