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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Y Jun 03. 2022

Il Postino, 우체부

시인과 촌놈

70km 밖에서 산불이 났는데, 도시 전체가 안개에 덮인 듯, 뿌옇고, 매캐한 연기에 콜록콜록 기침이 나는 날, 뉴스에서는 연신 야외활동을 줄이고 실내에 있으라는 주의사항이 방송되고 있었다. 하릴없이 밭을 한 번 휘둘러 보고는 들어와 벌렁 소파에 누웠다. 집에 있을 때 기본자세다. 식구들도 제각각 이유로 흩어져 홀로 고요한 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한 영화를 만났다. “Il Postino (1994), 우체부”라는 이탈리아 영화다. 1940년 대 후반, 실제로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망명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시인과 시인에게 팬레터를 나르는 우체부, 마리오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그 섬에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자신의 아버지처럼, 어부가 되기 싫었던 마리오는 겨우 용돈을 벌 수 있는 우체부가 되었다. 마리오는 그리로 망명한 네루다의 집을 오가며 편지를 배달하고, 사랑의 고민도 털어놓다가 네루다에게 시를 배운다. 가난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의식주의 기본만 반듯하게 존재하는 마리오의 환경은 중요한 영화의 배경이다. 노총각 마리오와 그의 아버지가 나누는 식사는 너무 간단하고 보잘것이 없었다. 오래된 그릇에 담긴 멀건 죽을 숟가락으로 떠 부지런히 입으로 옮기는 걸 보며, 음식 섭취의 오롯한 태곳적 목적만 남은 처연함을 느꼈다. 마리오의 침실도 잠이 오면 쓰러지는 곳, 마리오의 옷도 벌거벗을 수 없으니 걸치는 것. 그의 의식주는 원래의 목적만을, 어떤 살도 붙이지 않고 충실하고 견고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게 했다. 그가 특히 가난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후 유럽은 남루와 부족함의 시대였으니까. 의식주의 군더더기 없음 때문에 네루다가 특별해 보였고, 결국은 그의 시가 마리오에게 깊숙이 다가왔다. 시를 배우고자 했으나 마리오는 시가 되고 있었다.


마리오가 한눈에 반해버린 베아뜨리체는 어떠한가.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너도 알지?’ 하는 눈빛으로 그녀가 마리오를 쳐다보았을 때, 마리오는 이미 그녀의 것이었다. 베아뜨리체 역시 마리오의 순수함에 조금씩 젖어들었다. 베아뜨리체 옆에서 마리오의 어깨는 펴지고 점점 넓어졌다. 마리오에게 드리운 남루와 부족함이 아름다운 신부와 마침 신부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기로 인해 따뜻한 온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랑의 절정은 죽음으로 꺾였다.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저항의 시를 읽으려던 마리오는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


물질적 향유가 없는 그의 가난이 그를 오로지 사람에게 집중하게 했고, 겨우 문맹을 면한 그의 지성은 그의 시를 진실되게 했다. 시를 사랑하다 시가 된 마리오, 영화가 끝나도 마리오의 군더더기 없는 침실이, 그 바보 같은 웃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그 나름의 단호함이, 그의 헝클어진 머리가, 아름다움이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영화이지만, 의문의 일패는 네루다의 것이었다. 그토록 마리오가 그리워하는 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네루다는 사무적이고 건조한 편지를 비서를 통해 보냈을 뿐이다. 그 건조한 편지를 받아 들고도 마리오는 네루다의 우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우정에 못 미치는 건 자기였지 않았을까, 네루다를 감싸 안는다. 유명한 시인일 수는 있었지만, 결코 시가 되지 못한 네루다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를 쓰지만 시가 된 마리오. 네루다와 인연인 있는 이사벨 아옌데의 말을 빌어 글을 마친다: 모든 삶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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