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지 않더라도,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제자리 걷기도 아닌 뒤로만 가더라도, 주변의 모든 것이 짐처럼 무겁게 느껴져 숨이 막히더라도, 내가 먼지만큼 작고 하찮은 존재 같더라도,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거나 혹은 혼자이고 싶을 때에도.
법륜스님은 사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거라고. 사는 이유는 존재 그 자체라고. 그러니 왜 사는 지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그럼에도 나는 곱씹는다. 왜 살까.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도 일 년 후에도 어김없이 밀려오는 하루들을 견뎌내며 시간을 때워야 한다면,
삶이 주는 기쁨과 행복 보다 괴로움과 고통이 더 크다면, 왜 살아야 할까?
형벌 같은 시간들을 애써 살아내어 맞이하는 끝은 결국 죽음 아닌가.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의 작은 강아지에게는 내가 세상의 전부이지 않을까.
내가 없이도 그는 먹고 자고 놀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내가 필요하니까.
46kg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4kg의 강아지. 나도 네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저마다 작지만 소중한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가면서.
‘그럼에도’라고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