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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삶은 B와 D사이의 C

by 작은나무

나의 모든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님을 선택하고

성별을 선택하며 태어날 나라를 선택한 나라는 사람.


물론 이 앞선 선택들에 자의성은 없다.

타의성 즉, 주어진 선택인 것이다.

어쨌든 선택은 이루어졌다.


시간이 흘러 커가면서

타의성이 컸던 선택들이 점점 자의성을 띠고

<나라는 사람>의 선택으로 점철되자

그 선택들은 수많은 감정들을 배출해 낸다.


행복감, 다행스러움, 뿌듯함, 나에 대한 믿음

절망감, 다시없을 후회, 돌이키고 싶은 상처 등등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데

차라리 모든 선택지들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 밑그림을 그려놓고

걸어가는 길목마다 별 표 표시처럼

삶의 선택지들 앞에서 정답이 주어져있다면


100점이 정해진 채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면

과연 지금 만큼 삶은 흥미로울 수 있을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도화지에 지금처럼

매 순간순간 선택되는 혹은 선택하는

그 수많은 변동성 안에서 그려지는 지금 이 순간.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훨씬 더 생그럽다.


정답이 아닌

그 모든 그림들은

어떤 그림이든 유일한 모습으로 빛날 테니까.


내가 걷는 선택이라는

작은 발걸음 발걸음들이

무수하게 다른 모양들을 만들어 낼 테니까


그러니

지금 한 선택

지금 걸어져 버린 그 한 걸음에 묶여

동동거리며 뒤를 돌아보면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은 그만


차라리

무수한 걸음걸음을 내딛어

멈추어섰던 그 발자국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더 멋진 그림이 그려지길


이 한걸음

멈추어 많이 울어야 했던 이 한걸음 덕분에

이렇게 멋진 그림이 그려졌다고

고마워할 때까지


어쩔 수 없었던 선택과

이 선택에 대한 나의 걸음들을

멀리서 참 눈부시게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삶은

B와 D 사이의

너무나 아름다운 무수한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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