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통보받았다

어쩌면 이미 우린 결과를 알고 있다.

by 윤목

'이미 헤어져 버린 그 사람이 연락이 올까요?'


고민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 주를 이루는 고민상담은 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나는 한번 끝난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미 이별이 정해져버린 후에 재회를 생각한다면 그건 본인이 풀지 못한 미련의 보따리가 남아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는 괜히 상대가 연락을 혹여나 주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도 또다시 같은 이유로 헤어짐을 겪는 것은 아닐지 지레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정작 재회는커녕 완벽한 이별을 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슬프게도 상담을 하다 보면 결국엔 본인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화두로 하여 계속 꼬리 무는 내담자들이 더러 있다. 그리고 늘 화두는 같다.


"이 사람은 좀 달라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연인에게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그러나 이별을 겪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나간 사랑은 여느 사람과 같이 특별하다 생각했을 뿐 지나간 사랑들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늘 같은 전개, 늘 같은 결말. 드라마도 이렇게 재미없는 드라마가 있을까. 똑같은 스토리이지만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상태 혹은 우리네 마음을 이내 다 펼치지 못한 경우에는 여전히 특별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우린 알아야 한다. 이별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이별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말이다. 물론 간혹 이별의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내담자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정말 미쳐버릴 만큼 보고 싶은데 연락해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


솔직히 조금 억울할 법도 하다. 이유도 모르는 이별이니까. 다시 만나 내가 뭘 그리 잘 못 했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개인적으로 헤어짐에 최악의 헤어짐은 이유 없는 헤어짐에 대한 통보다. 이별에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지만 적어도 서로 간의 대화에서 이별의 이유가 가늠이 되기라도 하지만. 서로 맞추어 보려는 과정도 없이 냅다 던지는 이별의 통보는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음이 느껴진다. 본인은 '헤어짐'이라는 단어를 내뱉기 전에 스스로 그간 관계에 대해 이미 다 갈무리를 하고 사랑을 사랑놀음으로 바꾸는 과정을 차분히 다 준비했을 테니까. 상대에게 언지 한 번 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이유 없는 헤어짐에 대한 통보는 대부분 '질려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스스로가 뭔가를 맞춰가기도 맞춰달라고 말하기도 싫은 그 질림. 그럼 대체 무엇이 그를 그리 질리게 만들었을까. 그건 당사자들 만이 알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다.


이 고민에 대한 나는 답을 섣불리 내려 주고 싶지는 않았다. 대화를 하며 스스로가 깨달아 갔으면 좋을 성싶었다. 그래서 살포시 그동안의 연애는 행복했는지 존중을 받으며 연애를 했는지 등을 물었다. 상대의 남자는 늘 그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 남자는 가르치려는 성향이 있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는 그녀에게 충실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남자가 대기업에 취업하게 되어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사건이 좀 있었다. 그 남자는 왜 때문인지 거기서 만난 오랜 친구와 유난히 친하게 연락하며 지냈고 몇 달 후에는 소개팅 어플도 가입했더랬다. 본인이 차 버려도 모자랄 판에 이유 모를 이별을 통보받고도 모든 것을 감내하고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안쓰러웠다.


차분히 듣고 있다 보니 과거 나의 연애와 겹쳐 보였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대 그리고 늘 순수하게 좋고 착한 사람이고 싶어서 의견을 피력하기보단 순응을 선택했던 과거. 그리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과 주변의 분위기가 쟃빛의 색을 띄우게 만들었던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비참하고도 미련했던 과거가 말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내담 중인 그녀도 그랬다.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이지 못해서 그랬다고. 그럼에도 남자는 늘 본인이 원하는 것만 이야기했지만 별 탈없이 넘어가고 싶어 본인이 순응한 거라고. 그 역시 본인이 선택한 거라 좋다고.


그 남자가 받아 줄 것 같지도 않지만 배려 없는 헤어짐은 똑같이 이어질 것이었다. 그것도 여자 쪽에서 매달린다면 더구나. 그녀의 주변에서는 한 달 정도 있으면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했다.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나는 가감 없이 말했다. 그렇게 존중받지 못한 연애를 다시 하고 싶냐고. 그저 착하고 싶어서 해야 할 말 하고 싶었던 생각 다 머릿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 둔다고 해서 그 이야기들이 스스로를 얽매거나 답답하게 하는 게 힘들지 않았냐며 말이다. 그러며 되려 물었다.


"언젠가는 또 헤어짐을 통보받을 텐데 괜찮겠어요? 그렇게 존중받지 못하더라도? 지금 당장 힘든거지만 몇 달만 눈 딱 감고 본인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해 보아요. 그러면 그 남자든 혹은 다른 사람이든 더 사랑받을 거예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받을 수도 없으니까. 속 시원하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맞아요. 사실 저도 또 만나도 헤어짐을 통보받을 거 같아요. 그간 저를 돌보는 대신 감정에만 너무 치우쳤었던 거 같아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노력을 해 볼게요."


결국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었다. 알고 있는 결과로 가지 않아서. 세상에 결과를 예상한다고 해서 다 같은 결과로 가지는 않는다. 전제는 관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 끝난 후의 노력은 더더욱 부질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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