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살피는 것
‘카톡’
한참 수업 중이라 조용했던 시간. 고요와 적막 속에 아이들의 첫 숙제 검사를 하던 강의실 안에 근엄하고 진지함을 날려버릴 귀여운 알람이 울렸다. 알 수 없는 피자 사진과 함께 사랑스러울 한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아침부터 면접 본다고 빈속으로 집을 나선 내가 무던히도 걱정되었던 것 이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살핌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수업 중에 바로 답은 못했지만 아이들의 숙제를 훑어보는 나의 마음의 온도는 충분히 따스해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의 글이 예뻐 보였던 것 일지도.
타인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눈치 싸움 이리라. 그 눈치 싸움은 관계에 따라 두 가지로 발전한다. 배려 없는 보다 이기적인 관계에선 장단 맞춤으로. 배려 가득한 사랑의 관계에선 서로에 대한 살핌으로 말이다.
관계 초반의 눈치 싸움이 장단 맞춤으로 느껴지는 순간 충분히 약삭빠른 우리는 알아챘을 것이다. 상대에 장단을 맞춘다는 생각은 이미 더 이상 사랑이 아닌 철저하게 본인을 을이라 생각한다는 것 혹 은상대를 위해 배려하는 척을 하고 있음 을. 그리고 이미 마음이 그렇게 느껴져 버린 까닭에 관계의 개선에는 크나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어쩌면 더 나아질 수도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렇다고 슬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멀어진다고 해도 이상하게 전혀 슬프지 않았다. 서로 이기적이라고 삿대질을 하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장단 맞춤의 행위를 후회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를 사랑하려 했다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모든 노력을 한 듯 나의 장단에 맞춰주지 못하는 상대들을 탓하자 마음먹었다.
연달아 장단 맞추는 인연을 되풀이하며 원래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감이 힘든 것인가에 대한 회한이 삶에 어려질 때 즈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기회는 찾아왔다.
누군가와 살피며 살아간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서로를 살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고 대가나 나에게 돌아올 것을 염두해 두는 의미가 아니니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니, 단 하나의 조건이 붙는 다면 상대가 부디 안녕했으면 하는 그 바람이지 않을까.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순간,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등 눈치 싸움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알아챘다. 나의 눈치 싸움이 장단 맞춤이 아닌 살피는 행위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체력도 유독 약하고 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그녀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거리들을 찾았다. 스스로의 몸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평안을 주려는 그런 세상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한다면 평안 보단 관계에 대한 불안을 선사하리라. 까닭에 나는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것들을 그리고 하고자 했던 것들을 천천히 해 나가기로 했다. 거기서 시작해야만 했다. 앞으로 함께 하려면 스스로가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여보세요?"
"..."
분명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그녀가 일이 끝난 후 통화를 하는 동안 말이 없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일이 끝났는데 조금 쉬었다가 집에 가야겠노라 겨우 뱉어 내었다. 그렇게 이십 분, 삼십 분 나 역시 멍하니 카톡의 1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이삽십여분의 시간이 지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가지 않으면 정말 힘들어할 것 같다'
순간 이 생각이 머리에 번뜩였다. 이렇게 힘든 날 마음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몸만은 편했으면 좋을 성싶은 생각이 들어 급하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내내 나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조급함이 가득했다. 홀로 우울해하고 있을 생각을 하고 있자니 교차로마다 걸리는 신호등이 그렇게 고까워 보일 수가 없었다. 마음이 더해가면 더해 갈수록 나의 시간은 천천히 가는 듯하여 더더욱 길을 재촉하는 수밖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층이야'
카톡을 확인한 그녀가 황급히 내려왔다. 안 와도 되는데 피곤할 텐데 되려 묻는 모습을 보며. 본인이 힘들어도 나를 살피는 모습에. 나 역시 살피러 왔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괜찮다는 한마디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