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 할머니
"이번 역은 신논현, 신논현 역입니다."
아이들의 문법과 어휘력을 위한 교재를 사러 가는 길. 익숙한 게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다른 여타 서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다른 서점을 들어가지 않는 습관이 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계산대의 점원, 도서 정리하는 직원, 경비하는 아저씨. 어쩌면 매일 같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고 있을 그들이지만, 그들에게 나는 눈짓 한 번으로 스쳐 지나갈 여느 누구와 같은 손님들이었을 테다. 그러니 난 늘 처음 오는 손님처럼 단골 서점을 방문할 뿐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강남 교보를 가기 위한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생긴 버릇은 체육복만 입은 아이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저 아이는 국어를 어떻게 공부하려나. 국어 공부는 잘하는 건가?'
그날도 그랬다. 청록색의 체육복을 입은 아이가 지나가는 순간, 고등학생인지 아니 그리 보이는 얼굴은 아니니 기껏해야 중1~2 정도일 거라 추측하며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국어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까. 평소에 어떻게 국어를 공부할고 있으려나. 가는 방향은 분명 나와 같은데 자습서를 사러 왔을까. 홀로 독학하는 아이일까. 속으로 연신 질문을 해대며 눈알을 굴렸다.
관찰과 탐구의 경계에서 그 아이를 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걸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더니 그 아이의 옆에 섰다. 그리고 아이는 가만히 그 손을 잡았다. 빠글빠글한 파마, 베이지색의 체크무늬 코트, 키는 아이만 했지만 뒷모습에는 세월의 단단함이 가득 배어있는 모습의 할머니였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잡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나는 우리 할머니랑 저리 다정한 적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많이 탔다. 손을 많이 탔다는 뜻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만큼 많이 예뻐해 주셨다는 의미지 내가 무척 좋아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기분 좋은 얼굴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진정으로 웃었던 기억은 나에게 군것질 거리를 사 먹으라고 용돈 주실 때 정도였다. 할아버지 못지않게 아껴주던 할머니는 늘 나에게 얼굴을 비비고 뽀뽀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조부모와 손자 간의 사랑은 결코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이야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서 알아가는 관계이니 만큼 동등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가족 간의 사랑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싫어도 받아야 하는 사랑. 받을 땐 사랑인 줄 모르는 사랑.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할머니의 걱정 어린 말은 물론 애정 가득한 포옹이나 뽀뽀를 싫어했다. 간혹 할머니가 집에 와서 같은 방에서 잘 때면 더더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름진 것이 너무 싫었다. 오죽했으면 나는 60살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목표를 마음속으로 정해두기 까지 했었다. 주름진 나의 얼굴이 너무 혐오스러울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거리를 두었다. 주름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 어쩔 수 없이 몸에서 풍기는 노인의 향기 등이 그 이유였다. 어쩔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자연스러운 것들을 거부했고, 세월의 무게를 알기엔 철이 없었다.
"오래 살아 할머니"
할머니에게 건넨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의 인사말은 멀지 않은 사이라 믿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30이 지나서야 할머니와 몇 년 만에 진한 포옹을 했다. 그제서야 여리디 여려진 할머니의 몸을 체감했다. 늘 말짱하고 꼿꼿하게 걸어 다니는 것 같은 할머니였기에 여전히 건강하시구나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내가 안아본 할머니의 몸은 점점 속이 가벼워지는 중이었다.
그날 강남 교보문고를 가는 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몰래 찍어둔 그 사진을 꺼내 볼 때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나의 할머니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어린날의 나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가 공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봤었던 시의 제목이 떠오른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