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져 있다

30대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8

by 윤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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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뭐 입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날들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반복된 일상 중의 하루가 될 것이 뻔한데 말이다. 누가 보면 굉장히 삶이 무료한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는 여지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삶은 결코 무료하지 않은 편이라는 것은 TMI이지만 꼭 적어 두겠다. 어쩌면 이 적어둔다는 것 자체가 무료하다는 것의 반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오늘 들었던 장항준 감독의 한마디를 빌려본다. "사람이니까!"


칩거의 생활에서 벗어난 지 약 3개월째, 거의 고독사에 이르러도 아무도 모를 만큼 10평 남짓의 방 안에서 우울과 무기력의 나날을 보내던 내가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이젠 대중교통도 곧잘 타고 다닌다. 네이버 지도를 통해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낯설던 출퇴근이 이제는 익숙해져 반복되고 있다. 집에서 지하철이 몇 분이나 걸리는지, 지하철이 몇 분에 오는지 반복학습이 아니고서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이 반복되어 삶에 잔잔한 운율감을 형성한다. 그러니 나의 삶은 무료하다의 단어보단 잔잔함 속의 리듬감이 있다는 표현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칩거의 생활로 인해 집에만 있을 때에는 잠옷과 운동복이면 하루를 나기에 충분했다. 한 주, 두 주, 한 달 그 이상의 시간을 단벌까지는 아니지만 몇 벌의 옷을 갈아 입고 지냈다. 빨고 말리고 입고 빨고 말리고 입기를 반복. 그러다 보니 옷장을 열어보는 행위는 나에게 사치와도 같은 행위였다. 그런데 웬걸 바깥 생활을 하면서부터 점점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은 역시나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을 체감했고 자꾸 길에 다니는 사람들의 예쁜 옷차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쁜 옷을 입은 사람이 있다면 후줄근한 옷을 입은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누군가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 다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자꾸만 나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 정도는 아니겠지 설마...', '옷이 참 예쁘네...' 같은 생각들이 타인과 비교할 거리를 찾는 나의 눈동자와 함께 요리조리 굴러 다녔다. 운동복 같은 슬랙스에 반팔티 하나, 그리고 어깨에 걸친 얄따란 카디건이라는 구성만 보면 타인들과 다를 것 없지만 옷의 색이 마음에 유독 마음에 차지 않는다. 검정 바지, 검정 티셔츠, 검정 가방....


이런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자주 든다. '사람이니까'


결국 집에 돌아와 옷장을 살포시 열어보았다. 이곳이 어둠 속인지 빛이 들어오는 곳인지 모를 정도로 온통 검정과 차콜의 향연이다. 분명 바깥세상은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한데 나의 옷장은 오롯하게 흑과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앙다물고 있던 입술의 끝이 아래로 쳐졌다. 씁쓸함. 잠시 폰을 들고 어떤 색의 옷으로 옷장을 채우면 조금 기분이 나아질까 온라인 쇼핑을 시도했다. 쉴 새 없는 손은 쇼핑 창을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현실과 최대한 비슷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수백 벌의 옷을 입혀보며 어울릴 것 같은 수십 장의 룩북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빛깔이 가득한 옷으로 옷장을 채우려던 나의 목적은 내가 입어도 예쁠 색의 옷들을 찾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상상 속의 수십 장의 룩북을 검토한 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나의 장바구니에는 7벌의 옷이 담겨 있었다. 각고의 고민 끝에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데자뷰'


분명 어디선가 봤다 이 장면. 심지어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의 설렘이라는 이 순간의 감정까지도 같아 익숙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 비록 지금 입고 있는 옷과는 다른 옷을 입었고 살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많았었지만 확실한 것은 형형색색의 옷을 사며 예쁘게 입을 마음에 들떠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억.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설렘 가득한 스스로의 모습이 또다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1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렇게 누르려던 주문하기 버튼에서 손을 떼어 내었다. 커닝하다 걸린 시험지의 증거를 없애듯 황급히 장바구니의 목록들을 지웠다. 그리고는 매년 가을쯤이면 쇼핑 벽이 돋았던 십여 번의 스스로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연거푸 한숨을 쉬어댔다. 그 결과들은 어땠었나. 잠시 옷장을 화려히 만들어 주었을 뿐, 채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헌 옷 수거함으로 들어가 지금의 흑과 회색빛의 옷장만이 그대로인 지금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 아무리 비싸고 보기에 예쁜 형형색색의 옷들이라 한들 스스로가 거부하는 옷들은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나에겐 필요하지 않은 옷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잠시 사람이라 타인의 취향들이 탐났던 것일 뿐.


탐욕스러웠던 스스로를 뒤로하고 잠시 소파에 누워 상념에 잠기기 시작했다. 작게는 옷, 키보드, 영화, 드라마부터 크게는 집, 일 그리고 사람까지 타인들과 비교하며 했던 모든 것들은 지속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지속하는 것은 글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없었던 것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 남의 삶에서 따다가 내 삶에 붙여보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심지가 곧지 못한 얇상한 초처럼 한창을 불태우다 불길이 중간에서 끊어져 버리곤 했었던 과거는 결국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좇음에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필요 없음을 좇다 보면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인생 1 회차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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