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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Mar 10. 2023

편집장의 잡담

2023 봄호 '건축과 커피' 수록


특별한 냄새로 기억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닷가의 소금기, 비에 젖은 숲의 흙내음처럼 강렬한 향기는 때로 상상만으로도 내가 서 있는 장소를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보통은 그 장소와 냄새를 떼놓을 수 없지만, 좀 다른 때도 있어요. 커피가 그렇습니다. 고유의 그윽한 향을 갖고 있지만 저마다 커피 냄새를 통해 떠올리는 공간, 혹은 장면엔 커피 원두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습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안락의자가 있는 카페를 떠올립니다. 자주 가던 카페와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음악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너무 오래 했다면 오히려 커피 냄새를 찌든 내에 가깝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머신 앞에 서서 쉴 새 없이 원두 가루를 휘날리던 기억이 떠오를지도요. 어떤 이는 밤을 새우며 비우던 여러 캔의 인스턴트커피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에게 카페인은 자신을 재우지 않는 영양소일 뿐이고, 커피의 향은 그 양분을 찾아 이끄는 단서에 불과하겠죠. 홀로 불 켜진 책상에 앉아 외로이 머그잔을 비우는 누군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조용히 이 순간을 음미하는 사람에겐 다른 어떤 경험보다도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겠습니다.


종종 중독적인 무언가에 '아직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과, 앞으로 평생 즐길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라는 설명을 붙이는 걸 퍽 매력적으로 느낍니다. 아마 집합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각설하고, 관습적으로 건축을 물리적인 실체로만 다루던 버릇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감각을 도입하는 과정은 우리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 건축물을 그림과 숫자가 아닌 것으로만 묘사해본 경험이 없다면 한 번쯤 권해봅니다. 전혀 고려해본 적 없는 방법으로 건축을 체험해보세요. 아무도 설명해준 적 없는 면을 찾아보세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하게 될 겁니다.


'건축과 커피'에는 저마다 커피를 통해 떠올린 건축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잡담러' 들이 커피를 즐기는 방법을 엿보면서, 여러분도 머그잔 속에 나름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23 봄호 '건축과 커피' Intro, 편집장의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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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프로잡담러 T | 김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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