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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pr 18. 2023

사진잡담

14호_건축과 설레임_일상잡담

작성 : 프로잡담러 I

게재 : Vol.14 건축과 설레임, 2021년 봄

 


학생 시절 친구들에게 '살고 싶은 집'을 물으면 반 이상은 바닷가의 집을 말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내 희망은 특별히 또렷한 편이었다. 제주도의 익숙한 바닷가에 집을 짓고 바다 방향으로 통창을 내어 그 앞의 책상에서 글을 쓰며 지낼 거야. 윤슬이 너무 눈부시지 않게 창에 맺히고, 해가 기울 때는 수평선으로부터 책상까지 빛줄기가 이어질 거야. 불을 전부 끄고 밤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단상에 묻힐 거야. 나의 희망은 주로 그런 그림들에 대한 것이었다. 정작 그곳에 살던 때에는 사면을 둘러싼 바다가 무섭기만 했는데, 머리가 굵어지고 나니 날로 환상만 커지는 모양이다.


바다는 시각보다는 후각, 그리고 그런 감각들보다는 생활 방식에 대한 변수였다. 바다를 면한 도시에 산다는 것은 도시 어느 곳에서도 습하고 소금기가 있는 바람이 불어온다는 뜻이다. 도로 옆에 가로수로 야자나무가 늘어서 있다는 뜻이다. 건물의 윤곽선이 수평선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2020년 1월 다낭의 겨울바람을 맞던 저녁에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묵던 숙소에서는 차를 타고 10분쯤 나가면 바다에 갈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내킬 때 해변으로 저녁 산책을 나갈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그 사실은 도시 전체에 '휴양지의' 분위기를 부여한다. 관광업에 직접 관련하지 않은 건물이라도 바다의 존재만으로도 일말의 영향을 받는다. 해변에는 카페들이 늘어서 있고 상가의 삼면은 폴딩 도어로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언젠가는 전부 동시에 열어젖혀 밤새 불을 밝힐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풍경이다. 공간의 수요가 분위기를 만들고, 분위기가 건축물을 만든다. 전후 관계는 아무래도 좋다. 우리에게는 '바다 보러 가자'고 말할 만한 근교의 도시가 필요하다.



  


WRITTEN BY

프로잡담러 I |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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