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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담 Aug 08. 2023

별과 심연을 향하여!

15호_건축과 방학_일상잡담

일상이 지칠 때, 삶에 자극이 필요할 때,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가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번 연휴에는 저기로 떠나야지 하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긴 준비 기간과 경제적 부담, 그리고 강한 결단을 요구하는 법.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는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혹은 책상에 앉아서 게임의 인스턴트한 즐거움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잊곤 한다.


퍼즐, 시뮬레이션, 아케이드 등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장르는 모험하는 게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아제로스, 파이널판타지의 에오르제아, 로스트아크의 아크라시아, 포켓몬스터의 신오지방, 그리고 수많은 모험의 세계들… 광활한 세계를 모험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항상 매력적이다.


스토리를 따라 세계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새로운 동료를 만들고, 곳곳에 숨은 퍼즐을 푸는 등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오픈 월드의 비중이 늘어난 최근엔 게임 속 풍경을 감상하고 세계를 탐험하는 것 역시 하나의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원신의 세계인 티바트 대륙 자체를 콘텐츠로 그 속에 담긴 건축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주 전형적인 중세 판타지의 모습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축 양식들의 세세한 특징들이 잘 표현된 몬드의 건물들을 통해 독일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티바트 대륙과 몬드


티바트 대륙은 원신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대륙이다. 일곱 신이 각각 다스리는 일곱 나라는 저마다의 분위기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뽐낸다. 아직 나머지 나라들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세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몬드와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리월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고, 건축 양식도 그에 맞춰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게임 내에 존재하는 가상의 국가인 만큼 정확하게 어느 지역의 양식을 가져왔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각각 핵심이 되는 국가들이 있어서 나름 일관된 양식이 나타난다. 오늘은 여러 나라 중에서도 특별히 몬드의 건축과 관련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사진: 몬드성 전경


바람과 자유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몬드는 한눈에 봐도 중세 유럽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없지만, 몬드의 영어식 표기가 달의 도시를 뜻하는 독일어 Mondstadt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몬드의 주요 모티브는 아마 독일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고딕 양식의 몬드 대성당, 중세 유럽 주택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몬드 성, 그리고 기타 유적들... 몬드에는 건축과 관련해서 재밌게 이야기할 만한 요소들이 많은데, 바람과 자유의 도시 몬드의 건축물들을 통해 유럽 건축의 이야기를 짧게 해보자. 


사진: 몬드 대성당


몬드 대성당과 고딕 양식.


몬드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시에 몬드 성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몬드 대성당은 고딕 성당 건축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고딕 건축이 성행하던 당시 기독교인들은 더 높고 더 웅장한 건물을 통해 신성함을 드러내고자 했고, 동시에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결국 첨두아치, 플라잉 버트레스, 리브 볼트를 포함해 오늘날 고딕 양식의 특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떻게 하면 이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기술이 총집합 된 결과였다.


중세, 혹은 이전의 성당 건축은 대부분 석재를 사용해서 이루어졌으므로, 고층 석재 구조물을 짓기 위해서는 석재의 무게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언제나 중요한 과제였다. 석재의 하중을 견디기 위한 대안으로 언제나 유용했던 것은 아치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사진: 바람드래곤 페허


고딕 양식의 성당이 등장하기 이전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에서는 보통 원형 아치가 사용되었다. 게임에서도 이 사실을 반영하듯, 몬드 성이 지어지기 이전의 몬드 지역 고대 유적에서는 첨두아치 대신 원형 아치가 사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원형 아치로는 힘의 분산만이 가능했고, 아치 자체의 높이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건물의 전체 높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벽, 기둥이 모두 함께 높아져야만 했다.


첨두아치는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주었다. 기둥을 높이지 않고 아치의 높이를 높여도 힘의 분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의 호를 이용하는 원형 아치가 두 개의 호를 이용하는 첨두아치로 대체되면서 더 이상 벽은 이전처럼 두꺼워질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두꺼워질 필요가 없다 해서 얇아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수직으로 들어오는 힘을 옆으로 분산시키는 아치의 특성상 벽이 얇으면 벽이 붕괴하는 것이다.


사진 눈에 묻힌 도시◦고궁


사진: 천풍신전


이는 버트레스라고 하는 구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버팀벽인데, 아치가 좌우로 분산한 힘을 지탱해주는 벽이다. 버트레스를 세우게 되면 건물 양옆으로 큰 벽이 생기게 되는데, 이는 재료를 더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경제적이었고, 창을 가리게 되므로 채광에도 불리했다.


벽을 지탱하기 위해 버트레스는 필요했고, 벽을 세우는 것은 불필요했으므로, 이 요구를 충족한 구조가 바로 플라잉 버트레스이다. 버트레스를 벽에 붙여서 만들지 않고 띄우고(flying) 하중이 몰리는 지점만 지탱해주면서 얇은 벽과 충분한 채광 모두를 만족할 수 있었다.


사진: 몬드 대성당


외부에서 플라잉 버트레스가 벽의 지지를 통해 얇은 벽을 만드는 동안, 내부에서는 리브 볼트가 얇은 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볼트라고 하는 것은 아치를 확장해서 만든 천장을 가리킨다. 가장 단순한 형태인 배럴 볼트는 터널처럼 아치를 길게 만든 방법이었다. 당연히 무거운 천장 두께 때문에 하중이 많이 나왔고, 이를 개선하면서 교차 볼트가 등장했다. 배럴 볼트 두 개를 교차한 형태의 교차 볼트는 하중이 실리는 지점을 모아서 기둥이 하중이 모이는 지점만 지탱하도록 하여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어냈다.


교차볼트의 천장은 여전히 두꺼웠고, 무거웠다. 그 결과, 교차볼트에서 더 발전한 형태의 볼트인 리브 볼트가 등장하게 되었다. 고딕의 대표 요소 중 하나인 리브 볼트는 뼈대에 해당하는 리브를 먼저 벽돌이나 콘크리트 등으로 만들고 그 위를 얇은 천장으로 덮는 형태였다. 아치를 이용해서 천장을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아치로 만든 뼈대 위에 천장은 얹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예전처럼 두꺼운 천장은 필요 없어졌고, 천장의 하중이 줄어들게 되었다.


성경을 읽어야 했던 성당에서 채광은 중요한 요소였다. 벽이 얇아지고, 벽이 지탱해야 하는 천장의 무게가 줄어들면서 거대한 창으로 채광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창을 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것일 뿐, 그만한 공간을 유리로 채우는 기술은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작은 여러 개의 유리판을 이어붙이는 기술로 넓은 공간을 모두 채웠다.


이때 프레임에 무늬를 넣고, 유리에 색을 넣어서 만든 것이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내부로 빛을 받아들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이미지화했으므로 글을 모르는 대중도 성경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사진: 몬드 대성당



몬드와 유럽 전통 건축 양식


사진: 다운 와이너리


장엄함을 뽐내는 석조 건물들은 아름답지만, 그에 못지않게 몬드의 붉은 지붕 주택은 정말 아름답다. 이미 수많은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에서 배경으로 사용되는 붉은 지붕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유럽 전통 건축 양식이다.


유럽 중세 주택의 아름다움은 붉은 지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붉은 지붕과 대비되는 하얀 벽, 하얀 벽과 대비되는 진한 색의 나무의 골조 역시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목제 기둥이나 들보를 밖으로 노출하고 골조의 사이를 흙, 회벽, 벽돌 등으로 채우는 중목 구조의 일종인 하프 팀버 구조는 서양 전통 가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6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건축 방식이었다.


운송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였던 중세는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서 지었으므로 집을 건축하는 데 대부분은 목재구조를 사용했었다. 특히 영국처럼 석재가 부족했던 지역에서 이런 목구조 방식은 크게 선호되었으며, 영국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half-timber frame 건물을 선호했었다.


여담이지만, 하프팀버라는 명칭은 원래는 Timber (목재) 구조였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목재를 절반을 나누면서 Half-Timber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같은 하프팀버 구조라도 조금씩 나라별로 다른 양상이 나타났는데, 목재의 노출이 많았던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 나무에 무늬를 새기는 장식이 함께 발달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독일의 하프팀버 구조는 상대적으로 밋밋한 무늬를 띤다.


일부 주택에서는 위층이 아래층보다 돌출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거리 방향으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 당시의 법을 반영해서 생겨난 구조인데, 법의 적용을 받는 아래층은 면적을 줄이고, 세금이 부과되지 않은 위층은 공간확보를 위해 넓히는 과정에서 생긴 결과다.



친애하는 독자님들께, 그리고 행자님들께.


글을 읽기 전에 판타지적이고 비현실적인 장소를 기대했다가 실망하신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티바트 대륙을 탐험할지도 모르는 여행자들을 위해 나는 미지의 장막을 여러분 앞에서 걷을 수 없었다. 모험의 공간은 직접 만나야 설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티바트 대륙은 정말 아름다운 세계다. 모험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는지 셀 수도 없다. 이 언덕을 넘으면 어떤 풍경이 있을까, 저 유적 아래에는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험을 한다. 중세 유럽풍의 몬드에서 나와 고대 중국풍의 리월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게임 속 공간이 주는 느낌은 현실의 공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다. 눈으로 직접 장소를 경험하는 것에는 물론 미치지 못하지만, 사진과 동영상보다 생생한 느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상력의 공간. 그런 면에서는 나름의 의미는 있는 것 같다. 



도판출처

사진 1, 2 : 원신

사진 3,4,5,6,7,8,9 : 직접 촬영 (게임 원신 스크린 샷)

그림 : 프로잡담러 P(PSJ) 작업


  

  


게재 : Vol.15 건축과 방학, 2021년 여름

작성 : 프로잡담러 Q | S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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