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덧붙여 문장을 만들고 문장의 의미가 모여 이야깃거리를 만들 때, 단어의 의미만 나열하지 않고 잘려나가거나 가쁜 숨소리로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때로는 사유도 잘려나간 의미가 되거나, 의미에 뿔을 달아 애먼 소리를 더하게 될 때 나는 잘못 쓰고 있는지 모른다. 간결하게 말하고 앞뒤가 바뀐 어휘를 제멋대로 줄 세우지 않을 때 씀은 편안해진다.
흐르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때로는 차례가 있고 순서가 있어, 단순한 의미라도 너에게나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면 좋겠다. 순서를 정하고 차례를 기다려 물처럼 흐르게 하고 싶다.
두서없이 말하면 읽는 순서가 어색해지고 의미가 전도된다.
말하듯 쓰고 싶고 느낌대로 표현하고 싶지만, 고스톱의 남아 있는 동전처럼 수가 적을 때 오그라진 마음으로
잘못된 패를 꺼내 놓는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우산이 필요할 때 우산 없이 길을 나서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우산을 개념에 두지 못해서 비를 맞는 것이지
우산의 생김새를 잊어서가 아니다. 오늘도 비 오는 길가에 우산 없이 나서고 있다.
살아온 인생의 불편함을 한 장 찢어내고 싶지만 맞물려 있는 다른 장이 함께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소리 내서 페이지의 순서를 어긋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을 떼어내면 맞물려 있는 다른 곳의 고통과 오래 기억된 사람의 이름도 잘려 나가는 아픔과 고통을 견딜만한 자신도 없다.
생각이 미미한 치명적인 단점을 애써 채우려는 노력이야 말로 처연한 슬픔과 같다. 그 기억은 삶의 첫 장이라서 손댈 수 없었다. 부정하는 것이 표정만 다를 뿐 길게 연결된 인생이라 쉽지 않은 것이다
쓴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에너지는 정해진 법칙에 따라 그 자리를 온전하게 채워줄 때 움직임이 가능하다. 온전하게 씀에 마음을 다할 때 읽는 것도 가치가 있다.
왜 읽으려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때도 있다. 하지만 씀을 마음에 두고 있어도 고갈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기 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고 함께 동행하는 벗이 되어야 한다.
마음에 품은 책을 읽은 후에는 책 앓이를 한다. 작가의 말투와 글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다른 책을 외면하기도 한다. 생각하는 방식과 쓰는 투도 닮아 갈 때도 있다.
편애하는 습성도 한몫하거니와 자신의 우월감이 빗어내는 작은 오만의 편린 일 수도 있다.
어제까지 좋아했던 책을 읽을 때 눈에 담기지 않으면 마음이 분주하거나, 생각이 넘치거나, 작가가 힘든 모습이 보이거나, 내가 힘들어서 한없이 비루해진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한 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새로워지고 싶었다. 두고 온 것을 그리워하면서 변명 없기를 바랐다. 그 위에 덧칠하는 노력이 마지막 내게 남은 기쁨이기를 기원해 본다.
<글쓰기는 상처를 드러내는 가장 저렴하고 접근하기 좋은 방편이다> [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63p]
감성에세이로 올리지 못해서 다시 올립니다 ( 옳은 방법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