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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은둔자 Aug 19. 2017

프랑스와 독일 국무회의 장소 비교

300년 전통의 궁과 첨단 현대 건축, 각 공간에 담긴 국정운영의 색깔?

프랑스와 독일이 1992년 ARTE(유럽텔레비전협회의 약어)라는 방송 채널을 만들어서, 함께 방송을 만들고  불어와 독어로 방송을 내보낸다. 그중 2004년에 만들어진 방송 중에 Karambolage(카람볼라쥬)라는 것이 있다. Karambolage의 의미는 당구에서 한 번에 두 개의 공을 동시에 맞추는 것, 교통에서는 연쇄충돌 정도의 의미다. 즉, 하나의 방송으로 프랑스와 독일 두 개를 한꺼번에 다루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느 날 프랑스와 독일의 국무회의 장소를 비교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두 나라의 성향을 일면 극명하게 비교하여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앞서 얘기했던 엘리제궁에서 매주 수요일 10시에 '뮤라살롱(Salon Murat)'에서 국무회의를 한다.

독일은 Bundeskanzleramt(연방수상청)의 6층에서 9시 30분에 국무회의를 한다. 프랑스가 30분 늦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대통령과 총리가 30분 전에 둘이 먼저 만나서 회의를 한 이후에 국무회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왼쪽이 프랑스의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 오른쪽이 독일의 연방수상청 전경이다. 

엘리제궁은 파리의 8구에 콩코드 광장과 개선문 사이의 샹젤리제 길에 궁의 정원이 면해 있다. 독일 연방수상청은 티어 가르튼의 슈프레 강(Spree) 인근이고, Bundestag(연방의회) 역에서 가깝다. 

참고로, 독일은 국무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데, 독일의 대통령은 히틀러 이후부터 상징적인 역할만 있을 뿐 실제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총리다.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 질서와 위계, 시각적인 형식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첫 번째 시작은 바로 장관들의 등장과 장관들의 기사들이 엘리제궁의 의전 마당에 정렬을 하고 정해진 동선으로 퇴장하는 것이다. 즉, 장관들의 위계에 따라서 장관의 차가 일정하게 자리가 정해져 있다. 모든 장관들이 회의장에 자리하면,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회의장에 입장한다.

반면, 독일의 장관들은 회의시간에 맞춰서, 특별한 질서나 정해진 코드 없이 자유롭게 등장한다. 


오른쪽의 엘리제 궁은 18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왼쪽의 연방수상청은 2001년에 본(Bonn)에서 베를린(Berlin)으로 옮겨왔다. 엘리제 궁이 아직 궁이 아니고 오텔(Hôtle)이던 시절, 즉 지금의 궁의 모습으로 확장되기 전, 가운데의 본채를 지은 건축가는 몰레(Armand Claude Mollet)였다. 연방수상청을 설계한 건축가는 슐트와 프랑크(A. Schultes, C. Frank)이다. 대통령과 수상이 일하는 국가 최고의 권력이 선택한 건물에서부터 두 나라의 취향의 차이가 확연하다. 사실 샤를 드골 대통령은 엘리제궁이 파리의 중심에 있어서 조금은 외각이라고 할 수 있는 벵센느 성으로 옮기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벵센느 성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없다... 는 반대에 부딪쳐서 포기. 엘리제 궁에서 센 강을 건너면 파리 7 구인데, 그곳에는 수상의 관저부터 여러 개의 국가 부처들, 대사관과 공관들이 숱하게 모여있다. 즉 대통령을 만나려면 센 강만 건너면 되는데, 파리의 동쪽 끝 12구에 서도 끝쪽에 있는 벵센느 성은 조금(10km가량) 멀긴 하다. 

살롱 뮤라는 나폴레옹 시대의 임페리얼 장식이 그대로 남아있고, 독일의 회의장은 현대의 일반 사무실 모습이다.

왼쪽이 엘리제궁의 국무회의 장소인 뮤라 살롱(Salon Murat)이고 오른쪽이 독일 연방수상청의 국무회의실 (Kabinettssitzung)이다. 뮤라 살롱 (Salon Murat)은 나폴레옹의 여동생과 결혼한 뮤라(Murat)가 응접실로 꾸민 방으로 그의 이름을 붙인 살롱이다. '살롱(salon)'은 응접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기능이다. 많은 손님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연회, 접대 등의 행사를 하는 곳으로 유희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살롱문화는 유명해서 유명인들(사상가, 음악가 등)을 초대해서 함께 토의하고 예술을 향유하던 전통은 널리 알려졌다.

반면, 독어의 카비넷(Kabinett)은 회의실, 사무실, 연구실, 대기실, 화장실 등의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장소, 일하는 장소다. 장관들이 회의를 하는 목적에는 독일의 회의실이 더 적합한 이름을 가진 것 같다.

그리고 뮤라 살롱은 보통 이렇게 비어져 있다가, 수요일 오전의 국무회의를 위해 회의 테이블이 합체된다.        

이렇게 목적에 따라 큰 테이블 작은 테이블 등이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게 된다. 반면 독일의 회의실에는 커다란 붉은색의 너도밤나무 테이블이 상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살롱은 회의 이외에 다른 기능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고, 독일의 카비넷은 회의실로 기능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위계는 테이블에서도 볼 수 있다. 오른쪽은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일 때의 국무회의 모습이다. 맞은편에는 당시의 수상이던 프랑수와 피옹이다. 이번 선거 때 아내가 의회에 취업을 해서 부당하게 수입을 얻었다는 스캔들로 인기가 급 추락하며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다. 일단, 대통령과 수상의 의자가 다른 장관들과 다른데, 두 사람의 의자에만 팔걸이가 있고, 나머지는 없다. 의자라는 가구에도 위계가 있어서, 팔걸이가 있는 것이 가장 위계가 높고, 그다음이 등받이가 있는 것, 그리고 둘 다 없이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의자가 가장 위계가 낮다. 반면 독일의 회의장은 수상과 장관들의 의자가 모두 똑같은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회의록 받침도 다른 사람의 것에 비해서 조금 더 크다. 장관들의 자리는 프랑스의 경우 예산의 규모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위계를 만든다. 독일은 내각이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서 자리가 정해진다. 독일은 자리의 순서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중요도가 변하면 자리도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왼쪽 독일의 회의실 밖 창문으로 가까이에 있는 Reichstag(독일 의회)가 보인다. 가운데 독일 수상의 자리에는 종이 있고, 음료수도 있는데, 음료수는 모든 장관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앞에는 4면이 시계로 된 것인데, 아데나워(Adenauer)가 회의시간에 끊임없이 시계를 보는 장관들을 보는 것이 짜증 나서 놓게 만들었다고 한다. 반면 왼쪽의 시계는 프랑스 국무회의 때 테이블 가운데 놓는 것인데, 한 면은 대통령, 다른 한 면은 수상 쪽으로 놓인다.  


이렇게 다른 건축, 다른 인테리어, 다른 분위기의 국무회의 장소는 과연 국가 운영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까 미치지 않을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일단 프랑스가 독일에 비해서 위계와 형식을 중시하는 경향, 그리고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복원하고 유지하여 연속성을 가지고 사용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독일의 모던한 실용주의, 프랑스의 전통적이고 우아한 형식주의... 그것을 기저로 삶의 방식이 건축에도 드러난 하나의 예가 바로 연방수상청의 국무회의실 (Kabinettssitzung)이고 엘리제궁의 살롱 뮤라(Salon Murat)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옮긴다고 했는데, 만약 우리나라의 국무회의를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에서 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게 된다. 

이런 것이 전통문화를 존중해라 말로 떠드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실천 아닐까? 우리나라의 뉴스에서 매일 경복궁을 그리고 사정전의 모습을 전할 테니, 궁궐이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 수 있으리라. 문화유산이 박물관의 박제된 유물로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프랑스는 말 그대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으니, 엘리제 궁뿐만 아니라, 부르봉 궁은 국회가, 룩상부르그 궁은 상원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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