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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Aug 06. 2021

일반인문 CLXIX 폭풍우 _ 르 클레지오

; 외국 작가의 펜으로 그려낸 제주 해녀의 삶 1

Tempete: Deux novellas


조개 따는 해녀들은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였다. 

해녀들은 잠수복도 없이 부력을 견디기 위해 허리춤에 돌멩이를 가득 달고, 일본군 시체에서 벗겨낸 물안경을 쓰고 잠수했다. 

해녀들에겐 장갑도 신발도 없었다. 

이제 그네들도 나이를 먹었다. 

검정 고무로 만든 잠수복을 입고 아크릴로 짠 장갑을 끼고 발랄한 색깔의 플라스틱 신발을 신었다. 

허리춤에는 스테인리스 칼을 차고 있다. 

해녀들은 하루 작업을 마치면 수확한 해산물을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해안을 따라간다. 

가끔 전기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탄 여인들도 보인다. 

해녀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자맥질을 하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둥그렇게 돌을 쌓아 만든 불턱에서 잠수복을 벗고 물을 뿌려가며 몸을 씻는다. 

그리고는 신경통 때문인지 다리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바람이 그들의 세월을 다 쓸어가 버렸다. 

- 폭풍우 본문 중에서


절정의 여름, 8월 두번째로 선택한 두권의 책은 외국 작가의 시각에서 쓰여진 제주 해녀 주제의 소설입니다.

2008년 노벨 문학상 프랑스 작가, Jean Marie Gustave Le Clezio 르 클레지오의 ‘폭풍우(2017)’와 2019년 봄 미국 출간 즉시 5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오른 Lisa See 리사 시 해녀들의 삶 이야기 ‘해녀들의 섬’.


오늘은 폭풍우를 먼저 소개 합니다.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 Jean Marie Gustave Le Clezio 르 클레지오.

그의 정신적 고향 모리셔스와 닮은 제주.

사실 책 속엔 두개의 Novella(중편소설)이 2개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르는 소녀 준(폭풍우)과 어머니를 모르는 소녀 라셸(신원 불명의 여인)이 두 개의 관점으로 쓰여진 하나의 이야기로,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바다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레지오가 그린 우도 풍경은 현상을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자신이 필요로 한 것만 소비를 하며 섬을 한번 보고 스쳐 지나가버립니다. 

제주 여행중 잠시 들르는 곳으로 인식되어 우도에 며칠째 눌러앉아 지내는 관광객은 많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도항선은 성산포에서 관광객을 싣는데, 사람도, 차도 도항선에 실려 우도를 한바퀴 돌면 볼 걸 다 본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제주를 아끼는 클레지오의 눈엔 관광객들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폭풍우 속 주인공은 둘로,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가했던 필립 키요(Andre Malraux 말로의 ‘인간의 조건’ 주인곡과 동명)와 아버지가 없는 준이라는 열세살 여자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베트남전쟁 종군기자 출신인 키요는 사랑하는 여인을 바다로 떠나보낸 지 30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종군기자 시절 민간인 소녀를 상대로 한 군인들의 성폭력을 방관해 감옥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죄의식과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합니다. 

섬에는 아버지 없이 해녀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13살 혼혈 소녀 준이 있습니다. 

준에게 키요는 나이차이는 마흔 다섯으로 아버지이자 남자로서 가까운 존재로 다가오고, 키요는 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더듬게 됩니다.

소설은 제주도라는 배경과 해녀들의 삶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합니다. 

섬이라는 공간에서 떼 놓을 수 없는 조건인 바다와 폭풍우는 두 주인공에게 때론 죽음으로, 때론 삶으로 격렬하게 교차하며 다가옵니다. 

섬세하게 묘사해낸, 바다를 맨몸으로 드나드는 해녀의 생활 역시 마찬가지. 


절망적인 삶을 살던 키요는 준에게서 삶의 새로운 희망을 느끼고 키요는 마지막이 되리라 생각하며 우도에 발을 디뎠으나, 준이 그에게 준 에너지는 죽음이 아닌, 삶으로 대체됩니다.

바다에는 신비로운 비밀이 가득하다. 그래도 난 바다가 무섭지 않다. 

이따금 바다는 누군가를 삼켜버린다. 

해녀일 수도 있고, 낙지잡이 어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파도에 의해 평평한 바위로 떠밀려간 부주의한 관광객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바다는 시체를 돌려주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해녀 할머니들은 불턱에 모여 옷을 벗고 물을 뿌려가며 몸을 씻는다. 

나는 옆에 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제주도 말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꼭 노래 같다. 

할머니들은 땅 위에 올라와서도 물속에서 외치던 소리를 잊을 수가 없나 보다. 

할머니들의 말은 우리가 하는 말과 완전히 다른 바다의 언어이다. 

그 속에는 바닷속 소리가 뒤섞여 있다. 

거품 이는 소리, 모래 사각거리는 소리, 암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의 둔탁한 소리가. 

-폭풍우 본문 중에서


9월 출장후 리프레쉬 일정에 우도를 넣을까 고민 하게 하는 두 권의 책은 가볍지만 생각의 무게를 갖게 합니다.

사진은 광치기 해변 4.3 유적지 터진목의 Jean Marie Gustave Le Clezio 르 클레지오의 시비

해녀 박물관 포스팅 입니다.

https://brunch.co.kr/@architect-shlee/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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