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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Y Mar 01.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사간동갤러리

여덟. 사간동의 갤러리 이야기

경복궁 동쪽이 사간동이다.

사간동 부근에는 많은 Museum, Gallery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다.

사간동의 미술관이야기를 열어본다.

대한민국 최초의 사립 화랑이 1930년대에 종로 1가에 오픈한 종로화랑이다.

주인은 그 유명한 김환기 화백.

그러나 3년 만에 문을 닫는다.

몇 개의 화랑이 오픈 하지만 역시 다 망했다.

한국동란후인 1956년 이번엔 반도호텔 지하에 반도화랑이 들어선다.

1938년 흥남에 세계 최대의 질소비료공장을 갖고 있던 노구치 시다가후가 지은 7층규모의 이 반도호텔은 당시 최고급 현대식 호텔이었지만 1974년 롯데호텔에 매각되면서 철거되고 만다.

그래 반도호텔을 추억하기 위해 롯데호텔 1층의 커피숍은 peninsula(페닌쉴라;반도)가 된것이다.

제주롯데호텔의 양식당도 페닌쉴라.

1963년 박명자(1943- )씨가 이 반도화랑에 취직하면서 <갤러리 현대>가 잉태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론 몇번 뵌 분이라 존칭을 썼다.

박수근화백(1914-1965)의 작품성을 발굴하고 1970년 관훈동에 현대화랑을 설립하면서 첫 전시회로 박수근 유작전을 연다.

이어 이중섭 유작전.

1973년 미술계간지 화랑 창간.

사간동.

조선시대때 국왕의 과오나 비행에 대해 들이대는 게 임무였던 바른 선비들이 모여 있던 司諫院 사간원이 이 동네에 있어서 동네 이름이 사간동이죠.

사간원터 8천 평에 왜놈들이 1913년 일본군 수도육군병원을 만듦니다.

해방 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이 되고.

1971년 보안사령부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이름을 바꾼 군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가 상주하면서 헌병들이  K1소총 들고 서 있는 거고.

1976년 김원씨은 사간동에 광장건축을 개설한다.

이분도 자주뵌 분이라...

이 도로는 유사시에 대통령이 탈출하는 비상도로.

평소에는 경복궁역 쪽의 도로를 이용하지만 비상시에는 이 도로를 이용해야 하므로 대통령이 경복궁 쪽의 도로로 이동할 때도 이 도로는 비상이다.

당시 경호실장은 10.26 사태때 김재규의 총탄을 맞았던 차지철.

비상도로변의 50평 빈 대지.

당시 땅 주인은 영풍 회장의 8살짜리 손자죠. 영풍문고의 주인. 울며 겨자 먹기로 4층짜리 오피스를 건축한다.

건폐율 100%.

주차장도 없고.

건축법도 없다.

청와대법이 상위법!

경호실장 한마디면 종로구청 건축과는 끽소리도 못하던 시절.

1,2층은 앙드레 김이 입주한다. 거의 반값.

3,4층은 광장건축.

북쪽 창은 전부 방탄유리로 바꾸라는 명령.

안에서 청와대를 저격할 수 없도록 한 조치다.

1977년 앙드레 김선생이 대박을 낸다.

앙드레 김의 위대한 디자인을 1백 벌만 한정판으로 제작해 팔기 시작한 것. 2, 3호 연이어 상종가.

국세청이 들이 닥치고.

불똥은 집주인에게로 튀고.

영풍산업 세무조사.

영풍 회장 전부 내 쫒는다.

졸지에 앙드레 김과 김원은 길바닥에 나 앉는거고.

그래 이 건물은 갤러리 현대로 넘어가는 간다.

1987년 박명자는 갤러리 현대의 대표가 됩니다.

1988년 계간지 화랑은 현대미술로 재발간.

1995년 사간동 갤러리 현대 리모델링.

길 건너에 경복궁이 있습니다. 그럼 문화재 보존지구. 5층 이상 올라 갈 수 없는거죠.

그냥 철판 덧대고 내부에서 바닥판 뜯어내고 계단 만들면 리노베이션 끝.

별로 손댄 게 없지만 건물은 날아갈 듯 경쾌해집니다.

2004년 갤러리 현대 뒷마당의 버려진 한옥을 원불교로부터 사들여 두가헌 와인바 및 두가헌 갤러리를 열게되고

리모델링은 건축가 최욱.

원래 1910년에 건립된 이 한옥은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생모 엄 씨(1854-1911)가 입궁전 살던 터에 자리하고 있는 역사적인 명소.

명성황후가 살해된 후 참담한 고종을 가까이 모시던 엄상궁은 1897년 고종 44세에 영친왕 은을 낳는다. 그래 후궁 서열 1위 빈이다.

1903년 고종은 덕수궁 터에 慶善宮 경선궁을 건립해 엄 씨에게 하사.

엄 씨는 전 재산을 투자해 교육에 헌신한다.

1905년 양정의숙을 시작으로

1906년 진명여학교, 숙명여학교를 설립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전 재산 기부.

명성황후의 아들인 순종이 아들을 못 낳자 엄 씨의 아들 은은 황태자가 되어 일본으로 볼모로 끌려간다.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생을 마치고.

엄 씨의 신위를 경선궁에 모시면서 사당 이름을 德安宮 덕안궁 으로 바꾼다.

후궁이라 종묘에 들어갈 수 없다.

1929년 후궁들의 사당을 한 곳에 모으라는 칙령에 따라 궁정동의 육궁에 합사. 칠궁이 되고.

1968년 1·21사태 이후 경비상의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

2001년 11월 부터 다시 일반인에게 공개.

인터넷 예약 필수.

와인 바로 꾸며지던 이 엄 씨의 생가에 들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매우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의 斗佳軒 두가헌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2004년 좌식을 입식으로 바꾸는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한옥의 맛을 그대로 살려낸거고.

현재 이곳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지어져있고 그 위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여기 김창일 대표와도 사연이 있습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 그 위로는 국제갤러리가 있죠. 뒤로는 종친부가,...

전부 제게는 얽히고 섥힌...


칠궁에 모신 후궁.

1. 육상궁毓祥宮: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 숙빈 최 씨의 사당,

2. 저경궁儲慶宮: 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仁祖의 아버지)의 생모 인빈 김 씨의 사당,

3. 대빈궁大嬪宮: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영조의 이복형)의 생모 희빈 장 씨의 사당,

4. 연우궁延祐宮: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진종(영조의 첫째 아들)의 생모 정빈 이 씨의 사당으로 현재 신위는 육상궁에 합사,

5. 선희궁宣禧宮: 영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 씨의 사당으로 현재 신위는 경우궁에 합사,

6. 경우궁景祐宮: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 수빈 박 씨의 사당,

7. 덕안궁德安宮: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의 생모 순빈 엄 씨의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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