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라는 희망과 그 시작에 대하여
Pulitzer Prize 퓰리처상 수상자, Marguerite Higgins마가렛 하긴스기자가 한국전쟁시 취재했던 기사를 회고한다.
그녀는 영하 40도에 이르는 강추위와 폭설 속에서 연합군과 중공군이 맞붙게 된 전투를 취재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추위와 눈앞에 놓인 죽음의 공포에 떨며 피로가 가득 쌓인 병사들이 꽁꽁 언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마침 그녀 옆에는 키가 무척 큰 한 병사가 지친 표정으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없이 그저 순간순간을 견디고 있는 병사의 표정에 그녀는 그가 어떠한 심정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만일 제가 당신에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제일 먼저 무엇을 요구하고 싶습니까?”
병사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이렇게 대답했다.
저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내일」이라는 희망을 바라보며 오늘을 진지하게 달려본다.
論語의 冠관을 차지한 장답게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이 깊은 뜻을 담고 있기도 하고, 외우기도 쉽다는데 그 이유가 있지만 다른 슬픈(?) 이유도 있다.
우리가 학창시절성문종합영어의 앞부분, 그러니까 명사, 관사, 대명사 부분만 유독 달달 외우고 정통한(?) 이유와도 같다.
소설책이나 교과서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는 늘 작심삼일(作心三日)식으로 앞부분만 들여다보다가 때려치우고, 또 큰 맘 먹고 앞부분만 들여다보다가 또 때려치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특히 남자들은 學而학이편의 앞부분 몇 장은, 특히 구조가 간단한 장들은 대충 알고, 또 대개는 외울 줄을 안다.
내일의 꿈, 논어의 첫장을 되뇌인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論語學而 논어학이편
배우고 제때에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